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렌즈]중앙현관 들여다보기
강의 차 들렀던 한 학교의 중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한 장의 커다란 사진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의 크기에 깜짝 놀랐고,
두번째로는 사진에 박혀있는 문구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이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이 오락가락합니다.
왜 하필 Boys 일까, 여학생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학생들이 이 사진, 이 문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학생들은 꼭 야망을 갖고 큰 꿈을 꾸어야만 할까.
그냥 지금, 현재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등등,
한번 심란해진 마음이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고작 사진 한 장에, 마음이 심란해졌다니,
너무 '오버'아닌가? 싶은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 사진이 학교의 한 구석에 조그맣게 걸려있는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심란하지는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학교의 가장 중심부인 중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로 걸려있는 사진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중앙현관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근무하는(근무했던) 학교의 중앙현관도요.
생각해보니, 중앙현관은 항상 비슷한 느낌, 비슷한 모양이었습니다.
위 사진처럼 커다란 이미지와 메시지가 담긴 벽면이던가,
아니면 아래 사진처럼 학교의 역사, 학교가 받은 상장과 트로피,
역대 교장선생님의 사진이 줄줄이 걸려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주된 출입구로 사용되지 아니하고요.
학교의 중앙현관은 다른 곳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일종의, '학교의 얼굴'과 같은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때는 학생들은 중앙현관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비워둬야 하는, 성역과 같은 곳이었지요.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중앙현관은
따라서, 학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권교육을 논할때, 흔히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말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권을 통한 교육' 입니다.
학생들이 경험하고 생활하는 교실과 학교의 환경, 분위기,
전반적인 시스템 속에 녹아들어있는 '인권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교사들에게 익숙한 용어로 바꾸자면, '잠재적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UN의 인권고등판무관인 제이드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하였지요.
한번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학교는 과연 인권친화적인 공간일까요?
학생들은 우리의 학교 환경을 통해 인권의 기본 가치인 존중과 평등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을까요?
학생들이 처음 학교에 도착해서 만나게 되면 중앙현관,
그 곳에 남학생을 지칭하는 boy만이 언급되고,
상을 받아온 학생들이 기념되거나,
교장선생님의 사진들이 즐비하다면,
그 곳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학교는 여학생보다 남학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학교는 명예를 드높인 학생을 존중하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라고 말입니다.
이제는, 학교의 중앙현관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학생들의 사진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학생들의 평범한 그림이나 작품이 들어가면 좋겠고,
무엇보다, 중앙현관이 '죽어있는' 빈 공간이 아닌,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찬, 살아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