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망했습니다. (2. 죽음의 현장학습 조편성(1))
올해 저희 반 아이들은 꿈과 환상의 세계 놀이동산으로 현장학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달 전부터 제가 수없이 받은 질문입니다.
“쌤, 모둠 어떻게 짜요?”
“버스 자리는 어떻게 앉아요?”
“제발 가고 싶은 사람이랑 가게 해주세요!”
얘들아. 선생님 마음이 딱 그 마음이란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모둠이 나뉘고, 버스 짝이 정해지고, 모두가 만족하면서 평화롭게 현장학습을 다녀오는 것!!! 그것이야말로 선생님이 바라는 일이야.
그렇지만 현실은 매정합니다.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큰 아이에 묻혀 욕구가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 그래, 기왕 놀이동산 가는 거, 너희 맘대로 짜와 봐!
아이들은 우왕좌왕 자신들의 의견을 내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야!”
“조용히 하라고!”
“넌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
“내가 뭘?”
그 와중에 친한 친구들과 모둠을 하기로 약속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상황은 아랑곳않고 웃는다. 모둠에 속하지 못한 아이들은 표정이 어둡다. 이를 지켜보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됐어! 선생님 마음대로 짤 거야. 지금부터 한 명이라도 모둠에 대해서 얘기만 해봐!”
겉으로는 수긍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 마음에 불만이 가득하다.
#2. 너희에게 자율이 어디 있니? 내가 다 해줄게^^*
“자, 조용조용. 지금부터 선생님 말 잘 들어요. 우리 놀이동산 가는 것만으로도 운 좋은 줄 알고 나머지는 모두 선생님 말대로 해. 모둠, 버스자리, 모두 선생님이 짜 줍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질문 안 받겠습니다.”
볼멘소리가 터진다.
“선생님! 이건 너무해요!”
#3. 반에서 괜찮은 아이들을 따로 조용히 부른다.
“얘들아, 선생님이 부탁 하나 하려고 하는데, 두원이(가명) 있잖아. 너희가 함께 모둠 하면 좋을 것 같아. 두원이도 친구들하고 함께 즐겁게 현장학습 가고 싶은데,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 속상하지 않을까? 너희는 배려심이 많으니까, 선생님이 특별히 부탁하는 거야. 괜찮지?”
“...네.”
그 어떤 시나리오도 괜찮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율을 양껏 주어서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도, 강압적으로 모둠을 편성해서 재미를 빼앗는 것도, 배려심 많은 아이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도 다 괜찮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여기부터 생각을 다시 출발시켰습니다. 현장학습에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장학습은, 왜 가는 걸까요?
“현장학습은 왜 가는 걸까?”
“재밌으려고요. 놀려고요!”
“그것도 맞아. 그렇지만 현장학습은 말 그대로 교실이 아닌 곳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해. 그럼 너희는 현장학습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무엇을 얻어서 오면 좋겠니?”
포스트잇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붙었습니다.
‘재미’ ‘흥미’ ‘우정’ ‘배려’ ‘안전’ ‘규칙준수’ ‘질서’ ...
놀랍게도 제 생각 또한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현장학습을 가는 행위의 의미를 찾아낼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 생각 또한 너희의 생각과 비슷해. 서로를 배려해서 모두가 만족하며 현장학습을 다녀오면 좋겠어. 너희가 말한 대로 원하는 친구와 함께 모둠을 짜게 되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아이들은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제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죠.^^ 한 똑똑한 친구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모두가 만족하는 현장학습이라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건 선생님의 욕심일 수도 있어요.”
저는 약간(아주 약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감정에 호소했습니다(사실 이게 제 언변의 한계입니다...).
“맞아. 선생님의 욕심이야. 그렇지만 우리 반 대부분이 만족하더라도 한 명의 친구라도 상처를 받는다면 마음이 무척 아플 것 같아. 그건 결국에 우리 모두가 그 친구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 거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봤을 때 아무도 나와 같은 모둠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슬프지 않을까?”
제 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교실놀이터를 만들고, 현장학습 모둠짜기 회의를 시작해보자.”
먼저 배려받아야 할 경우를 브레인스토밍했습니다.
- 놀이기구를 잘 못타는 친구
-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
- 멀미를 잘하는 친구
- 키 때문에 못타는 친구
- 몸이 불편한 친구
- 꼭 같이 가고 싶은 친구가 있는 친구
마지막 경우는... 네. 아이들은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배려의 종류를 유목화한 후에 다시 그 방법에 대해 깊이 토의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이 나왔고, 모두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 키를 기준으로 그룹을 나누고 그 안에서 놀이기구를 잘탐/못탐으로 나눈다.
- 멀미가 심한 친구를 위해 차 안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 놀이기구 잘탐/못탐으로 나눈 후 같이 가고 싶은 친구끼리 짠다.
- 가고 싶은 친구를 비밀적기 하여 모둠을 짠다.
- 마음대로 모둠을 짠 후에 배려할 모둠을 정한다.
회의는 물 흐르듯 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손을 들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원이(몸이 불편한 친구)는 도움반이랑 가면 안 돼요? 우리는 롯데월드 가고 두원이는 다른 놀이동산 가면 되잖아요.ㅋㅋ”
평소에도 두원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였습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따라 웃었습니다. 분노의 게이지가 막 차오르려는 순간, 아이들이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야! 넌 그게 말이 되냐?”
“너가 두원이면 그러고 싶겠냐? 당연히 두원이도 같이 가야지!”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저는 맥이 쭉 빠졌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이야기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모두 헛수고였나? 사실 회의를 진행하며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몸이 불편한 친구 두원이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배려해야 할 친구를 특정하지 않는 것. 모두가 배려하고 배려받는 관계임을 인식할 것. 그래서 자연스럽게 배려가 일어날 것.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반 분위기가 흘러간 것은.
“오늘 회의 결과를 교실에 게시해두겠습니다. 이틀 뒤에 다시 토의할 테니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제가 했던 고민의 양이 많아 글이 길어졌습니다. 2부도 곧이어 올리겠습니다.)
p.s. 제가 생각의 벽에 부딪혔을 때 현장학습 모둠짜기 방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신 에듀콜라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