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for paris, pray for peace.
지난 주 금요일, 2015년 11월 13일.
파리에서 참 슬픈 소식이 전해져왔다.
약 6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파리 테러 사건.
사람들은 마음 아파했고,
그 마음을 담아 SNS에 프랑스 국기와 함께pray for paris 라는 문구를 올렸다.
모두가 함께 테러에 대해 분노했고, 또 피해자들을 떠올리며 슬퍼했다.
다들 한 마음으로 테러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 문득, 작년의 수업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난 주, 도덕 시간에 함께 나누었던 수업도.
수업 주제는 '전쟁과 평화'였다.
아이들은 전쟁을 참 좋아한다.
전쟁이라고 말할 때,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다양한 무기들의 이름과 '펑펑' 터지는 화약,
그리고 적으로부터 누군가를 구해내는 '영웅'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만나는 전쟁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보이는
왠지 모르게 '화려해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그런 이미지다.
비단 이뿐이랴.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도 전쟁은 쉽게 만난다.
우리들이 종종 쓰는 표현에는 '전쟁'을 빗댄 표현이 참 많다.
축구나 야구 경기를 할 때처럼 어떤 '승패'를 가르는 순간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생활 마저도 전쟁으로 만들어버린다.
"하루하루가 전쟁" 이라는 표현으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전쟁이 참 '익숙'해져버렸다.
그만큼 우리 마음 속의 '평화 감수성'은 무뎌지고 있는게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그려본,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로운 학급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고운말을 쓰고, 배려하고, 소외되는 사람 없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평화의 이미지로 떠올렸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
교실의 언어와 공기는과연 평화로울까?
혹시, 교사가 '친근함'을 가장하여 던지는 말들이 교실의 공기를 일순간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더라도,
아무리 친근하게 받아들이더라도,
"이놈의 자식이..."
"죽을래?"
같은 거친 말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공간은 평화롭기 힘들다.
그 말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우리의 공간과 우리의 마음에서
평화를 조금씩 갉아먹게 되지는 않을까.
(이 내용들은 다음 책에서 추출해낸 내용들이다.
평화를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쯤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평화란,
단순히 '싸움이나 갈등이 부재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다.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차별과 폭력의 씨앗이 자라지 않도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어느 한 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만드는 능동적인 행위여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평화를 요청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넘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평화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파리 테러와 같이, 어떤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나 자신을 '피해자'의 입장에 놓고 생각한다.
그리고 간절히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어쩌면 우리는 평화보다는 전쟁과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즉, 내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 설 수도 있음을 매 순간순간, 예민하게 느끼고 고민할 때,
그때 비로소 평화가 만들어질 테다.
그렇기에, 우리의 평화 교육은 조금 달라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먼저는 교사인 내 자신의 언어와 생각부터 조금 더 평화로울 수 있어야겠지.
수업 시간, 공식적이고 명료한 언어로서의 평화 수업이 아닌,
교사인 내 삶으로 보여지는 '잠재적 교육과정'으로서의 평화 수업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