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막쓰는 글]호칭을 버렸더니.
15년 전, 신규 때였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교무부장님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가,
장장 10분 넘게 훈계를 들었습니다.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5년 전, 처음으로 연수원에 강의를 나갔을 때,
연구사님께서는 저를 꼬박꼬박 “부장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너무 이상하고 어색해서, “저 부장 아니에요. ^^” 라고 했다가,
“네? 부장님 아니세요?...” 라며 뒷말을 흐리던,
무척 당황해하시던 연구사님이 떠오릅니다.
호칭.
조직 내의 직위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가방끈 길이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우리는 호칭을 달리합니다.
상대에 대한 호칭을 잘못하면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고,
엄청난 결례를 한 것처럼 여겨지고,
자칫 잘못하면 상대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할까봐 신경쓰이게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호칭은 알게 모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계질서를 세웁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사람 사이에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수직적인 관계가 맺어지기 쉽지요.
지위고하, 나이와 경력 등에 따라 불리는 호칭은 특히 그렇습니다.
6월 말, 제가 속해있는 한 모임에서 1박2일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끼리 룰을 하나 정했지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자!
형이나 누나, 오빠, 언니, 동생 같은 호칭도 사용하지 말자!
서로를 그냥 ‘이름’으로만 부르자!”
처음엔 엄청 어색했지요.
항상 꼬박꼬박 서로를 존대하며 대하던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호칭이 사라지자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있었던 거리감이 훅 사라집니다.
상대방에게 좀더 솔직하게 묻고, 솔직하게 내어보이며 대화하게 됩니다.
모임 안에서 위 아래로 10년 가량의 차이가 무색해집니다.
선생님, 언니, 오빠를 빼고 이름만으로 부르기 시작하니,
나이나 경험에 따른 대화가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고민의 깊이만큼 대화가 흘러갔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대하고 추구하던 ‘평등한’ 만남이 훅 가까워진 느낌이었지요.
꼭 호칭만의 문제는 아닐겁니다.
호칭만 없을 뿐, 여전히 서로를 위아래로 나누어 상하관계를 따지는 습관이 남아있다면,
불쾌감이 더 쌓이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말은 생각과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상하관계를 고정적으로 표출하는 호칭대신,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표출하는 ‘이름부르기’로 만나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새롭게 배우고, 모두가 모두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
PS.
앞으로 저를 만나게 될 많은 분들께,
저를 앞으로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은진'이라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
저와 당신의 만남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만남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