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활동
활동
둘째 아이가 방과후학교 수업을 요리를 배우겠다고 조른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요리냐며 다른 것을 해보라고 해서 두어번 다른 선택을 유도한 적이 있었는데, 기어코 하겠다는 말에 결국 시켜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 않도록 말렸던 것은, 초등학교 3, 4학년이 요리한다는 것이 그렇게 썩 미덥지 못했던 때문입니다. 요리를 하려면 불도 다루어야 하고, 칼도 써야하고... 아이가 첫 방과후학교 수업을 다녀온 후에야 제가 얼마나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방과후학교 요리 수업은, 정확하게 말하면 수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재료를 다 손질해오시고, 요리하는 레시피도 따로 다 출력해오시고, 아이들은 준비되어있는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 결과물에 뿌듯해하는 모습이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 수업 보내기를 잘 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도 이와 같은 활동일 때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교실 수업은 확연하게 달라야합니다. 배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6학년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이들을 맞이하면서, 특히 수학 과목 같은 경우 이전 학년의 개념과 방법을 잘 숙지하지 못한 케이스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일대일면담을 진행하면서 물어보면, 여러 다른 즐겁고 재미난 활동은 많이 하였지만 수학 수업은 그냥 한 번에 한 단원씩 후딱후딱 나가는 경험들을 말하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 중에, 몇몇은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놓아버린 경우를 꼭 보게 됩니다.
즐겁고 재미난 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1년을 반추하면, 항상 이렇게 즐겁고 재미난 활동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고 말하곤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활동이 배움과 연결되지 않는 일회성의 활동이라면?
학부모님이나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듣는 이야기 중에 경악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학부모님이나 아이들에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학습을 방치하시면 어떻게하냐, 여기에서 더 뒤쳐지면 큰일나니 학원을 보내라, 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입니다. 방치된 학습에 대해서 교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과연.
공교육이 배움의 최일선에 서야하는 까닭은, 교사가 바로 국가수준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학생들이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공인된 전문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문성을 위해서 교대에서는 아이들의 총체적 이해를 위한 교육학적 지식을 배워왔고, 다양한 교과교육론의 학습을 통해서 전문성을 신장시켜 왔습니다. 교사의 호봉 체계에서 교대 4년을 인정하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교과교육론과 교육학적 지식이 교사의 전문성이라고 여겨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실에서의 수업이, 이런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대한 고려 없이, 잘 준비된 재료와 잘 짜여진 레시피대로 학생은 그저 실행할 뿐인 수업이라면, 배움은 어디에 있으며, 교사의 전문성은 언제 발휘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초등학생의 발달 수준에서는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일회성의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사가 사용할 수 있는 수업 시간으로 창의적 체험활동이 있습니다. 문제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너무 많은 필수 영역 활동으로 잔뜩 채워져있다는 사실이겠지요. 이번 해 교육과정을 준비하면서,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담임교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저희 학교는 1학기 열 시간 밖에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크게 느꼈습니다. 교사가 무언가 유익한 활동을 계획한다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나고 유익한 활동은, 반드시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서 요구하는 배움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왜 성취기준인가, 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저는 교사의 자의성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공교육에서 교사의 수업권은, 성취기준의 한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이 사교육일 수 있는 까닭은, 사교육의 교육과정은 국가 수준에서 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교육은 자신들의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의 선택을 받기 때문입니다. 좋은 커리큘럼(과 강사)을 가진 학원이라면 아마 많은 원생(들과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올테고, 커리큘럼(과 강사)에 문제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문을 닫게 되겠지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임의로 각 학급에 배정하여도 무방한 까닭은, 공교육 교사의 수준과 질의 평준성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셈이죠.
물론 교사의 교육철학과 교육관은 사뭇 다릅니다. 또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자극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 다름이 기준과 조건도 없는 다름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다양한 활동과 자극이 교사의 교육철학과 교육관에 따라 학생들에게 제공되지만, 그 이후에 학생들이 도달하는 성취수준의 정도는 성취기준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장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잘 가르친다는 것이 일방향적인 지식 전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취기준의 분석을 토대로, 학생에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잘 디자인하고 세심하게 자리하도록 내 수업을 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교사와 보내는 수업 시간을 통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합니다. 지난 시간에, 지난 학기에 배운 것이 지금의 배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아이들은 교사와의 배움 시간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사교육도 해내는 일인데, 왜 공교육이 하질 못하겠습니까. 그럴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 못 배우는 것을 스스로 탓하고 미안해합니다. 그리고 더 노력합니다. 선생님이 열심히 준비하시는데, 제가 잘 집중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라면서 말이죠.
그렇게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였을 때, 또한 교사는 이전 학년의 아이들 배움을 예측하고 다음 배움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뭐 했니, 라고 물었을 때, 적어도 성취수준 도달 정도를 판별할 수 있어야겠지요. 앞서도 두드렸지만, 이전 학년을 추억하던 아이들이 학년 말에 수학 진도를 두세시간에 한 단원씩 나가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큰 난감함을 느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를 두드려보고자 합니다.
음악 시간, 교과용 도서에서 소개하는 악곡을 함께 부르자고 할 때, 아이들 중 몇 명이 '선생님, 저희 그 노래 5학년 때 배웠어요'라고 소리치는 경우를 몇 번 마주하였습니다.
물론, 교과용 도서야 참고자료일 뿐이니... 어느 학년에서 가져다 쓴다고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만은. 과연 그렇게 학년을 넘나드는, 소위 좋은 자료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성취기준을 고려한 배움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 중에, 교실에서 활용되는 간이 심리검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초임 때 한 번 사용해보고 느낀 것이었는데, 과연 이런 간이 심리검사가 자라가는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 같은 것이 심대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답정너의 질문이긴 했지만, 그래서 학부모 중에 심리학 박사로 대학에 출강하시는 분께 여쭤보긴 했습니다. 친절하면서 단호하게, 심리검사는 전문가와 함께,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전문가의 역할은 그 검사를 해석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신 기억이 납니다. 그런 심리검사가, 자칫 아이들에게 자성예언의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중 일부가 큰 준비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활동은 한 시간을 때워버리는 것 말고는 더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준비된 모든 수업이 아이들에게 다 성공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준비되었기에 맥락에 연결되어 있고, 맥락 속에 있기에 다음 수업에서 총체적인 성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전화위복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모든 수업은 계획되고 실행된 후에 수정되어 다시 계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듀콜라 휴재기간 중, 이런저런 생각들을 조금 두드려 보았습니다. 더 두드릴 것이 있었지만... 개정된 교육과정 보면서, 교과용 도서도 보면서, 학급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두드림을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제 자신에게도 들려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7년째 맞이할 6학년 담임에, 2007, 2009, 2015, 벌써 세 번째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경험하면서, 교사가 교육과정과 자신의 수업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며 보완하는 전문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이전보다는 나은 배움의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해 봅니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방학 때. (꾸벅)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