오늘도 망했습니다. (3. 죽음의 현장학습 조편성(2))
“오늘 회의 결과를 교실에 게시해두겠습니다. 이틀 뒤에 다시 토의할 테니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저는 아이들이 모두를 위한 모둠 편성을 위해 숙고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틀 동안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둠을 임의로 정하고 계획을 세우기 바빴습니다. 롯데월드 안내도까지 뽑아와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반만 해라’ 이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 모둠이 편성되지도 않았으니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가 방해를 해도, 제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은 열심이었습니다.
그 이틀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잔인하게 행동했습니다. 눈에 띄게 두원이를 피하기 시작한 것이죠.아마 ‘소외된 친구가 스스로 본인이 속하고 싶은 모둠을 정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이 아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두원이를 배려하고 잘 챙기던 친구들도 두원이가 옆에 오면 딴청을 피우며 슬그머니 자리를 떴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원이에게 초점이 맞춰졌던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나 분산시키고자 원했지만요. (물론 이런 아이들의 잔인함은 아직까지도 제 착각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괴로웠습니다.끊임없이 아이들이 제게 와 “언제 회의해요?”라고 물었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낯뜨거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결정은 힘들었습니다. 상황을 회피하고 방관했습니다.
결국 하루를 더 넘기고 사흘 후에 저는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그렇게 고대하던 현장학습 모둠 짜기 회의를 할 거에요.”
“와! 예쓰!”
“모두 포스트잇을 꺼내세요.”
“네?”
“그리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것을 보고 적으세요.”
저는 칠판에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모두가 배려하고 배려받는 현장학습]
1. 키(정확히 모르면 대략적으로)
2. 나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잘 탄다 / 못 탄다
3. 나는 군것질을 많이 할 것이다 / 안 할 것이다
4. 퍼레이드나 기념품 가게 등 구경거리를 많이 볼 것이다 / 놀이기구 타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5. 나는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 )시간까지 기다릴 수 있다
6. 나는 휴대전화가 있다 / 없다
(이렇게 세세히 유목화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친한 친구들끼리 가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런 사소한 의견 차이로 크게 싸우고 오히려 사이가 나빠져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잘 생각해 봐야 해요. 친해서 같이 모둠을 짰는데 나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못 타는 경우, 친구를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있는가. 나는 놀이기구를 최대한 많이 타고 싶은데,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하고 싶어하는 친구를 위해 놀이기구를 몇 개 포기할 수 있는가.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반이 오히려 색다른 조합으로 롯데월드를 다녀와서, 잘 몰랐던 친구에 대해 알게 되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모둠을 짜고, 단 한 사람이라도 모둠을 짜지 못하면 선생님이 모둠을 짜겠습니다.”
곧 아이들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얼굴 표정을 살피며 혹여나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요. 특히 걱정스럽던 두원이에게, 지나(가명)가 다가왔습니다.
“두원아, 너는 누구랑 가고 싶어?”
두원이는 남자아이 무리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무리는 우왕좌왕했습니다.
“야, 두원이 데려갈까?”
“근데 우리 놀이기구 많이 탈 거잖아!”
“두원이는 놀이기구 하나도 못 타.”
“우리가 타는 동안 기다리면 되잖아.”
“중간에 찢어지기도 할 건데.”
글쎄요. 남자아이들의 본심은 모르겠습니다. 두원이와 같은 모둠을 하기 싫어 만들어낸 핑계일 수도 있고, 정말로 두원이와 취향이 맞지 않아 모둠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두원이도 많은 친구 중에 한 명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아이들은 실제로 포스트잇에 적힌 것들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두원이가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가늠했습니다.
“두원아, 만약에 남자애들이랑 못 가게 되면 우리한테 와.”
네. 지나는 3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천사같은 아이입니다. 제 얼굴에 찰나의 안도가 스치는 순간, 슬프게도 반 아이들 얼굴에서도 안도가 비쳤습니다. 그리고 두원이는 지나와 같은 모둠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반 아이들은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다툼이나 사고 없이 잘 놀고 행복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놀이동산에서 내내 지나의 손을 잡고 다닌 두원이의 얼굴도 밝았습니다. 지나는, 교사인 저보다도 더 살뜰히 두원이를 챙기고 배려했습니다. 모두의 앞에서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두원이만 특별히 대하는 것 같아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지나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줬죠. 그리고 저는 두원이 모둠에 속해 함께 하루를 즐거이 보냈습니다.
‘즐거이 다녀왔으니 되었다.’ 고 생각하지만 아쉬움은 남아있습니다.
1) 왜 반 아이들은 두원이에게 집중하게 되었을까
- 교사의 걱정과 우려가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에(티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 몇몇 아이들의 튀는 발언(두원이는 도움반하고 가라고 해요.)
2) 결국 모둠은 친한 사람끼리 되었다고 한다
- 삼일의 시간 동안 미리 짠 계획
- 시간적 간격을 두면서 오히려 미리 모둠이 정해짐
여기에서 얻은 생각 (+고민)
1) 두원이를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아이들은 금방 눈치채고 두원이를 더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다.
2) 친구에게 상처주는 말을 공적인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내뱉는 아이 지도법?
3) 회의는 집중적으로 하자.
4) 얘들아, 두원이와 함께 모둠이 되어 현장학습을 다녀오는 것은 스스로도 배려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매우 귀하고 값진 경험이야. 이런 도움말, 해도 괜찮을까?
(선생님들은 현장학습 갈 때 어떻게 하시나요? 경험담이나 조언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p.s. 제가 생각의 벽에 부딪혔을 때 현장학습 모둠짜기 방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신 에듀콜라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