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심해에서 가오리와 블루스
아이가 유독 빨리 잠들어 주어 고마운 밤, 나는 눈을 감고 고민한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오십 분이라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대로 곯아떨어져서 다음 날을 개운하게 시작할 것인가. 마음만큼은 항상 일어나는 선택지를 고르지만,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아 대부분 기절한 듯 아침을 맞이한다.
조용한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은 평온하게 잠자고 나는 차를 마시며 야밤의 올빼미가 되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자유롭고 행복하다. 다른 평행 우주 속 나는 그냥 자버리지 않고 일어나는 걸 선택했을까. 혹시 일어났다면 얼마나 깨어 있다가 몇 시쯤 잤을까, 다음 날 피곤해서 후회하진 않았을까. 아니면 그 세계에서는 밥을 두 끼만 먹어도 에너지를 충분히 낼 만큼 인간의 신체가 강인할까.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면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된다. 부모가 아닌, 개인으로 고유하게 존재하고픈 욕망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정을 욕망이라고까지 불러야 할지 의문이긴 하지만.
나는 가끔 새로운 우주, 지금의 몸이 아닌 나를 꿈꾼다. 지금보다 더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활력 넘치며, 거칠 것 없는 내가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을 것만 같다. 어렴풋한 기대와 희망으로 버무려진 나의 꿈은 가슴 속 구석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다. 현실이 그 꿈에 가 닿길 바라지만, 쉽사리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없기에 궤도가 엉망진창인 혜성처럼 꿈은 나의 내면 어딘가를 불안정하게 떠돈다. 그러다 꿈의 표면이 생생하게 들여다보이는 경험을 했다. 허블보다 해상력이 천 배쯤 뛰어난 우주망원경을 설치한 듯 꿈의 구체적 단면이 또렷이 보였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문자로 빚어낸 꿈이다.
작품은 대체로 좋았지만 내가 유달리 빠져든 아이디어가 두 군데 있다. 우선,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마을. 마을은 천재 과학자 릴리가 창조한 유토피아적 세계다. 마을의 구성원은 슬픔을 알지만, 지속적인 갈등과 고통, 불행을 상상의 개념으로만 여길 만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49쪽). 사람에게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몹시 부러운 사회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고, 외부의 판단과 평가에 의존하게 되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마을에서는 얼굴의 흉터나 신체적 결함 따위가 차별의 근거로 작용하지 않는다.
나는 유아기부터 유스타키오관에 문제가 있어 남들보다 고막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와 있다. 염증이 자주 발생하여, 물이 귀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되고, 당연히 수영은 금지된다. 귀는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므로 어지러움에도 취약하다. 그러나 외관상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나는 격한 스포츠를 하지 못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노래방이나 클럽에 가지 못하고, 염증 때문에 술도 편하게 마시지 못한다. 그런 탓에 사회생활에 제약이 조금 있다. 수다 떨고, 농담하기를 즐기지만, 종종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조금 가까워진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귀 얘기를 꺼내면,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몹시 힘들겠구나 너 하고 싶은대로 해도 괜찮아,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고통을 잘 모르겠지만 일부러 술자리를 피하는 것 같아, 인간관계에 마이너스가 있으니 직장인으로서 역량에 흠이 있겠군 너무 친해지기는 힘들겠어.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난 후부터는 구태여 귀가 안 좋은 사실을 밝히지 않고, 사회 활동도 요령껏 거절한다. 그러는 편이 나도 좋고, 상대도 좋다. 사람들은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말하지만, 당장 본인과 엮이는 상황이 오면 곤란해한다. 나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숨기는 쪽을 택한다. 차라리 나는 숨길 수 있는 차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다. 소설 속 마을이었다면 나는 노래방에서 귀를 막고 있어도 전혀 손가락질받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사회에서 상처받고, 대중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일탈행동을 감행한다는 모티프는 책에 수록된 마지막 작품인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 등장한다. 최재경은 우주 탐사의 획기적인 도약을 가능케 할 터널 통과 프로젝트의 우주인으로 최종 선발된 인물이다. 그러나 선발 직후 온갖 논란에 시달린다. 마흔여덟이라는 나이와, 만성 전정기관 이상, 마르고 작은 체형, 한 차례 임신과 출산을 겪은 동양인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주류 사회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물론 재경을 제외한 나머지 우주인 두 명이 항공우주국 본부 출신의 백인 남성이라는 점도 한몫 한다(279쪽).
재경은 터널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이보그 그라인딩이라는 신체 개조 과정을 거친다. 체액을 고분자 나노 솔루션으로 교체하고, 피부와 혈관도 특수 물질로 바뀐다. 개조의 최종 단계에 이르면 원래 인체의 비율이 5분의 1 미만에 불과해지지만, 아무런 도움 없이도 깊은 수심까지 잠수할 수 있고 하루 네 시간의 수면으로 금세 피로를 회복한다(282쪽).
나는 재경이 미칠 듯이 부러웠다. 우리의 정신은 물리적인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평소보다 피곤할 때 아이에게 짜증을 더 내게 되는 것처럼 굳건한 신체를 가지게 되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일도 줄어들 것이다. 재경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단지 스트레스를 덜 받는 차원을 넘어서, 스트레스의 근원인 사회를 떠난다. 높은 절벽에서 심해를 향해 다이빙하는 재경의 동작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결정적인 암살 계획의 저격탄을 날리는 것처럼 정확하다(303쪽). 나는 시릴 만큼 차갑고 경쾌한 바닷물을 온몸으로 느꼈다. 완전한 해방,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데 재경은 굳이 핍박까지 받아 가며 낯선 우주로 일하러 가지 않는다. 나라면 자식들 미래 운운하며 투덜투덜 우주복을 입었을 테지만 재경은 쿨하게 기존의 세계를 버린다. SF의 맛이란 이토록 짜릿하고 깔끔하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인체 개조 기술이 안정화되면 기꺼이 받을 것이다. 아가미로 호흡하며 심해 가오리와 블루스라도 추고 싶다. 심심할지 모르니 배우자에게 권하겠지만 싫다면 혼자라도 받을 예정이다.
불과 150년 전, 쥘 베른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썼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지구 너머 우주를 꿈꾼다. 김초엽 작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픈지, 어떤 지점을 문자화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녀가 계속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음의 대사가 작가의 마음으로 읽혔다. 독자의 착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187쪽).”
<김해시 올해의 책 독후감 공모전 일반부 장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