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책놀이] 스무, 열, 다섯 글자로 줄여라!
국어 시간이었다. ‘행복한 비밀 하나’라는 짧은 동화를 읽고 줄거리를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정균이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책을 들고 나왔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교과서를 받아보니, 39쪽과 40쪽 사이 접히는 공간에 지우개똥이 가득했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 흔적이었다. 얼마나 세게 지워댔는지 살구 색으로 인쇄되어 있던 글쓰기 지면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정균아, 등장인물이 누구였지?”
“성미, 민철, 영만이요.”
“얘네 어떤 성격이야?”
옳거니, 몇 개의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곧잘 대답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인물망(생각그물의 일종)으로 파악한 뒤 이야기의 흐름을 간추려보라 하였다. 부드럽지는 않았으나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나름 정리가 되어있었다. 이상했다. 방금 말한 내용을 글로 옮겨 적기만하면 되는데, 몇 문장 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다니... 이번 수업의 주제는 ‘인물의 성격을 생각하며 이야기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이므로 정균이는 이미 수업 목표에 도달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쉽게 쓰게 하면 되지 않을까?’
사실 독후감 쓰기는 매우 높은 사고력을 요구한다. 우선 책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분량이 많을 경우 전체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긴 이야기 중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주제를 뽑아내고, 느낌 점이나 생각할 거리들을 완전한 형태의 문장으로 나타내기. 어른도 따로 훈련하지 않으면 잘 해내기 힘들다.
그래서 고안한 ‘스무, 열, 다섯 글자로 줄여라!’ 책놀이를 소개한다. 책을 읽은 느낌이나 생각을 스무, 열, 다섯 글자로 표현하는 활동이다. 쉼표, 마침표, 느낌표, 물음표 등 문장 기호는 글자 수에 포함하지 않는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처음에는 스무 글자로 도전해보자.
<예시 – 흥부전>
20글자 : ‘짐승이라 무시 않고 다친 다리 고쳤더니 대박일세’
‘착한 흥부 복을 받고 못된 놀부 벌을 받고 사필귀정’
10글자 : ‘책임 못질 자식 낳질 말지’
‘놀부 끝까지 산다 복많네’
5글자 : ‘착하게살자’, ‘악인의최후’, ‘흥부최종승’,
글자 수를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가며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 적은 글자 수에 많은 의미를 담아야하기에 가급적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은’, ‘는’, ‘이’, ‘가’와 같은 조사는 과감히 생략된다. 처음에 스무 글자였던 것이 열 글자로, 마지막에는 다섯 글자까지 줄어든다.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맴돌기만 하던 아이디어가 글자 수에 맞게 꼭 맞아 떨어질 때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도저히 글이 안 써진다고 하소연하던 정균이도 멋지게 작품을 완성시켰다. 비단 정균이 뿐이었을까? 용기 내어 교사를 찾아올 수 없었던 학생들이 여기 저기 많지 않았을까?
애꿎은 연필과 종이를 괴롭혀가며 힘들게 독후감을 고집하지 말자. 문장으로 옮길 수 없었던 생각을 글로 나타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스무, 열, 다섯 글자로 줄여라!’에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