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보다]#4. 담임 복불복
1시 40분, 아이들이 하나둘, 교문을 빠져나와 놀이터로 모인다.
놀고있는 아이들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엄마들은 각 반의 상황과 정보를 주고받기에 바쁘다.
어떤 반은클래스팅으로 매일 사진과 학급살이 소식이 올라온단다.
엄마들은 부러워한다.
어떤 반은벌써 수학 단원평가를 치렀다고 한다.
엄마들은 우리 반도 시험 볼텐데, 왜 얘기가 없는지를 궁금해한다.
그 옆반은주간학습안내에 아이의 성장 과정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보냈더니,
선생님께서 ‘너는 왜 알림장에 써주지도 않았는데 가지고 왔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반은매일 하교시간이 다른 반에 비해 15분 가량 늦는다.
그 옆에 있던 다른 반 엄마 왈, “그래서 그 반 때문에 우리 애들까지 학원 시간이 늦어지잖아.”
엄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늦게 끝난 반 엄마는 자기 애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남은 한 반은하루에도 10여 차례씩 ‘손머리’를 시킨다고 한다.
활동을 미리 끝낸 아이도 손머리, 틀려도 손머리, 밥을 다 먹어도 손머리,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조금만 뛰어도 손머리.
엄마들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며, 속상해한다.
"우리 반도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엄마들의 부러움 섞인 목소리,
“우리 반은 알림장도 없어!”라는 불만에 찬 하소연이 뒤섞여서 놀이터를 채운다.
교사일 때는 동학년에서 ‘통일’하자는 말이 참 싫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펼쳐가지 못하고 제한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되고 보니,
‘통일’되지 않고 각양각색으로 전개되는 교실의 모습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통일되지 않고, 각 반 담임에 따라 너무 차이나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2학년이 5반까지 있다.
그리고, 그 반들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그 다름은 '불편'으로 다가온다.
어느 반은 하는데, 어느 반은 안하면 괜히 불안하기도 하고 반대로 부럽기도 하다.
특히, 클래스팅으로 매일 교실 사진과 이야기가 올라오는 반은 더더욱 부럽다.
우리 아이의 반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잘 따져보니,불편함의 원인은 ‘차이나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일명, ‘담임 로또’ 현상에 따른 불편함이었다.
내 아이의 담임이 누구냐, 어떤 사람이느냐에 따라
내 아이가 받는 공교육의 질이 달라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아이가 받고 있는 교육의 질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는 불안감이다.
(그냥 믿으라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담임이 누가 되느냐가 복불복이다, 로또다라는 표현은
각 교실의 ‘활동 자체’가 차이나는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니다.
교사가 아이와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학부모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인가,
아이를 향해 얼마나 인내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각 교실의 구체적인 생활모습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 반이 어떤 내용,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공개하고, 미리 예고해준다면
엄마들은 불만을 갖지도, 또 불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 그런지에 대해 안내받지 못한 엄마들은오해한다.
"우리 선생님은 나이가 많아서, 귀찮은게 싫으신가봐."
"그러니까 나이 많은 선생님은 별로라니까?..."
"우리 담임쌤은 교과서에 있는 것도 안하고 그냥 넘어가. 학원 보내야 할까봐."
"우리반 쌤은 미술 시간 준비물로 10가지를 가져오라고 해놓고는 2개밖에 안썼어. 돈 아까워."
"우리반은 맨날 놀다가, 막판에 안한거 하느라 바빠."
등등, 조금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했더라면 하지 않았을 오해,
잘못된 인식들이 엄마들 사이에서 널리널리 퍼져나간다.
어느날 갑자기, 알림장에 ‘내일 시험’, ‘내일까지 사진 5장’ 이라고 적혀있으면 곤란하다.
엄마들에게도 계획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준비물을 준비해줬는데, 안 썼다고 하면 허탈하다.
적어도 1주일 전에 준비물이 안내되고,
그 안내된 시간에 맞춰서 준비하면 된다는 믿음을 주고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게놀이’를 왜 하는지, 혹은 왜 안하는지,
다른 반은 5월에 하는 활동을 왜 우리반은 10월에 하는지를 알 수 있으면,
엄마들은 불안하지 않다.
담임의 변덕에 따라 내 아이의 교육경험이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참 중요하다.
각 교실의 개성, 각 교사의 개성에 따라 특색있게 가르치고 특색있게 배우면서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과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자유분방함을, 올해는 꼼꼼함을, 내년에는 창의성과 도전을 경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다양성이 ‘질/수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다양성이라 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교실살이의 방식, 수업 활동, 안내장 양식을 통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의 제공과 학부모들의 접근 기회,
아이를 대하는 교사의 태도에 있어서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보의 제공과 접근기회,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학교교육의 질/수준’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서 교사들의 논의 지점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통일을 '할건지, 말건지'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교육기회의 제공을 위해
'무엇을' 같게 해야 하고, 다르게 해야 할지 말이다.
담임교사 배정과 관련하여 ‘복불복’, ‘로또’ 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복불복, 로또라는 표현이 나올수 밖에 없는 상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교사 개개인의 열정/노력의 크기에 따라
아이들과 학부모가 만나는 교실살이가 들쑥날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부모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교사 자신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