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꿔놓은 우리 집 풍경
집순이 끝판왕이 되다.
올해 초 우리 또지는 폐렴에 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이름 뒤에 ‘19’라는 숫자가 붙지도 않았을 때다. 다행히 또지의 경우는 원인과 치료법이 확실했기에 입원 5일 만에 퇴원했고, 한 달 가량을 외래로 치료했다. 폐렴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원래도 집순이였던 또지는 ‘집순이 끝판왕’이 되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어지간한 건 죄다 해본 기분이다.
도 닦는 기분으로 육아하다.
난 왜 아이가 하나였을 때 그렇게 힘들다 했을까? 물론 처음이니 서툴고, 어렵고,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으니 그렇게 느꼈던 것이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가 둘이 되니, 이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친정엄마의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 뱃속으로 낳은 놈들인데,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
‘이놈 편도 못 들고, 저놈 편도 못 들겠다.’
또규가 그냥 누워만 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버틸만한 육아였다. 그런데 앉고 기고, 걷는 순간이 오자 웰컴 투 헬! 정말 장난이 아니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말이 왜 있는지 몸소 와 닿았다.
누나 장난감이 궁금해 손을 뻗는 또규와 안된다고 소리치며 버티는 또지.
안아서 재워달라는 또규와 같이 역할놀이 하자는 또지.
자동차 책을 읽어달라는 또규와 전래동화책을 읽어달라는 또지.
뽀로로 만화를 보겠다는 또규와 옥토넛 만화를 보겠다는 또지.
난 이 둘 사이에서 솔로몬이 된 것 마냥, ‘그냥 너네 둘이 엄마를 둘로 나눠 가져라!’라고 말하고는 바닥에 드러누운 적도 많았다. 이런 두 아이와 끝이 안 보이는 집콕 생활을 했다. 그러니 오죽하겠나. 나는 순간순간을 깊은 심호흡과 자아 성찰로 나를 다독이며 도를 닦는 기분으로 육아를 했다. 사실 속으로 많이 외쳤다.
‘내가 엄마가 긍정 훈육 배운걸 다행으로 알아라. 안 그랬으면 가차 없이 부정적 훈육이었을겨.’
병원을 덜 간다.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의 등원이 잠정적 무기한 연기되었다. 단체생활을 멀리하고, 외출을 덜하니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친정엄마 역시 병원을 덜 가는 손녀손자를 보시니, 좋으셨다보다. 오죽하면 코로나 덕분에 애들이 약을 덜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하실 정도였다. 사실 아이들이 병원을 자주 드나들면, 아이들 챙겨 병원가고 때 되면 약 챙겨 먹여야하니 보호자도 피곤한 법이다. 그런데 병원 가는 일 하나가 줄어드니 그건 참 좋았다.
각종 마스크를 알게 되다.
정말 어른들은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아무 마스크나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연령이라도 얼굴 크기가 다양하고, 조금씩 계속 성장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은 유색이나 캐릭터 마스크 등 자기 취향에 맞는 마스크를 찾아대는 통에 부모들은 우리 아이의 선호 마스크를 구한다고 바쁘다. 친정 엄마는 아무거나 그냥 대충 씌우면 되지 않냐고 말씀하셨지만, 답답한 마스크를 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날이 더워진 탓에 또지는 일회용 덴탈 마스크를 선호하는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규는 여전히 2단 새부리형 kf 마스크를 선호한다. 정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준비해둔 마스크를 모두 소진하기 전에 코로나19가 물러가면 좋겠다.
공원이나 숲 놀이터 등을 찾아다니다.
날이 추울 때는 주로 집안에 있거나 할머니 집에 가곤 했는데, 날이 풀리면서부터는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혹시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실내에 가는 걸 꺼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이 최대한 몰리지 않을 시간에 야외 공원이나 숲 놀이터 등으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상하자마자 이동하는 것도,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엄마들의 정보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나 블로그를 통해 얻은 정보로 다니는 숲 놀이터나 야외 공원 등은 키즈 카페나 대형 놀이공원에 못지않게 정말 흥미롭고, 정말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자라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기관의 소중함을 알게 되다.
설연휴부터 폐렴으로 인한 입원 및 자체 격리, 그리고 코로나 19까지, 약 5달 가까이 기관에 등원하지 않았다. 복직을 앞두고 둘째 또규도 등원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all-stop상태였다. 한 교실에 25명 내외 학생들과도 생활하는데, 내 아이 둘 보는 게 뭐가 어렵겠냐 싶겠지만, 하루종일 함께하다 보니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겠다 싶은 순간들이 많다. 누구는 미래에 없어질 직업 중 교사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이번 기회로 알게 되었다. 분명히 기관과 교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기관에서 보내준 놀이 꾸러미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친해졌다.
만난 지 아직 만2년도 안된 사이, 또지와 또규. 그런데 몇 달간 아이들이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서로 정말 많이 친해졌다. 물론 서로 다투거나 각자 놀이할 때도 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사이도 깊어졌다. 또지는 아직 말 못하는 또규의 통역사 역할을 하고, 또규는 엄마아빠보다도 누나를 따르고 좋아할 정도가 되었다. 아이를 둘 이상 키우기 시작하면서, 둘이 언제 놀까? 둘이서 좀 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어디를 가든 같이 놀 친구가 생긴 두 아이는 이제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청소기 돌릴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신랑 덕분에 온 가족이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고, 살을 부대끼고 지내다 보니, 서로를 위로하거나 격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더 하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주로 내가 보고 전해주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함께 보고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가깝고 짙어지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잃은 것도 있는 반면 코로나 19 ‘덕분’에 얻은 것도 분명히 있다.
언제 물러갈지 모르는 바이러스의 공포 때문에 일상의 삶이 무너지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사소한 기쁨과 의미를 찾기 위해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