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못 하겠다] 4. 아기가 아프다(15개월)
/ 월, 화, 수, 목, 금. 주말만 기다렸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던 4월 중순.자료 만드느라 컴퓨터 앞에서 머리+손쓰고, 동학년 선생님들과도 계획을 몇 번 뒤엎는 회의를 하느라 사회생활 에너지도 다 썼다. 학습꾸러미 인쇄하고, 복사하고, 묶고, ... 몸까지 쓰느라 수요일에 선거로 하루 쉬었음에도 이번 주 체력은 정말 아슬아슬했다. 주말만 기다렸다.
토요일에는 남편이 할 일이 있어서 내가 전적으로 아기를 봐야했다. 그래도 남편 본가에 가기로 했기에 가사와 육아를 분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주말에는 일정이 없으니 푹 쉬어야지. 노아도 2주째 어린이집 나가느라 고생이 많으니 주말동안 많이 안아주고 놀아줘야겠다.
/금요일 저녁. 어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금요일 퇴근! 아기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서 씻기고, 놀리고 저녁도 먹이고 놀고 있었다. 근데 어라, 노아의 몸이 뜨끈하다. 얼추 내 손으로 느끼기에도 열이 느껴져 체온계를 꺼내 열을 재보니 아기의 체온은 38°C가 훅 넘어간다.그래도 아기는 잘 먹고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잘 놀고 있어 당장 문제는 아니지만 내 마음속엔 요란하게 비상신호가 울린다.
‘감기인가?
어린이집 가기 시작하면 많이들 아프다고 하니 이제 시작인가 보다.
내일 원래 남편 본가에 가려고 했었는데
못 간다고 연락드려야겠네.
그냥 감기 정도면 뭐 주말 끼고 있으면 지나가겠지?
아기가 월요일까지도 아프면 어쩌지?
온라인이라도 개학이고,
학교에 두고 온 자료들이 있어서
나는 꼭 출근 해야 하는데.
혹시 모르니 다음주 초 남편 스케쥴 비워달라고 해야겠다.’
‘아. 이번 주말 못 쉬겠네.’
‘에고, 그래도
내가 옆에 끼고 있을 수 있는 금요일 밤부터 아파서,
정말 다행이다.’
그동안은 그나마 노아가 어린이집 적응을 순탄하게 해주어 나도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기가 아프면 더 엄마를 찾고 보챌 텐데. 내가 쉬지 못하는 건 둘째 문제였고 내가 딱 붙어 있을 수 있는 주말에 아픈 게 너무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기가 얼른 낫는 것이 최선이므로 자고 일어나면 열이 다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금요일 밤을 보냈다.
/토, 일 38°C~41°C
토요일 아침. 아기의 열은 더 올라있었다. 다행히 놀고 먹는 건 평소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 먹고 낮잠 1번만 자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달째인데, 겨우 아침 먹고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벌써 눈꼬리가 축쳐져 내려간다. (평소 노아는 졸린 기색을 눈꼬리로 나타내주었다.) 그래도 평소에는 졸려도 더 놀고 싶어해서 낮잠을 힘들게 재웠는데, “코~자자.” 하니 거실 바닥에부터 머리를 대고 자려는 시늉을 한다. 녀석, 너도 힘들구나.T_T
그렇게 낮잠을 두 번 이나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컨디션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오히려 열은 더 올라서 40도대.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내려봐야 39도여서 병원도 다녀왔다.(가기 전에 1339에 문의도 해봤는데, 특별한 접촉자가 없고 고열 외에 증상이 없어 병원에 문의 후 가보아도 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돌발발진’같다고 하여 지켜보기로 했다. 돌발발진은 흔히 ‘돌발진’이라고도 불리는데, 돌 전후의 아기들이 갑자기 고열이 3~5일 지속되다가 열이 내리면서 온몸에 붉은 발진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돌쯤에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몇 개월 지났다고, 또 몇 달 안 아팠다고 ‘돌발진’이라는 단어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도 전염성이 있는 질환은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주말 내내 아기는 입맛이 없는지 밥도 잘 안 먹어 분유로 배를 겨우 채웠다. 약도 안 먹겠다고 단호히 거부해서 다른 것을 먹이면서 몰래몰래 먹였는데 그것도 금방 알아채서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벌려 억지로 먹이니 토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열제를 먹어야 열이 떨어져서 안 먹일 수도 없어 약 먹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열이 떨어져 봐야 평소라면 이상하게 생각할만한 37°C 후반~38°C정도 였지만 그 정도라도 내려가면 잠깐씩이라도 평소처럼 웃고 소리치며 놀기도 했다. 자면서도 힘든지 뒤척이고 우는 아기가 참 안쓰러웠다.
/다시 월요일
주말이 순삭되었다. 그래도 더 나쁘게 상황이 번지지 않았고, 주말동안 내가 돌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어린이집 긴급보육은 못 보내고 월요일에는 남편이 아기를 보기로 했다. 아기의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아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나는 출근을 해야했다.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내 체력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온라인 개학 첫날은 무탈히 지나갔다.
오후가 되어 육아시간을 쓰고 학교를 나서는데 남편에게 톡이 와있었다.
급하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고도 더 크게 울기만 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다 줘봐도 더 크게 울기만 한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면 이럴까..속상함에 순간 울컥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 가보니 다행히 아기는 울다 지쳐 잠들어있었다. 만나자마자 열을 재보는데 어라?
체온이 34°C대라니.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양이 제대로 측정이 안 되다보니 교차 복용한 해열제가 좀 과했나 보다. 어휴. 하루 사이에 체온이 5도를 오르내리니 노아가 정말 힘들었겠다. 체온이 떨어져 축 쳐진 노아를 품에 안아 재운다. 평소에는 신기할 만큼 숨도 빨리 쉬고 심장도 빨리 뛰더니. 왠지 숨소리가 뜸해서 마음이 철렁한다. 노아 코 근처에 귀를 대고 몇 번이고 숨소리를 들으며 확인한다.
다행히 자고 일어난 아기는 체온도 조금 오르고 컨디션도 조금 나아졌다. 우리 노아는 아플 때 약은 극구 거부해도 귀에 체온계를 넣고 체온을 재는 것은 재밌어한다. 주말 사이에 체온을 하도 많이 재다보니 아기도 체온계를 켜고, 귀에 넣고, 체온 재는 버튼을 누르는 기능을 습득하여 수시로 ‘삐삐’(체온계에서 삐삐 소리가 나서)를 하자고 한다. 내 귀를 몇 번 내주다가, “곰돌이 삐삐 해줄까?”하고 나도 살짝 요령을 피워본다.
/지나갔다.
열이 떨어지고 의사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발진이 올라왔다. 화요일에는 병원에 다시 가서 다른 증상 없으니 다 나았고 원에 보내도 된다고 확인도 받았다. 후, 이번 고비도 지나갔다.
근데 아기는 여전히 밥을 안 먹고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어한다.
열이 떨어졌지만 왜 뭐만 해도 계속 소리를 지를까?
엄마랑은 왜 잠시도 떨어져있기 싫어할까?T_T
컨디션이 떨어진 건 아기 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수요일에 회의에 참석해서 꾸벅꾸벅 졸았다고 한다. 나도 평소에 조금 지쳤을 때는 단 것 먹고 금방 회복해냈었는데, 뭐 먹고 싶은지 생각도 안 나는 걸로 봐서 정말 많이 지쳤구나 싶다. 주말동안 아기 아픈 걸 잘 넘겼다 싶었는데 긴장이 풀리니 피로가 몰려오나보다. 이런 상태로 생활습관이 다 흐트러진 아기를 돌보려니 정말 허덕허덕.
이 또한 지나가겠지?T_T
*본문에 삽입된 감정그림은 에듀콜라의 금손 유루시아선생님이 그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