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냐, 20개냐. 그것이 문제로다. _(2)
“또지의 칭찬 스티커를 모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같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좋아요~!”
“여보는요?”
“나도 좋아요!”
“또규도 괜찮아?”
“아!”
뭔지도 잘 모르고 대답한 것 같은 두돌배기 또규까지, 우리는 이야기 나누기에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가족회의는 서툴지만 진지하게 시작되었다.
언젠가 우리 부부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열린 소통문화를 만들기 위해 가족회의를 꼭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지닌 문제를 함께 의논해 중요한 결정을 내림으로서 아이가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가족회의를 하기 전에 정기적인 회의 날짜와 시간, 장소를 정하는 거나 이야기 나눌 주제를 미리 정하고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회의 진행, 회의 내용 기록, 시간 관리, 간식 준비 등 각자의 역할을 정해 참여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하지만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시급히 결정해야 할 때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대신 잠깐이라도 자기 의견이나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각자 가져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 잠깐 각자 자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볼까?”
놀이터 근처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지나가던 동네 이웃은 우리가 멍 때리는 줄 알고, 한마디 했다.
“아니 온 가족이 여기 앉아서 왜 멍 때리고 있어?”
“아, 아니. 우리 가족이 중요하게 이야기할 게 있어서 각자 생각 좀 하느라.”
가족 모두가 말하기 기회나 순서를 동등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처음을 경험하는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역할모델이 되어줄 필요가 있어서 부모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 또지가 칭찬 스티커 모으는 거에 대해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이야기 나눠볼까요? 솔직히 그동안 엄마는 또지가 선물을 받기 위해서 스티커를 모으는 것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었어. 또지가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었거든.”
“그래도 나는 이번에 스티커를 모아보고 싶어.”
“아빠는 어때요?”
“나도 칭찬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뭔가를 하는 건 원치 않지만, 또지가 해보고 싶어한다면 한번은 해보는 게 어떨까요?”
“좋아요!”
“그래요. 그럼 어떻게 모으면 좋을까요?”
가족회의도 공식적인 자리이다. 당연히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소통하기 위해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아직 그런 분위기로 바로 전환되기 어려운 6살이 아니던가. 우선 이런 자리를 만들어 가족회의를 시작했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말이 주는 힘이 대단하기 때문에, 점차 우리 가족 문화 혹은 관계의 힘을 키우기 위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거나 닉네임을 정해 부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 나는 처음엔 11개가 적당할 거 같다고 생각해!”
“엄마는 10개나 11개는 좀 적다고 생각해. 20개가 또지한테 적당하다고 생각해.”
“나는 20개는 많아. 그거 모으느라 내가 너무 힘들면 어떻게 해.”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20번은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빠는 20개를 모으면 어떨까해. 대신 10개는 또지가 스스로 열심히 했거나 잘 했다고 생각할 때 붙이고, 10개는 엄마가 붙이는 게 어떨까?”
“또지 생각은 어때?”
“좋아요! 그럼 내가 붙이고 싶을 때도 붙일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스스로 붙일 만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처음에 10개를 제시하던 또지는 20개를 외치는 엄마와의 극적 타결을 위해 11개로 스스로 스티커 개수를 조정했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10개나 11개나 그게 그거 아닌가? 사실 네가 원하는 대로 칭찬 스티커를 모으기로 했으니,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그 갯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
허나 그렇게 할 거였으면 가족회의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터.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 아이의 의견을 묻는 우리 가족의 ‘문화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서 스티커 개수를 조정하는 문제는 어쩌면 칭찬 스티커 모으기를 결정한 것보다 더 중요한 논의거리였다.
또지와 내가 스티커 개수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빠는 다른 의견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했다. ‘우와, 왜 나는 그 방법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어른은 전지전능한 존재나 아이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양육하기 위한 양치기가 아니다. 그래서 또지 아빠가 제시한 의견은 어른이 판단만으로 모이는 칭찬 스티커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모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엄마는 아이가 밥을 다 먹어야 스티커를 붙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아이는 평소 먹기 어려웠던 김치를 먹기 위해 도전한 것만으로도 스티커를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도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지야, 그런데 뭘 하기 전에 ‘나 ~하면 스티커 줄 거야?’나 ‘나 이거 했으니까 스티커 붙여줘!’같은 말은 안했으면 좋겠어.”
“그럴게!”
“그래, 엄마도 이건 아빠랑 같은 생각이야.”
“좋아! 근데 20개는 좀 많은 거 같아.”
“그래? 음, 그러면 16개 정도는 어떨까? 또지는 6개, 엄마 5개, 아빠도 5개.”
“그러면 아빠도 붙여줄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아빠도 우리 가족이니까.”
“음...... 좋아!”
"오~ 그럼 아빠도 우리 또지 칭찬스티커 붙여줄 수 있겠네!"
우리 부부는 아이가 특정 행동을 하고 그때마다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분명히 말했다. 한편, 또지는 끝까지 스티커 개수를 조정하려고 했고, 우리는 스티커 16개 모으기에 적극 타결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또규도 언젠가 우리 가족 회의에 동참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부모가 제시하는 것에 아이가 ‘네, 엄마!’하고 따라오면 부모는 수월하고 좋다. 어쩌면 모든 부모가 원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속마음도 대답과 같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엄마이기에 알 수 있는 또지의 표정이나 어투가 있다. 그래서 간혹 대답이랑 속마음이 다른 거 같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또지 진짜 마음은 어때?’하고 물을 때가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하는 사회에서 상황이나 상대방을 고려하는 말하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면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의견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곁에서 자기의 진짜 마음이나 생각을 한 번 더 직면할 수 있는 연습을 돕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이런 문화 속에서 아이는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고, 만약 성인이 되어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기 의견을 당당히 표현하며 문제 해결을 하리라 본다.
어쩌면 아이가 성장하는 이 과정 속에서 나 역시 내 의견을 합리적이고 당차게 말하는 연습을 하며 열린 소통과 경청의 자세를 배워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동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고,
또 어른들은 그들의 의견을 들어 주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12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