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인권하다]첫번째 이야기, 4월 3일
인권을 공부하면 할수록,
인권의 핵심은 아주 작고 사소한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커다란 이슈, 충격적인 어떤 순간이 아닌,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생활 속에 말이지요.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오늘' 속에서 인권의 장면을 찾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늘을 인권하다'는 그런 이야기를 위한 코너(?)입니다.
첫번째 이야기, '4월 3일',
제주 4.3 사건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올해 4월 3일은 제주 4.3 사건 7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주 4.3,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의 역사,
오늘은 제주 4.3을 평화와 인권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국가 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 (2006년 4월 3일, 4.3 위령제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 중)
4.3사건을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혼란스러웠던 시기,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편이 옳다, 그르다 라고 분명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국가권력이 한 일은 ‘대량학살’이었습니다.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의무를 저버린 셈이지요.
권력자의 입맛대로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하여 공권력을 휘두르고,
그 과정에서 생명의 희생과 인권의 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우리는 국가폭력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제주 4.3은 국가폭력입니다.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우익세력과 경찰들에게
‘마을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여성들에게 순위를 매겨
오늘 밤에는 1번, 내일 밤에는 2번, 그들에게 모내는 거죠.
돌아온 여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거예요.
무슨 일을 당했는지 여성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거죠.”
- (<언팩에어라인> p.109 중에서)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특수한 폭력이 있었습니다.
성폭행, 여성고문, 대살(남편이 도피했을때 아내를 대신 죽이는 것), 강제결혼 등...
그러나 그 피해자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경험을 증언하길 주저합니다.
피해자 여성을 가부장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알기 때문입니다.
꼭 4.3만의 일은 아니지만요.
대부분의 국가폭력이나 전쟁 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장면입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지요.
제주 4.3사건을 젠더폭력의 관점으로 다시 읽을 수 있을때,
어쩌면 우리는 제주 4.3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섬세한 평화와 인권의 시선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3 사건에서 학살당한 ‘양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양민.
좋은 백성.
좋은 백성,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반대로, 나쁜 백성, 나쁜 사람이라면 ‘학살당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누가 가르고 누가 규정하는 것일까요?
양민학살이라는 표현은
‘좋지 않은 나쁜’ 사람은 학살당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암암리에 떠올리게 만듭니다.
제주 4.3 사건은 ‘양민’을 학살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통치권력 유지를 위해 ‘사람’을 학살했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입니다.
제주 4.3의 상징, 동백꽃.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스러져간 사람들 같다 하여,
4.3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71주년이 된 제주 4.3을 떠올리며
평화와 인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