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생의 우당탕탕 책쓰기교실 (1. 책쓰기에 관하여)
[온작품읽기]가 대세인 교육현장에서, 책을 좋아하는 교사인 제가 작년에 한 학기 동안 진행했던 [책쓰기 프로젝트]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다섯 권의 동화책 제작과정을 가감없이 보여드리겠습니다. 대단하다구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 같은 게으른 교사와 책을 별로 안 좋아하던 저희 반 아이들이 함께 해냈으니까요. 거창하지 않은,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한 방법을 공유할게요.
#1. 아동책쓰기, 어렵지 않을까요?
네. 어렵습니다. 사실 어렵다기보다는 귀찮은(?) 잡일이 많아요. 이야기를 만들고 퇴고하고 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수많은 고비가 찾아옵니다. 이때 온갖 감언이설로 끝까지 갈 수 있도록 꼬시는 일, 없는 장점도 찾아내 칭찬해주는 능력 등이 필요하죠.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정보완을 독촉(?)하는 일도 참 귀찮습니다. 무엇보다도 완성된 원고를 편집하고, 인쇄제본을 맡기는 일이 사실 귀찮음의 끝판왕이죠.
#2. 예산은 얼마나 드나요?
종이/형태/인쇄/출판 등 다양한 옵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에요. 사실 하다보면 욕심도 나고 그래서 ‘더 좋은 거..!’ 를 찾다보면 금액은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지요 ㅠㅠ 저 같은 경우는 최소한으로 예산을 쓸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내친김에 인쇄제본이 아닌 출판을 하고 싶었지만, 그 과정이 좀더 번거롭고 게으름병이 도진지라… 기준이 다양하기에 이 정도라고 딱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저는 30부에 10만원 정도로 제작했습니다. (총 5권이고, 권당 30부라 총 150부 50만원선이었습니다. 하드커버의 경우에는 가격이 상당히 올라갑니다.)
#3. 아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준차이… 모두가 책을 낼 수 있을까요?
저도 처음 책쓰기를 진행하면서 가졌던 고민이 이것이었습니다. 정말 책쓰기에 흥미를 가지고열의가 있는 아이들이 교실에 가득하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네댓명도 안 되었으니까요. 방과후 동아리 운영 같은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은 더 컸습니다. 1) 퀄리티 있게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아이들만 데리고 갈 것인가 2)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다 같이 책을 낼 것인가 …저는 2)를 택했구요, 종업식날 책을 손에 든 아이들 모두의 얼굴에서 뿌듯한 성취감을 발견하고 찰나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이래서 책쓰기 했구나..!’
먼저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1학기 때 충분히 갖도록 하고, 여름방학 과제로 자신의 이야기 만들기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과제물을 확인하는 순간 선생님들은 아실 수 있을 거에요. ‘얘가 조장이다.’ 겸양과 희생의 미덕을 갖출 수 있는 훌륭한 기회야! 라며 교육적인 의의에 최면을 거시고, 그 아이에게 조장 자리를 내려주세요. 그럼 나머지 아이는요? 생각보다 다들 능력이 있습니다. 글은 잘 못쓰지만 그림은 잘 그리는 아이, 글과 그림은 다 안 되지만 모둠활동에 협력적인 아이.. 선생님들께서 잘 조를 나누어주시고, 윤활유 역할을 계속 해주시면 아이들은 동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갑니다. 진짜에요. 제가 해봤다니까요?
#4. 저학년이에요. 책쓰기가 가능할까요?
저학년과 책쓰기를 해보지 않았기에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제가 작년에 담임을 했던 4학년 아이들은 3학년 정도의 발달단계를 갖고 있었어요. 그 중 몇몇 아이들은 더 발달이 느리기도 했구요. 줄글로 된 책을 만드는 게 어렵겠다는 판단 하에, 12P이내의 그림동화책으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저학년이라면 글이 더 적은 (면당 1-2문장 이내) 그림책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5. 책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사실..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놈의 게으름 때문에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탓에 저는 겨울방학 때 편집을 하고 제본을 맡겼습니다 ㅜㅜ 일주일에 두 시간씩 시간을 내어 9-12월까지 진행했습니다. 모둠별로 완성시간이 편차가 커 다 완성하지 못한 모둠은 방과후에 함께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6. 왜, 책쓰기인가요?
네. 본질에 가까운 질문이 답하기가 제일 어렵더라구요. 단순히 대답하면, 제가 아이들의 글에서 받은 감동이 컸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어른이 쓴 글보다도 더 마음에 닿는 아이들의 글이, 저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급문집을 내다가, 조금 더 고도의 사고와 과정을 요하는 책쓰기에까지 생각이 미쳤죠.
다음으로는, 제 경험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학급문집을 만들어주셨는데, 아직까지 제 보물이거든요. 거기에 실린 제 글과 친구들의 글이 그렇게 두고두고 남더라구요.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올 3월 학부모 상담 주간에 학부모님들께서 책쓰기가 너무 좋았고, 아이들이 정말 뿌듯해하더라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올해 연임을 했습니다.) 학부모분들께서 감사하다고 해주시니까, 교사로서의 긍지도 또 올라가더라구요.
놀랍게도 아이들의 눈높이로 쓴 글은 그때에만 쓸 수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어른 시인이 아이를 흉내내어 쓴 동시보다, 아이가 쓴 아동시가 더 좋더라구요. 저를 거쳐간 아이들의 그 예쁜 시선을 잡아두고 싶었습니다.
짧게 서론을 쓰려고 했는데, 좀 길어졌네요.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과정을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