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딸 이야기] 3.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기
첫째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이 되던 해 3월부터였습니다. 같이 어린이집 다니던 친구들에게 피아노도 다니고 태권도도 다니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까, 그것 때문인지 아마 자기도 다니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을 곧잘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린이집 일곱 살 반으로 올라갈 때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줄께 말하였고, 아이는 이리저리 같이 대화하면서 결국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덟 살 되던 해에는 태권도를 하겠다고 해서 초등학교 입학하던 3월부터 그걸 시키기 시작했고, 덩달아 방과후학교 주산암산을 하겠다고 해서 그것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이런저런 관심사나 상황이 변하게 되면서 다른 것들은 다 그만 두었는데, 피아노는 아직도 치고 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피아노 학원은 2016년 초부터 다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2014년에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오면서 다니던 피아노를 그만 두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니지 못하다가, 2015년 시작하면서 건너편 단지의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원이 임대료 문제로 문을 닫게 되면서, 조금 떨어진 단지의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고 거기로 옮긴게 3년 전 무렵입니다. 12만원으로 시작한 레슨비가 어느덧 15만원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저희 아이는 계속 그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집에 디지털 피아노를 산 것은 2016년 8월이었습니다. 그냥 피아노를 사는 것이 좋을지 디지털 피아노를 사는 것이 좋을지 한참을 망설이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 이럴 바에는 일단 하나 사서 치면서 무엇이 좋은지 제대로 결정하는게 좋겠다 싶어 일단은디지털 피아노를 알아 보았고, 목건반의 타건감이 좋을 듯 싶어 그 쪽으로 한참 알아보다가 어차피 아이가 음악 쪽으로 진로를 잡을 것도 아니니 편하게 칠 수 있는 것으로 하자고 생각해서 야마하 YDP-163 모델로 구매했습니다. 제가 피아노를 칠 줄 모르니 만족도를 잘 모르겠지만, 와이프도 첫째 아이도 하루에 한 두 번 씩은 앉아서 편하게 치곤 하니 결국 사용하기 좋은 것으로 잘 샀구나 생각하면서 3년째 잘 쓰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가 피아노 치는 것은 제대로 딱 두 번 들어봤습니다. 다니고 있는 피아노 학원에서 매년 인근 교회당을 빌려 연주회를 하는데, 첫 연주회 때 멋모르고 참여하게 되면서 그 때 처음으로 들어보았습니다. 아, 그 후에 첫째 아이는 연주회에 더 이상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원장님은 저희 아이가 했으면 한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또 저희도 그냥 피아노 학원의 연주회일 뿐인데 마음 편하게 참여해보지말해도, 아이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인지 항상 거절합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 원하는 대로 놔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겨울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 때 반주로 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 그리고 지나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칠 때 부분부분 듣기도 하였지만, 집에서는 늘 헤드셋 끼고 치는지라 어떻게 얼마나 치는지를 잘 알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피아노 구매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 헤드셋 빼고 연주해보면 어떻겠냐고, 아빠 엄마도 좀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한사코 싫다고 하더군요. 그 때 이후로 아이에게 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하진 않았습니다. 그걸 부담스러워하는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더 꺼내어서 아이에게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어찌보면 부모는 자녀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독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당연히 가지게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과외로 생계를 꾸렸던 경험이 있는 저로써는, 제가 과외하던 아이들에게 일 년에 네 번씩 찾아오는 성취도 확인 시기 - 중간, 기말고사 - 때를 참 버거워했던 당시가 기억나는데,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돈을 들이고 아이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이 자신에게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확인과 확신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확인과 독려가 결과 지향적일 때, 아이들이 그를 통해 마음의 큰 부담과 어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도 함께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의 피아노 레슨에 대해서 저도 그렇게 접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재작년엔가 아이에게, 이제 혼자서도 악보 보고 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는 것 같은데 피아노 학원 다니지 않고 혼자 집에서 악보 놓고 치는 것은 어떻겠니, 라는 제안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딴에는 자기주도적인 역량을 피아노를 통해 키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제안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정도 치면 굳이 돈 들여가면서 더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가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래도 피아노 학원은 계속 다니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피아노 학원에서 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면서 그렇게 말하길래, 알았다고 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그런 이야기는 건네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나서, 자신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 것에 의미를 두고 계속 자신의 성장과 진보를 추구하면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라, 저희 첫째 아이는 그저 피아노 치는 그 순간과 그 행위 자체를 즐겁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아이에게,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 결과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향해 달려나가기를 독려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생각도 해 보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그냥 앉아있는데, 아이가 집에서 엘리제를 위하여 곡을 헤드셋 없이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한 번 연주해보라고 했는지 어쨌는지 그 까닭은 모르겠지만, 멍때리고 있다가 갑자기 들리는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식탁에 같이 앉아있던 엄마는 내친 김에 몇 가지 곡 더 쳐 보라고 주문하고, 아이도 쳐보라고 하는 곡을 이것저것 두드려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있는 성가곡집 이야기가 나오고, 아빠가 옛날에 성가대 지휘할 때 묶어둔 성가곡집을 들척이더니 칠만하다고 생각하는 곡을 하나 골라 치는 모습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피아노 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뿌듯해하는 순간이 왔구나. 이제 자기 부모에게는 자신의 피아노 치는 것을 그래도 한 번 쯤 보여줄 여유만큼의,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안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구나.
성장과 진보는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이루게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진보를 향한 열정을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갈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마음가짐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살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먼저 따라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저희 첫째 아이가 즐겁게 자신 앞의 건반을 두드리던 와중에, 자신의 즐거움에 대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살피고 이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로움에 도달하였고, 이제는 이리저리 탐색해보면서 자신이 할 무언가를 스스로 고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시점에서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과 진보에 대한 적절한 안내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저희 부부는 아이의 진로를 피아노 쪽으로 잡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이가 그것을 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원한다고 하더라도 진지하게 말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실력이나 수준도 진로로 설정하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과 진보가 반드시 진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더 큰 뿌듯함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안심하는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만으로도 성장과 진보의 의미와 가치는 충분합니다. 결국 지금 커 가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그 즐거움을 잃지 않고 그 즐거움이 더 확장되어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일테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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