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으로 살아남기! [민원에서 살아남기]
꼬꼬마 아이들과 3월 한 달을 잘 지내고 이제 아이들도 나도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을 한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지나간 한 달을 이야기 하려 하는데 제목이 ‘민원에서 살아남기’라니 조금 씁쓸하긴 하다. 하지만 피부로 와닿는 주제이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올해 소규모 학교에서 40학급이 넘는 대규모의 학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40 학급이 뭐가 크냐고 물으신다면, 강원도에선 매우 큰 규모라고 말하고 싶다) 큰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전해 들은 큰 학교의 장점은,
- 업무가 적어서 일하는데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
- 그렇기에 자기 학급만 잘 운영하면 된다는 것.
- 복무가 작은 학교보다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 육아시간 등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
- 학년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년 선생님들하고만 잘 지내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있었다. 실제로 한 달을 지내보니 대부분 실제로 그러했고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우리 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었다.
반면, 큰 학교의 어려운 점으로 대표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민원’이었다. ‘옆 반 선생님은 이렇게 해주시는데 우리 반은 왜 이거 안 하나요?’,‘왜 학교 후문을 개방하지 않나요?’,‘사진 속 우리 아이가 왜 표정이 어두운가요?’,‘왜 우리 학교는 등교 수업을 안하나요?’,‘점심 시간이 왜 이렇게 짧은가요?’ 등등 주변에서 전해 들은 학부모 민원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그 수위도 다양해서 마음속으로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학교 생활을 시작한 터였다. 학년에서는 학기 초 예상되는 민원들에 대해 각 반별로 통일할 것은 통일하고 학부모 응대의 방법도 수시로 소통하면서 일관된 방법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였고 그래서인지 별다른 사건(?)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민원이 발생했다. 학급 밴드나 카카오톡에 사진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우리 1학년 담임교사들은 협의하에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지나고 사진을 올리기로 했다. 학기 초반 아이들을 지도 하는데 더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2주 정도 지나고 나니 한 학급에서 아이들 밥을 잘 먹는지 궁금해한다며 사진을 올려주었으면 좋겠단 이야기가 나왔고, 중간 중간 점심시간에 찍어두었던 아이들 사진을 이제는 올려도 되겠다 싶어 업로드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학부모님들이 궁금해 할 것도 같아서 무식하게 무거운 옛날 DSLR(무겁지만 사진은 잘 찍힌다)을 들고 급식실에서 아이들 밥 먹는 것을 찍어서 학급 밴드에 올렸다. 더불어 학급에서의 활동사진도 몇 장 올리며 교사는 사진 찍는 사람이 아니라며 아이들 안전 관리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다 웃고 있는 사진을 찍을 순 없다며 짧은 순간으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판단하지 말아 달라고 긴 당부의 글도 적어서 함께 올렸다. 물론 사진에 혹시 빠진 아이는 없는지, 어두운 표정의 아이는 없는지 자체적으로 필터링한 뒤 업로드 했다.
문제는 다음날. 급식소에 갔더니 영양사 선생님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선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혹시 아이들 급식 사진 올리셨냐며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제 민원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부실 급식이다.’ ‘아이들 반찬이 너무 적다.’ ‘아이들이 더 먹고 싶을 때 더 먹을 수는 있는거냐!’ 등 사진 속 반찬의 양을 보고 학부모들이 민원전화를 여러 차례 넣었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아이들 맛있게 먹고 있는 사진 위주로 찍었는데,,,’ 다시 한 번 업로드한 사진을 확인해 보니 식판을 들고 자리로 가며 생긋 웃는 아이들이 있어 그 장면을 3장 찍었는데 거기에 배식 직후 사진이 있었고 이 사진이 학부모들에겐 급식의 양을 판단하는 사진이 되었던 것이다. 우선은 영양사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다음으론 학부모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나에게 직접 민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좋은 의도로 아이들 예쁘게 찍어 주려고 밥도 못 먹고 사진기 들고 다니며 한 명 한 명 찍어 주며 아웃 포커싱 씨게 되는 단렌즈로 예쁘게 찍어 주었는데, 아이들 표정은 보지 않고 초점 나간 작은 깍두기 하나만 눈에 보이셨나 보다...
영양사 선생님은 학부모에게 시달려서인지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남기더라도 무조건 깍두기 김치도 정량 만큼 주어야겠다며 1학년 아이들에게도 반찬을 꽉꽉 담아서 주신다고 한다. 작은 일이지만 조금 놀랐던 급식 민원 사건은 아이들이 반찬을 많이 받는 것으로, 더 먹고 싶은게 있으면 더 받을 수 있다는 걸 각 학급에서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으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속상한 마음이 하루 정도 계속 되었다. ‘이제 사진 안 찍어!’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카메라도 치워버리고 카카오톡을 통해 전달하는 안내장 멘트도 더 기계적으로 차갑게 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문제(?)의 사진을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다시 보니 반찬이 조금 적은 것 같기도 하다. 학부모 입장에서 ‘우리 아이가 이것저것 못 먹는 것 빼고 나면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몇 개 안 될 텐데... 그것 마저도 저리 적게 주면 애들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선생님께 무엇 하나 물어볼 때도 긴장되서 가슴이 콩닥콩닥 할 텐데 자기가 먹고 싶은 반찬이 더 있다고 다시 가서 달라고 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생각 되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또 학부모 입장에서 조금 더 배려하지 못했던 것에 약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 하면 반찬의 양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 일이 없었다면 계속 신경을 못 썼을 것이다. 게다가 조리사님들이 감사하게도 남교사는 조금 더 풍성하게 주시니까...
물론 영양사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잔반이 많이 남고 또 먹고 싶은 것만 많이 줄수는 없는 것 이기에 1000명 가까운 아이들의 식생활을 책임지며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열심히 급식지도 해주셨는데 아마 많이 속상하셨을 거다. 아무튼 이후로 아이들 반찬을 많이 주시는 덕분에 아이들 밥 먹는 시간도 더 길어졌고 잔반 지도하는 것도 조금 더 힘들어졌지만 그렇게나마 아이들이 한 숟갈이라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나에게도 영양 선생님에게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민원의 순기능을 적은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럽지만 학부모들도 아이들을 사랑해서 하는 말이기에 그들을 ‘민원인’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악성 민원들도 많고 교권보호를 위해 이에 대해서는 정말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맞겠지만 한 번쯤 나의 가치관을 내려놓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직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학부모에게 말도 안 되는 민원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어서 매우 속상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 스스로를 보호하곤 했는데, 몇 년 전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이틀에 걸쳐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교육에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드라마 연극의 형식을 빌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어색했던 학부모와의 첫 만남과는 다르게 프로그램을 마칠 즈음에는 ‘교사나 부모나 아이들을 생각하는 건 꼭 같은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학부모와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일 년 동안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이다. 아이들을 위해 한마음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나아갈 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학부모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은, 소통의 방법을 꼭 민원의 형식을 빌어서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더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 쉬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치 음식점에서 컴플레인을 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학교를 대하는 분들이 있다. 좋지 않은 방법이다.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 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먼저는 담임과 소통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교의 일은 민원이 아닌 대화로 풀어가면 참 좋겠다. 『교사도 부모도 아이를 위한 한 마음』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기초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