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교실21] 도덕시간, 나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 비치해 두었던 데톨 향균 스프레이와 페브리즈
미세먼지가 심해 창문을 못 여는 날이면 '진짜 냄새를 없애준다'는 공기탈취제를 분사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청결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제자들에게 '몹쓸짓'을 했다. 생활용품이 살인도구가 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할 일이 있었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월요일 4교시 도덕 수업시간이었다.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초등 4학년 도덕교과서 26쪽에 등장했다.
바른 답을 선택한 현호를 칭찬하는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고개를 들어 교실을 쭉 훑어보자 키득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와중에 석율이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입꼬리가 올라가 있길래 물었다.
나도 모르게 그래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당황스러웠다. 칠판에 적어둔 대로 이번 시간 수업 주제는 '근면 성실하고 정직한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익히고 꾸준히 실천하기'였다. 복잡하게 접근하지 말고 그냥 당연히 정직해야지라고 일러주면 그만인 것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교과서대로 교사용 지도서에 나와있는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석율이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곳곳에서 터진 웃음소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교사 책상 옆에 놓여있던 데톨 향균 스프레이를 집어 들었다. 데톨은 신뢰의 상징이었다. 군복무 시절 의무실 책상엔 데톨 핸드워시가 놓여 있었고, 아내가 딸을 낳고 산후 조리원에 있을 때 데톨 알코올 소독제를 썼다. 더군다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위생 관련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부정을 저지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데톨 향균 스프레이를 석율이에게 줬다. 코 앞까지 가져가야 보이는 작은 글씨를 읽어보라 하였다. 석율이는 '사용시 주의사항'을 유심히 보았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그토록 강하게 주장하는 자유는 현명한 소비자를 가정하고 있다. 아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강조하며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경제활동이 자연스럽게 조정된다고 하였다.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고 의도적으로 불리한 사실을 은폐했다면 소비자는 해당 기업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정직하지 않고 비윤리적인 기업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경영 악화로 망한다고 해도 이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철학자 하버마스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합리적인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정직과 신뢰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신뢰보다 이익이 앞서는 사례가 숱하다. 폭스바겐 디젤 차량 리콜, 홈플러스 개인정보 불법매매, 옥시 가습기까지 최근의 일만 열거해 보아도 많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소한 피해 수준을 넘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 정직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