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있다.
지난 주말 또지와 복합 쇼핑몰에 다녀왔다. 또지를 위해 회전 그네가 있는 카페를 찾아갔으나, 정작 또지는 그네에 관심이 없었다.
또지의 시선이 머문 곳은 카페 내에서 판매하는 ‘토끼인형’이었다.
토끼인형 옆을 서성이다 한 번 끌어안아보더니 또지가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토끼인형 갖고 싶어요.’
평소 사전에 약속하지 않았던 것을 아이가 원한다는 이유 때문에 즉흥적으로 사주지 않는다. 그게 우리의 원칙이다.
그런데 ‘엄마’로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영화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의 눈으로 날 쳐다보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이유 없이 사주고 싶은 날.
하지만 더이상 집안에 ‘인형’을 쌓아두고 싶지 않았던 나는 협상에 들어갔다.
‘또지가 이 토끼인형이 갖고 싶구나. 그런데 저 옆에 장난감 가게에 가면 또지가 좋아하는 ’슈퍼윙스 미나‘(또지가 관심을 보였던 만화 캐릭터)가 있어. 그러면 일단 슈퍼윙스 한 번 보고, 토끼 인형이랑 슈퍼윙스 중에 또지 마음에 드는 걸로 사는 건 어떨까?’
답.정.너.
사실 ‘어떨까?’라고 또지의 의견을 묻고 있었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엄마의 표정을 살피던 또지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선 또지에게 평소 관심을 보이던 슈퍼윙스의 주요 캐릭터 장난감들을 보여주었다.
‘또지야, 슈퍼윙스 두두다! 제롬이다! 봉반장이다!’
여기서 선택을 내렸으면 하는 엄마의 성급함이었을까?
또지가 생각할 틈도 없이 계속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또지는 선택하지 않고 멍하게 쳐다만 볼 뿐이었다.
‘또지야, 이 ‘미나’는 어때? 이것도 집에 있는 아리처럼 여자 캐릭터야! 우와~ 아리처럼 예쁘다!’
‘그래.’
또지는 어떠한 리액션도 없이 퉁명스럽게 답했고, 못난 엄마는 또지의 잇 아이템 슈퍼윙스 아리를 끌어들여 결국 정해진 답을 선택하게 했다.
구입을 마치고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내내 또지는 유모차에 앉아 어떠한 말도 표정도 없었다.
심지어 새로 구입한 장난감마저도 엄마에게 들고 있으라 할 정도였다.
그 순간 아이의 욕구를 지연시켰던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불편하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또지야, 왜 그래? 미나가 마음에 안 들어?’
‘......’
‘또지야, 괜찮아. 또지 마음을 얘기해봐.’
‘엄마는 미나 좋아하지?’
‘응, 엄마도 미나 좋아. 또지 마음은 어떤데?’
‘토끼인형 갖고 싶어요.’
그거였다. 사실 또지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끼인형’이었다.
‘그런데 왜 토끼 인형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어?
라는 물음에 또지 아빠가 답해주었다.
‘또지가 엄마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은 거 아닐까? 어쩌면 또지는 지금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수 있어.
사실 장난감은 인형보다 가격이 비쌌고, 평소 또지가 더 자주 관심을 갖던 대상이었으니 당연히 협상 탁자에 올려놓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또지는 엄마의 눈빛에서, 표정에서, 그리고 말투에서 엄마의 의중을 읽었던 것이었다.
아직 만 29개월.
한없이 어리다고 생각한 아이가 엄마의 감정을 읽고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느끼는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을 부모가 대신 결정해줄 수는 없고, 부모의 기대를 아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자율적 선택을 경험해봄으로써 자기의 삶을 건강히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긍정 훈육에서 아이의 두뇌는 자기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물건이 있을 때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고 자극을 느낀다고 한다. 부모로서 아이가 무엇을 바라볼 때 눈이 반짝이는지, 열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탐구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토끼인형을 품에 안은 또지가 꺄르르 웃는 보며 다시금 생각해본다.
정말 다행이다.
‘새 장난감을 사줬는데 왜 안 가지고 놀아? 다음부터 안 사준다!’라고 다그치지 않아서.
그리고 아이의 진짜 마음을 들어보고 싶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