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했어! vs 고마워!, 당신의 선택은?
해밀골뽀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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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00:53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나.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려준 남편에게
'와, 잘 기다렸어!' 혹은 '기특해!'
라고 말할 아내가 과연 있을까? 아마도 없을 거다. 오히려
'늦은 시간에 기다려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지 않을까?
'잘했어!'
육아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주 내뱉는 말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소위 이를 '칭찬'이라고 한다. 물론 긍정적인 관심이나 칭찬은 듣는이의 행동을 강화하거나 기분을 좋게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라도 행동을 계속 하겠지만, 바꿔말하면 칭찬이 없다면 그 행동을 멈추고 말것이다.
하지만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긍정적인 평가 혹은 판단이다. 그리고 이는 곧 아이와 내가 대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 관계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 상사의 업무 능력에 대해 '잘했어!'라고 하지 않는 경우처럼.
어느날 장난감을 스스로 제자리에 정리하는 아이를 본 엄마는 문득 '우와~ 잘했어!!!!'라고 과장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칭찬하겠지만, 이때 엄마의 마음은? 잘하고 있는 행동을 칭찬하고 강화해서 남아있는 장난감 모두를 정리하기 바라는 마음이 클지도 모른다. 선한 의도가 아닌 칭찬은 아이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칭찬이 반복될 수록 아이는 칭찬에 무뎌질 것이고, 칭찬이 없다면 굳이 그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의 경험이나 지식, 선택이나 책임의 범위가 부모와 다를지언정 나와 대등한 능력을 지녔음을 인지한다면, 그리고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칭찬할 필요 없이 아이 자체를 인정하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고마워!'
아이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와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인지했다면, 이젠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자.
#1.평소 이유식에 흥미를 보이지 않던 또지가 어느날 갑자기 맛있게 받아먹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또지, 이유식 진짜 잘 먹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 또한 가벼운 칭찬 같다는 느낌이 들어
'또지, 엄마는 또지가 이유식을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엄마까지 기분이 좋아졌어!'
라고 말해주었다.
#2.종이블럭 놀이가 끝난 후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정리를 도와주는 또지에게 '또지, 블럭 정리 진짜 잘한다! 이것도 해볼래?'라고 말하는 대신
'또지야, 엄마랑 종이블럭을 제자리에 넣는 걸 함께 해줘서 고마워! 정말 큰 도움이 됐어!'
라고 말해주었다.
실제 두 경험의 공통점을 무엇일까?
'잘했어' 대신 '고마워'라고 말했을 뿐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맛있게 먹고, 종이블럭을 제자리에 정리한 것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엄마가 눈치껏 살짝 모른척 하자. 아이는 칭찬받기 위해 혹은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자연스레 경험을 통해 선택하고 책임을 지며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고맙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짧게나마 육아를 하며 경험해본 결과 그렇지 않다. 우선 어른이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쑥스럽기도 하고 아이의 행동이나 노력 등에 매사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워!' '큰 도움이 됐어!' '덕분에 엄마가 ~했어!' 등 아이의 행동에 대한 고마움을 적극 표현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아이는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경험을 통해 본인이 가치있고 쓸모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삶의 진짜 주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