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읽다] #0. 어린이를 발견하다
학교에 오는 어린이들을 만나 배움을 설계하고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네 살 터울의 남매를 돌보며 어린이와 더 큰 어린이를 기르는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얘가 왜 이러나' 이다.
(조용한데) '얘가 뭘 하고 있나',
(뚜렷하게 언어로 표현되지 않지만) '얘가 뭘 바라는 걸까'
(처음 보는 말이나 행동인데) '얘는 이걸 어디서 배웠을까'
(특유의 모습을 보게 되면) '얘는 누구를 닮았을까'
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내 감정 상태에 따라
억양이 생기고 방점이 찍히는 곳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이 같은 행동을 제지하거나, 이미 수도 없이 말했거나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행동을 반복할 때
답답한 마음에 다른 행동을 지시하기 전, 아이의 이유를 짚어 보기 위해 노력한다.
난 아직 인격 도야가 덜 되어 감정에 이성이 앞서기 쉽지 않으므로 일단 말을 꺼내기 전에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이의 기대와 시야는 어른과는 다르다. 앞뒤 상황이 연결되는 순간, 스르르 내 마음이 열린다.
어떤 때는 "정말 아이같구만!"
또 어떤 때는 "아이라서 그렇지."
어린이 혹은 어린이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없을 때, 빨리 대응해야 할 때, 이해하기 어려울 때,
어린이에 대해 말 그대로 "어리니까" 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함께 어떤 세대로 구분된다고 해도, 그 집단에 대한 설명이 나의 의도와 행동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처럼,
한 동네에 살고 비슷한 상황에 있다 해도, 심지어 동기간에도 한데 묶이기 어려운 차이와 독특함을 가지는 것과 같이,
내가 언젠가 올 미래의 완성된 모습에 비해 언제나 미완성인 어떤 상태에 놓인 것이 아니듯이,
잊고 있었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문득 떠올라 내가 마주하는 아이와 겹쳐진다.
아이가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번뜩 깨닫는다.
나와 닮았지만 또한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어린 이.
그러다 보면 '이 아이는 이런 아이였구나.'하는 개별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었겠구나.', '그래서 아이가 이런 방식을 선택했구나.',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된다.
'아이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이에게 어떤 전사前事가 있었을까?',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무엇일까?' 가 궁금해진다.
바야흐로, 어린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온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어른인 나는 어느덧 내 안의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의 행동에서 그 순간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에 반응한 내 안의 아이를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을 읽어보고자 한다.
얼른 커서 어린이가 아니고 싶으면서도 더 어린 어린이가 부러운 어린이,
청소년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어린이, 천진하지만 순진하지 않은 어린이, 지긋지긋하면서 설레는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