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상담소] #04모꼬지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 _내 단점 3만원에 사가실 분?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_모꼬지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
#04 내 단점 3만원에 사가실 분?
*모꼬지는 놀이 등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을 말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그림책 상담소]_모꼬지 그림책 프로젝트를 통해 하나의 주제로 여러 아이들이 모여서 함께 창작하는 방법을 나눕니다.
[그림책 상담소] 세 번째 글을 읽고 <단점 상점>이야기 기다려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그럼 현기증 나니까 얼른 이야기를 이어가볼게요.
2018년 3월, 좋그연에 참석했던 서울미래초 김지민 선생님 기억하시죠? 지민샘은 그림책 <그거 알아? 너만 그런 거 아냐>에 영감을 받고서 미끄러지듯 창작의 파도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림책 창작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지민샘은 이 모꼬지 그림책을 보면서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렇게 넘실대는 창작의 물결은 미래초 독서동아리 ‘어그작(어린이그림책작가)’ 아이들에게로 흘러갔고, 꿈틀꿈틀 새로운 창작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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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너만 그런데요?"
지민샘네 어그작 어린이들은 이렇게 시크한 분들이셨으니... 서로에게 공감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을까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지민샘은 단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큰 지철이를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 작은 목소리가 콤플렉스인 샛별이는 내심 지철이를 부러워하고 있더라는 점에 주목했지요.
<그거 알아? 너만 그런 거 아냐>는 내 단점에 이름을 붙이고 친구들에게 소개하면서 문제와 나를 분리하고 공감하는데 초점을 둔 그림책입니다. <단점 상점>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나에게 단점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그림책이예요.
"내 단점에 가치를 매기고 필요한 친구에게 판매까지 해보면 어떨까?"
창작이 파도를 타고 이어질 때는 이렇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듯 발전의 발전을 거듭합니다. 지민샘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너무나 멋지고 놀라울 따름이지요!
나의 단점을 누군가에게 팔기 위해서는 이 단점의 효능과 주의사항, 필요한 사람을 찬찬히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내 단점을 누구한테 팔면 좋을까?’
‘이걸 함부로 쓰면 안 될 텐데, 판매자로서 어떤 주의사항을 알려줘야 할까?’
이렇게 내가 팔고자하는 단점을 요리조리 살펴가며 사용설명서를 쓰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선생님 저는 말이 빨라서 항상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말이 느리고 버벅거리는 친구에게 이걸 팔면 요긴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 빠른 민규는 단점상점에 말빨이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판매자로서 이런 사용설명서를 썼어요.
Q. 말빨이를 구매하면 얻게 되는 효능 및 효과는 무엇?
A. 말이 매우 빨라지고 막힘없이 터져 나오게 된다는 점.
Q. 생산년도는 언제?
A. 2017년으로 추정되는데, 주인이 회장 선거에 나가면서 눈치를 챘기 때문.
Q. 사용 시 주의사항은?
A. 말이 너무 빨라지면 다른 사람이 못 알아들을 수 있으므로 적절히 사용할 것.
Q. 어떤 친구에게 추천하나?
A. 말이 느리고 버벅거려서 발표가 두려운 친구들이여, 이 말빨이를 구매해서 써보시라!
이렇게 내 단점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어느새 아이들은 나 자신뿐 만 아니라 다른 친구가 가진 문제도 조금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연결되는 또 한 권의 그림책이 있어요. 바로 <난 네가 부러워>입니다.
이 그림책은 한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친구들이 그 단점을 뒤집어서 그 아이만의 장점으로 승화시켜줍니다.
‘친구들이 여자 같다고 놀려서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아이에게 한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해줘요.
“난 네가 부러워. 내가 좋아하는 민지와도 친하게 지내잖아. 친절하고 상냥해서 여자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지.”
그리고서 슬그머니 본인의 고민도 털어놓습니다.
“난 민지하고도 다른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친구들 앞에만 서면 삐질삐질, 쭈뼛쭈뼛, 두근두근해."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자기 고민을 털어놓고 또 친구의 고민을 새로운 눈으로 보아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점을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지요. <단점 상점>과 <난 네가 부러워>를 통해서 아이들은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민샘과 독서동아리 ‘어그작(어린이그림책작가)’ 아이들은 그림책 <단점 상점>을 완성해서 우리반에 보내주었습니다. 이 책은 단번에 우리 반 학급문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어요. 아침 독서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그야말로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돌려 읽었죠.
미래초 도서관에도 우리 반의 <그거 알아? 너만 그런 건 아냐>가 전시되었고요. 우리반 어린이작가들이 얼마나 뿌듯해했을지, 말씀 안드려도 아시겠지요? 창작의 파도를 타고 그야말로 살아있는 학교 간 교류가 시작된 것이죠!
“선생님, 저 말빨이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편지 쓰면 전해주실 수 있어요?”
“저도 물음표한테 편지 써서 보내고 싶어요.”
그림책 한 권으로 시작된 학교 간 교류는 날로 풍성하게 무르익었고 두 학교의 어린이작가들은 서로 애독자 엽서를 주고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채린이는 삐짐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어요.
‘나는 3만 원을 지불하고 삐짐이를 샀어. 조금 비싸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사실 그동안 감정표현을 잘 못하고 꾹꾹 참기만 해서 속상했던 적이 많았거든.
그런데 이제 친구들한테 서운한 게 있으면 서운하다고, 삐진 게 있으면 삐졌다고 한번 용기내서 말해보려고.
너의 단점을 사서 장점으로 잘 키워볼게.
그리고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내가 5학년이니까 너보다 1년 더 살았잖아. 내가 보기에 너는 훌륭한 작가야.’
“삐지는 게 뭐가 좋아?”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아이들도 채린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서운하고 속상해도 그냥 꾹 참았던 아이에게는 한 번쯤 삐져볼 용기가 필요할테니까요.
동휘는 편지를 주고받은 38명의 단점 캐릭터를 정성스럽게 그려서 선물했습니다.
“우와, 이렇게 모아놓으니까 어벤져스 군단이 뜬 것 같다.”
“이기리가 열정을 내고 힘센이가 뚝심을 발휘하면 우린 뭐든지 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림책이 만들어준 파도를 타고 학교와 학교 사이, 책과 책 사이를 넘나들었습니다.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어느새 단점과 장점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어요. 아이들은 문제에 질질 끌려가지 않고 당당히 문제를 끌고 갔습니다.
아. 정말이지, 이 문제 덩어리들이 서로 힘을 합치면 이 세상에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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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8년 12월이 되었습니다. 지민샘이 좋그연 모임에서 처음 <그거 알아? 너만 그런건 아냐>를 만났던 2018년 3월로부터 정확히 9개월이 지났고...
지민샘은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 시즌 1 연말 파티에서 발표자로서 이 모든 놀라운 창작의 과정을 나누었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권의 그림책을 시작으로 창작의 파도에 올라탔습니다. 넘실넘실 물살을 따라 학교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 성장을 경험했는지... 생각할수록 가슴 벅찹니다.
지민샘과 함께 오래도록 아이들 곁에서 창작하는 삶 살기를 소망하며, 올해도 멋진 그림책을 창작해나갈 어그작 2기 어린이작가들을 힘껏 응원합니다.
*그림책 단점 상점(어그작 1기, 포앤포) 을 창작하신 김지민 선생님께 질문이 있거나 소통하고 싶으시다면 아래의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https://blog.naver.com/woou1000sa
*그림책 단점 상점(어그작 1기, 포앤포)의 전체 본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전자책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coolbooks.coolschool.co.kr/books/ac32e3f4-b2de-4118-9d95-b563a89969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