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누군가 내게 던져주는 한마디.
‘힘들지?’
마음이 담긴 이 짧은 한마디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만큼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가끔은 나를 대신해 ‘넌 지금 힘들다.’고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결혼하니까 힘들지?
미혼이었을 때, 옆 반 선생님이 나의 네일아트한 손을 보며 연신 ‘예쁘다!’고 말하며 부러워했었다. 평소 언니동생하며 지내던 사이인지라 ‘언니도 네일아트 한 번 받으러 다녀와~ 그렇게 많이 안 비싸고 기분 전환도 되니까 좋은 거 같아!’라고 가볍게 말했었다. 그러자 기혼자였던 언니는 ‘너 결혼해봐라. 그게 어디 쉬운가. 너 결혼하면 네일아트 하는지 안하는지 내가 지켜볼거야.’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해 당황스러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로 처한 상황이 달랐던지라 언니의 마음을 오롯이 공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그때 내가 쉬이 했던 그 한마디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음을 몸으로 경험했다. 일과 육아, 그리고 살림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이 네일아트샵에서 한 두 시간 남짓을 앉아있을 여유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 비용을 생각하면 ‘이 돈이면 우리 가족끼리 외식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쉽사리 포기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다시 만났을 때 그 언니는 ‘결혼하니까 힘들지? 처녀일 때처럼 네일아트 못하고.’라고 물어왔다. 이 물음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은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다’이다. 분명 결혼 후 포기한 것이 있었지만, 오히려 결혼 후 느낄 수 있는 만족이나 행복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네일아트는 포기했지만, 그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저녁과 심야영화를 즐기고 두 손 꼭 잡고 산책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내 삶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가는 그 길에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꽤 할만한 것이었다.
애 낳고 집에 있으니까 힘들지?
교실 속에 있는 나는 정말 살아있다고 느껴질 만큼 자존감이 충만했고, 행복 그 자체였다. 주어진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을 계획할 때나 학생들이 학습활동에 몰입해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 신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출산과 동시에 휴직교사가 되었다. 아이의 얼굴을 볼 때면 흔히 말하는 ‘엄마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집 건너에 보이는 학교 교실에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볼 때면 ‘나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불연 듯 떠올라 우울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놀러온 동료교사가 ‘애 낳고 집에 있으려니까 힘들지?’라며 건넨 위로의 한 마디와 동시에 나는 ‘힘든’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육아와 살림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져 우울함은 더 깊어지고 짜증만 늘어갔다. 그래서일까? 변함없이 바깥일을 하는 신랑을 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화가 치솟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 감정들은 점차 누그러지면서 다시 나와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신랑은 바깥일을 하며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아 밝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분명 아이가 생김과 동시에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생겨서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우리가 있었다. 또한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아이를 통해 오롯이 드러나고 있어서 ‘엄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충분히 가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들이 딸보다 힘들지?
정말 무더웠던 올 여름, 둘째 아들을 출산했다. 임신 기간 중 성별을 확인한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내게 ‘딸 키우려다 아들 키우려면 더 힘들어! 아들은 버티는 힘부터가 달라!’라고 연신 말해왔다.
딸을 키우면서도 육아는 힘들다고 생각한 때가 꽤 있었다. 아빠와 함께 체육관에서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뛰어 놀 만큼 신체적 에너지가 남자아이들에 버금가고, 엄마의 표정에서 ‘슬픔’을 포착해 ‘엄마, 괜찮아!’라고 말할 만큼 감정적으로도 민감한 아이였다. 게다가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 없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서 어른들을 당황케 하는 모습도 지녔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렵다니? 아직 아들을 일 년도 채 키워보지 않은 나는 한편으론 겁을 먹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러면 딸은 키우기 쉬운가?’라는 반문이 생겼다. 어쩌면 아들을 제대로 키워보지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성별에 따라서 육아가 더 쉽고 어렵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단지 아이의 성향이나 부모의 육아 스타일에 따라서 그 힘듦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을 출산한지 두 달 정도 되었다. 여전히 ‘아들이 딸보다 힘들지?’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질문에 나는 ‘첫째랑은 달라요.’라고 답할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니 마음은 가볍다. 그리고 나의 육아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