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샘's 여행에세이#01] 오랑주리-겹겹이 쌓으면 반드시 일렁인다
[나의 클로드 모네] #01오랑주리-겹겹이 쌓으면 반드시 일렁인다
2017년 뉴욕 모마에서 그림 한 점을 만나고 두 번째 파리행을 결심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이었다. 그 일렁이는 색과 빛이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모네가 그린 것은 바람과 햇빛과 물결이 아니었다. 공기 중에 빛이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그 흐드러진 색과 빛이 그날 내게로 왔다.
모네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거친 붓놀림과 물감의 물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일렁이는 색과 빛이 온 시야를 압도했다. 몇 걸음 물러나서 보면 겹겹이 쌓인 물감 흔적이 선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널따란 캔버스를 수없이 눈으로 훑어가며 붓자국을 좇다가, 나중엔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서 작품 속 연못 안에 푹 잠기고 말았다.
모네의 그림이 내게 말을 건넸다. 네 안의 흐드러진 갈급함을 이렇게 겹겹이 쌓으라고, 쌓다보면 이렇게 일렁일 거라고 했다. 가까이서 보면 순간순간이 하나의 붓 자국이고 물감 덩어리지만, 멀리서 너 자신을 바라보는 어느날 하나의 장면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했다. 내 안에서 차고 올라오는 어떤 울림이 자꾸만 목젖을 건드렸다.
오랑주리의 타원형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훅 들이마셨다. 찬찬히 걸으면서 네 점의 작품을 마주하는데, 눈물이 왈칵 터져나와 시야가 자꾸만 뿌옇게 흐려졌다. 그동안 당신이 내게 던져준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내 삶의 자리에서 색과 빛과 언어를 겹겹이 쌓다가 왔다고. 속으로 되뇌이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오랑주리 폐관시각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의자에 앉아 일렁이는 색과 빛 속에 잠겨있었다. 너 자신을 믿고 가라고, 사랑하는 이들이 네게 보내준 신뢰에 대해 책임감갖고 끝까지 가라고. 오늘의 모네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건넸다.
내 안에서 흐드러지듯 피어나는 색과 빛과 언어에 꾸준히 집중할 것이다. 매일 같이 그것을 겹겹이 쌓고 또 얹는 날들을 보낼 것이다. 그 흔적들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어느 순간, 일렁이겠지. 사무치면, 꽃이 피겠지. 모네의 그림이 내게 보여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