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업무
업무
지난 번 두드렸던 글은, 교사가 업무 전문성보다는 학년 전문성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취지의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사는 학년 교육과정 운영 및 학생 발달단계 특성에 맞는 학급 운영을 연구·계획·실천하기 위하여 같은 학년을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담당하며, 교직 사회의 인식도 이것을 뒷받침하도록 바뀌어가면 좋겠다는 내용을 뒤이은바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에게 업무를 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학년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이 업무 전문성을 놓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교직에 들어와서 항상 듣게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업무 경감입니다. 교사가 교육과정 운영과 학급 운영에 충실하기 위하여, 쓸데없는 업무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말.
가만히 돌이켜보면 교사의 업무는 지속적으로 경감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직에 오래 몸담으셨던 선배 교사들이 예전 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교사 급여를 주는 것도 교사 업무 중 하나였다는 말이 꽤나 인상깊게 남아 있습니다. 교사가 하던 업무 중에 조금씩 교육행정직 공무원 - 행정실 직원 - 에게 넘어간 일들이 많습니다.
컴퓨터의 사용과 함께 업무의 편의성과 효율성이 향상된 부분도 있습니다. 교육과정 운영 프로그램이 있기 이전에는 과목 시수를 맞추기 위하여 모눈을 그려두고 시수 계산을 하나하나 다 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프로그램 돌려서 시수 정도는 쉽게 맞추기도 합니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함께, 숙직·일직이 있던 시절, 토요일에 출근하여 수업하던 시절 이야기는 이제 너무나도 먼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체육대회 집단군무한다고 매일 서너시간씩 반별로 무리지어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 그런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외부 용역 업체를 불러 체육대회를 하는 시절이니.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30여년 전과 지금의 초등학교 모습은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라진 듯 한데도, 아직까지 교사는 업무 경감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학교 현장에 쓸데없는 업무가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데없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두드리기 전에, 꼭 필요한 업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1년, 한 중학생이 또래 두 명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자신의 삶을 일찍 마친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울던 CCTV 속 그 학생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을 자아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본격적으로 학교폭력 관련 업무가 들어옵니다.
제가 2012년 발령받은 이후에 옆에서 보아온 학교폭력 관련 업무는, 학교폭력에 연관된 학생·학부모, 특히 피해를 당한 학생이 겪는 어려움과는 별개로, 교사에게 굉장히 어렵고 버거운 숙제와도 같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폭력 때문에 힘들어하는 피해 학생을 돕고 그 어려움을 덜어내고자 하는 절차의 취지는 너무나도 필요하지만,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의 너무 많은 모호한 상황에서 교사가 취할 수 있는 업무 처리 절차도 너무 많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 업무가 학교에 들어온 이유는, 관련 법령 때문입니다. 사실 학교에서 처리하는 업무 중 굵직굵직한 것은 다 법률에 따라 학교 기관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학교 업무가 그렇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발효된 후, 생각보다 학교에서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있고 이를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관련 업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사회는 점차 발전해가고 있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은 여러 변화의 양상과 그로 인해 야기된 문제점들이 새로운 법령을 불러오고, 이것이 학교에서의 새로운 업무가 되니 말입니다.
학생자치와 관련된 업무도 그렇잖습니까. 민주주의적 가치가 점차로 일반 대중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이러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일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넓게 퍼지면서 이를 제도적·절차적으로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교실로도 확산되어가는 것이고 그것을 어린 학생들이 조금 더 쉽게,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 실현해갈 수 있도록 하는 교사의 도움이 바로 학생자치 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학교 현장에 있는 여러 업무들은, 사회의 변화·발전에 따른 인식의 변화 및 법령의 제·개정에 따라 학교 현장에 요구되는 여러 제도와 규칙을 절차적으로 이루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법과 규칙이 학교 현장에 요구하는 업무는 교사가 마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과 규칙에 따라 학교에서 처리해야하는 과정과 절차는 결국 학교와 교사가 보호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생각과 행동의 차이가 서로 부딪히는데, 이것을 슬기롭게 처리하기 위해 도덕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 도덕 중에서 국가가 개입해서라도 이를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다고 하는 것이 법령이 됩니다. 그 중에서도 법의 역할은 국가가 가진 위력이 무도하게 혹은 무지하게 불법적으로 개인에게 휘둘러질 때,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법령의 준수를 통해 교사는 해야 마땅한 과정과 절차를 밟게 되고,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피해와 손해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법령의 요구에 의한 과정과 절차는 더 철저하게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와 교사를 보호하기 이전에, 법령이 요구하는 과정과 절차의 대상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정과 절차는 아이들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어른이 되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과정과 절차가 아이들의 울타리 노릇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보호하고 학교와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과도한 절차와 과정도 있습니다. 현장체험학습과 관련된 절차가 그런 듯 합니다. 2014년도 세월호 참사가 교육현장과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그 분노와 슬픔은 아마도 세대가 바뀌어도 쉽사리 잊기 어려운 것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현재 학교 현장에서 요구받는 현장체험학습 절차는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 듯 합니다. 관련 교사 간 회의를 갖다보면, 과연 이런 것까지 교사가 해야하는지에 대한 목소리들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아무래도 법령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학교 현장의 상황과 여건이 충분히 고려되어 마련되었다기보다는, 당위성을 기반으로 법령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법은 항상 법적 안정성과 합목적성의 두 날개를 가지고 날갯짓합니다. 그런데 합목적성의 날갯짓이 너무 크면 법령의 변화가 너무 크고 도드라지게 되므로 사람들이 바뀌는 법령의 변화에 민감하게 신경쓰면서 피곤하게 살아야 합니다. 매일 교실 규칙이 바뀌면,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겠지요. 그런데 법적 안정성의 날갯짓이 세차고 도드라지면,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법이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1960년 제정된 민법에서의 호주제도가 2005년 민법 개정 시까지 남아있었던 이유를 법적 안정성으로 설명하자면, 법이 사회의 변화에 너무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따르겠지만, 그럼에도 법은 법적 안정성을 통해 사회 속 개인 생활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됩니다. 법을 실행하고보니 문제점이 조금씩 보이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족족 바꿀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니, 민주적 협의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빠진 사회가 바로 나찌독일이 만들었던 사회이기도 합니다. 다른 생각이 용인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삐져 나갔지만, 어쨌든 당위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러한 법령이 실제로 시행되면서 야기하는 과도한 절차와 과정에 대해서, 업무담당자는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학교 현장에서는 매년 과도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도 이를 쉽게 바꾸어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법적 안정성에 따른 현상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업무담당자의 업무 연속성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교사 업무의 연속성을 통한 교사 업무 전문성의 추구는, 흔히 이야기하는 업무 경감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해보니 이런저런 면이 어렵다, 는 생각은, 두 번째 해에도 해보니 이런저런 면이 이렇게저렇게 어렵다, 로 구체화 될 것입니다. 한 해 더 해보면, 이렇게 바꾸어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생기겠고, 한 해 더 해보면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겠지요. 그런 분들이 자신의 업무 전문성을 가지고 절차와 과정을 간소화해나가는 일을 담당한다면, 과도한 절차와 과정이 효율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업무는 정말 또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상대방이 있는 업무가 좀 그렇게 다가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이야기나누고, 누군가의 문제와 다른 누군가의 문제 가운데 서야하는 그런 업무. 한 해 정도 하고 나면 이제 다음 해에는 하고 싶지 않은 업무가 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업무 전문성을 위하여 연속성을 추구하기에는, 결국 업무담당자의 업무 성향을 고려하여 가장 잘 할 수 있는 최적의 업무를 부여할 때 학교 현장이 가장 큰 효율을 거둘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이럴 때, 학교 현장이 발휘할 수 있는 도구는, 흔히 어드벤티지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과급 가산점이니 승진 점수니 학년 이동 점수니, 내신 가산점이니 하는 것들이 다 그런 어드벤티지로 실제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그깟 성과급 안받아도 좋으니, 나는 쉬운 업무를 하겠다, 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니 결국 학교 현장에서는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을 떠맡게 되는 셈입니다. 선배 교사에게 들었던 한 마디가 기억납니다. '5분이 불편하면 1년이 편하다' 그 선생님은 자기도 거절하지 못하셨으면서, 제게는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결국 저도 거절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좁은 생각에는, 누구라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업무에 대해서는, 더 확실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평 1등? 아, 학교 현장을 아직 덜 겪어본 좁은 생각이니 그냥 흘려 보아주시길.
막상, 업무의 경중을 고려하여 더 확실한 보상 체계를 만들고자 하더라도, 학교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또 한 번 다가옵니다.
시도교육청 안에 교육지원청이 있고 그 안에 개별학교가 있는, 굉장히 단순한 위계를 가졌을 뿐인데, 도대체 업무의 표준화는 찾아볼 수가 없는 이 현상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학교의 모든 업무를 동일하게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조직문화라는 것이 엄연히 실재하는데, 어떻게 업무를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표준화할 수는 있습니다. 학교마다 공통적으로 꼭 해야 할 업무를 추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학교 현장에서는 그것이 다루어지는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가지는 생각과 경험,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차이. 6학급 학교와 60학급 학교가 같은 업무 표준화를 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최소한의 표준화는 필요합니다. 꼭 해야하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안내는, 이런 업무의 표준화를 통해서 명확해집니다. 요즘은 일반 사기업들도 부서별로 운영되면서 프로젝트 팀을 가동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각 팀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명확하다면 팀에서 업무분장하지만, 여러 팀간에 걸쳐있는 업무라면 프로젝트 팀을 조직하여 관련 업무를 협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절차를 통해 학교 헌장이 '지원' 받을 수 있으면 어떨까 짧은 생각을 두드려봅니다. 이런 업무 표준화를 통해 어드벤티지를 부여한다면...?
참 그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주는 가장 큰 어드벤티지는 직급의 차등을 통한 것인데, 교사의 직급이라고 해봐야 교사와 교장·감일 뿐이니... 그렇다고 직급의 차등을 더 만들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 간 직급의 차등을 더 만든다면, 교육의 안정성을 흔들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기제로 작용할 것입니다.
업무 표준화를 통한 업무 난이도의 조정 및 기피 업무에의 보상 체계 마련,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업무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업무 연속성의 마련. 학교 현장에서의 업무 효율성은 이것으로 가능할까요?
결국, 조직은 크지만 그 모양새는 대기업처럼 효율성을 갖추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학교 현장에서 기댈 것은 교사 개인의 책무성일 뿐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올해 저는 과학정보예체능부장에 예비교사 현장실습 담당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더불어 담당자가 따로 있던 개인정보보호·정보보안 업무를 가지고 왔습니다. 작년 업무를 담당하시던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업무를 버거워하셨고,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은 덕에, 업무를 차라리 제가 하는게 업무 효율성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책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 더 많이 해 보았으니 조금 더 능숙하게 할 수 있겠고, 이를 통해 개인의 업무량은 늘겠지만 업무 효율성은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학교에 있으면서 버릴 업무가 아주 많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업무 경감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업무 중에 버릴 업무는 많지 않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업무 경감이라는 말이 아주 가끔은, 업무 회피 혹은 업무 폭탄 돌리기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용어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업무 경감보다는 업무 효율화로. 그러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는 쥐가 나타날 때까지 서로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업무 전문가가 길러지고 그 분들이 더 나은 절차와 과정을 제안해야하는데, 업무 전문가가 되려고 나서는 교사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