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이야기
그 사람을 ‘여자’로 이해하게 된 것은 내가 26살일 때였다.
그 전까지 그 사람은 나에게 그저 평범한 ‘엄마’일 뿐이었다.
신규 발령을 받고, 진짜 내 인생을 시작한 것만 같은 부푼 설렘을 가지고 살던 어느 날.
월급을 받고 백화점으로 달려가 ‘신상’ 옷들을 들었다 놨다 하던 그 순간, 나는 뜬금없이 엄마의 나이를 거슬러 계산하고 있었다.
‘아, 우리 엄마가 날 낳고, 한참 육아를 하던 그때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랑 비슷했겠구나.’
그 당시엔 그 나이가 결혼하고 애 낳고 육아하기에 ‘보통의’의 나이였겠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것’, 혹은 ‘원래 그런 것’이 어디 있겠나?
한창 꽃 피워 예쁠 나이에 나의 엄마는 그렇게 꽃을 피우기도 전에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어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의 역할에 충실해 정작 자신의 꽃은 만개하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한없이 고맙고 미안해졌다.
‘육아 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 잔소리대마왕, 답답이여사라고 생각해왔던 내 여자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졌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온 집안을 손걸레질로 닦으셨다. 오죽하면 우리집에 오던 사람들이 모델하우스보다도 정리가 잘 되어있다고, 손가락으로 쓰윽 문질러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거 같다고 말했을까.
‘왜 저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 밀걸레하면 편할 걸.’
이렇게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금 과하게 말해서 엄마가 ‘미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어느 날 우리집에 오신 엄마는
‘보람아, 매일매일 걸레질해서 먼지 닦아. 지연이가 숨 쉴 때 다 마신다고 생각해봐. 엄마는 그래서 매일매일을 하루같이 닦았어.’
그랬구나. 엄마가 미련해서, 밀대를 쓸지 몰라서, 청소를 좋아해서 하셨던 게 아니었구나.
우리 삼남매가 깨끗한 집에서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엄마를 움직이게 했었던 것이었다.
비단 청소만 이겠나? 내가 감히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엄마는 여전히 ‘너는 좋겠다. 네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라고 말씀하시며, 엄마의 삶을 살지 못한 거 같아서 ‘억울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엄마의 삶 자체는 나를 성장시켰고, 이는 더 많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또지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당신은 언제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답 중,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이 1위였다.
엄마,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진심 가득 존경합니다.
제 엄마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같은 엄마가, 아내가, 딸이, 며느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