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이 뛴다] #8. 내 기억 속의 임산부 선생님
어린이나 청소년이 가족 외에 '임신한 어른' 혹은 '일하는 임산부'를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 보통 그는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성이 직업을 선택할 때 공직, 특히 교직을 선호하는 요인 중 하나로 바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여건을 꼽는 경우가 많다. 또 교원 성별 분포를 보았을 때도 여성의 비율이 과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2020년 유초중등 여성 교원 비율 71.8%, 2008년 64.7% 출처 : 교육통계서비스)
물론 모든 여성 교원이 출산과 육아를 기대하거나 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학교급별 성별분포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학생들은 임산부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며, 선생님의 인생에서도 임신과 출산은 특별한 기간이 아닐 수 없으므로 아이들에게 인상깊은 모습으로 남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동료로서 만난 임산부 선생님, 선배 선생님들의 임신 출산 이야기를 제외하고, 오늘은 내 기억 속의 임산부 선생님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벌써 강산이 두세 번은 변하고 남았을 오래 전 은사님들이다. 내가 기억하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충분히 인상적이셨고, 난 아주 성실하고 애정어린 관찰자였다고 자부한다.
사실, 아마도 그 장면들 중 무언가는 지금껏 내게 남아서, 그 선생님의 모습에 문득 내가, 임신한 선생님인 나의 모습이 겹치는 것 같다.
걱정되는 점은, 나는 그분들께 감사하게도 잘 배웠고, 분명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분들의 모습은 아주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메러비안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때 시각이 55%, 청각이 38%, 나머지가 내용이라고 한다. 내 기억 속 선생님들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주로 묘사하게 될텐데, 중학생이던 내게 보였던 것은 정말로 일면일 뿐이거나, 왜곡되어 실제와 거리가 있을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최소 10년, 20년 전 학교에서 근무하신 분들이라 지금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비판의 의도는 전혀 없다. 좋은 의도로 기억을 소환해 보지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떠올려 보려고 한다.
선생님께 아기가 생기셨대!!! 정말??!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가장 낯설게 느꼈던 것은,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입학하니 안 그래도 헐렁하니 큰 교복을 입고 앉아 있으려니 얼떨떨한데, 시간마다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시간마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1학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동그란 안경을 쓰시고 가녀린 모습이셨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카리스마와 함께 웃음기는 거의 없이 위트 있게 말씀하셔서 깔깔 웃느라 수업 시간이 늘 기다려지던 K 수학 선생님이셨다. 중학교에서는 더이상 산수를 배우지 않았고, 교과서도 참 작았다.
아주 평범한 어느 날, 선생님께서 아기를 가지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 임신? 그 때 나는 임신을 한 여자 어른을 가까이에서 본 것이 새삼스럽게 처음이라고 생각했었다. 친동생들이 있지만 내가 훨씬 어릴 때 태어났고, 친척들도 명절이나 행사 때 잠깐 보았을 뿐, 어느새 사촌들이 태어나 아기들에게 관심이 갔던 것 같다.
당시 선생님들은 자나 지시봉을 가지고 다니셨고, 학교는 자주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틀린 개수에 비례해서 깜지를 썼으며, 각자의 방법으로 체벌이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허벅지를 맞았다. K 선생님은 숨을 고르시며 "너희는, 내가 이렇게 몸이 무거운데도, 고생을 하게 하니~"라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진짜, 선생님 힘들지 않으실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원래도 피부가 창백하셨는데, 임신하신 때에는 배도 많이 나오셨지만 푸른 핏줄이 비쳐 보일 정도여서 정말 걱정이 되긴 했었다.
출산하신 뒤에 돌아 오셔서는 변함없이 날씬하시고 변함없이 덤덤하게 웃기고 담담하게 분위기를 잡으셨다. 돌아오셔도 변함없이 자를 들고 다니셨고, 여전히 우리 허벅지에 응징을 하시면서 여전히 "좀 잘해라, 힘이 든다~" 하고 말씀하셨다.
코로나 시기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쉬는 시간 없이 교실을 이동하느라 늘 숨이 찼던 작년뿐만 아니라, 첫째 때도 계단을 주로 이용하면서 숨이 많이 찼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괜찮으세요? 왜 이렇게 숨이 가빠요~" 하고 물어봐 주었었다. 난 "하~ 잠깐만~ 헉헉" 하고 숨을 몰아쉬면서 수업을 시작하곤 했다. "하~ 휴~ 원래, 임신, 했을 때는, 숨이, 차. 난 괜찮아요. 자, 시작하자."
*
3학년 때 L 과학 선생님께서는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지신 분이셨다.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이영애와 비슷한 음색의 목소리로 일목 요연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말을 높이셨던 기억이 난다. 동그란 안경과 머리띠, 흰 소매에 A라인의 남색 블라우스인가 원피스인가 아니면 두 벌 다 있으셨나, 사진처럼 그 모습이 떠오른다. 평소와 다름 없던 어느 날 갑자기(중학생인 나는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아채지 못했나 보다.) 첫째 임신하셨을 때 입었던 옷을 다시 입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둘째가 생기셨다고 했다. 그 옷이 참 깔끔하고 잘 어울리셨다. 빵 터졌던 기억은 없는데,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유난히 다정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안정적이고 기분 좋은 수업 시간, 잘 배운 느낌.
나도 임신했을 때 긴 머리를 유지하기 힘들어 단발로 커트를 했고, 임부복으로 남색 티셔츠에 흰 소매 옷을 즐겨 입었다. 또박또박 칠판에 판서를 하고, 어쩌다 보니 주로 과학 교과를 맡았고. 공강 없이 풀 수업을 하며 폭풍처럼 수업을 마치던 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찍어 내면서, 내 수업은 어땠을까. 그분처럼 차분하고 상쾌한 느낌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출산을 하면 학교를 떠나있는 것이구나. 임신과 출산 과정도 알려 주셨지.
2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이셨던 A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생글생글하게 웃으시며 유쾌하고 호탕한, 긴 파마 머리의 선생님. 과목은 과학. 학년 초 어느 날 선생님께서 결혼하게 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셨다. 반 아이들과 뭔가 준비해서 축하를 드렸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신혼여행 다녀오시는 동안, 담임 선생님이 바뀐 경우가 처음이라 선생님이 참 궁금했었는데, 씩씩하신 얼굴로 돌아오셔서 신혼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셨다. 얼마 후에 임신을 하셨다고 하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 눈물을 비치셨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때 아~ 임신하시면 잠깐 떠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더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출산휴가였던 것 같다. 당시엔 60일. 그리고 돌아오셔서 잠깐 다시 계시다가 육아휴직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울컥하셨던 것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해는 두 번이나 우리 담임선생님이 떨어져 계시고 다른 분이 맡아 주셨다. 발랄한 우리 반도 분위기가 가라앉고 왠지 주눅드는 기분이었다. 체육대회를 해도 뭔가 쫄리고, 합창대회를 해도 허전하고. 그리고 출산 후 드디어 돌아오신 우리 A 선생님. 씩씩함과 텐션으로 모두들 반가웠다. 얼마간 시일이 흐르고, 비가 오던 날이었던가, 왠지 공부할 분위기가 영 아니었던 날. 누군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세요~ 라고 했을 것이고. 선생님께서 "음~ 이제 너희들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으니. 선생님 신혼여행 때 이야기를 해줄게." 듣긴 들었는데 어... 뭔가 예상했던 것처럼 로맨틱하고 흥미진진했다기 보다는. 어색하고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애매했던.
*
중3 때 담임이셨던 J선생님도 출산 후 육아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신체의 변화에 대해 지나가듯이 말하신 적이 있다. 2차 성징을 경험하고 있는 여학생들로만 이루어진 교실, 뭔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도 있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긴 하겠는데.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고 난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어색하고 멋쩍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잊혀지지는 않고 문득 떠오른다. 아, 이런 거였구나.
*
맨 처음에 말한 K 선생님과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선생님께서 출산하고 오신 뒤였다. 어쩌다 이야기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는데, 출산 막바지의 순간, 선생님의 느낌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렇더라" 어... 그게 무슨 상황인지도 사실 잘 못 알아 들었다.
같이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과 나중에, 그리고 더 나중에 이야기하면서 어렴풋이 이해를 했고. 기억 저편에 있다가 홀연히 내 출산을 앞두고 생생하게 떠올랐다. 선생님도 첫 출산이셨을 것이고. 본인도 참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셨을 것이고. 중1 학생에게는 어리둥절했지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 떠오르는 것을 보니, 결과적으로 임산부의 경험을 나누며 여성의 신체에 관해 교육을 받은 것이었다.
선생님들도 엄마시구나. 가르치는 일을 하는 엄마.
중학교 2학년 후반, 새로 바뀐 담임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셨다. 중학교에서는 젊은 선생님들만 담임선생님을 하셨는데, 이 분이 가장 연배가 높으셨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서 세 번째 바뀌신 셈이고, 두세 달 맡으셔서 같이 보낸 시간이 짧아 그런지 아니면 내가 본격 커서 그런지 난 이전 분들만큼 열렬한 애정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난 2년 연속 미화부장을 맡았었는데,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게시판에 커다랗게 산타클로스와 썰매, 루돌프를 색상지에 그려서 잘라 붙여 놓았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가만히 부르시더니, "얘, 산타 네가 만들었지? 선생님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아직 서먹해서 "네..." 하고 서 있자, 선생님께서는 "내가 말이야, 아기를 가지려고 오래 노력했거든. 그리고 쌍둥이를 낳았어. 우리 쌍둥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래. 선생님이 준비물은 사 줄게. 부탁해." 하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왠지 확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화부 친구들과 교실에 남아서 선생님과 얘기도 나누고 더 잘 만들어 드렸었다. 그 후부터 난 '선생님들에게도 다 스토리가 있으신 것이구나. 선생님들도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네.' 하고 교사와 학교에 대해 알게 모르게 벽이 낮아지고, 인간적인 면을 발견했던 것 같다.
*
지금도 연락 드리고 가끔씩 찾아뵙는 은사님, 중1 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셨던 S 선생님은 체육을 담당하셨다. 우리 학교는 한 반 60여 명, 총 30개 학급이었으니 학생 수는 1800명 이상이었다. 학교에는 보건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 우리 담임선생님께서는 퇴근하실 때까지 보건실을 지키고 계셨다. 잘은 모르겠지만, 체육을 담당하셔서 보건 업무를 맡으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을 뵈러 갈 때도, 깜지 검사를 맡을 때도, 영어 지문을 외운 다음 테스트를 볼 때도, 환경미화를 위해 남아 있을 때도 보건실을 이용했는데, 우리 반 친구들의 아지트처럼 느껴져서 정말 좋았었다.
어둑어둑한 날, 체육대회를 마쳤을 때였나 아니면 예술제 연습을 하던 때였던가. 종종 보건실에는 당시 5살이었던 선생님의 자녀분이 함께 있었다. S 선생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방과 후, 퇴근 후 시간을 보내시는 만큼, 자녀를 돌보아야 하셨을 것이다. 나중에 교사로 임용되고 나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그 때 고생 많으셨지요, 여쭈어 보았더니 "그 때는 나도 젊고, 재미있었어, 얘. 아이들 돌보는 건 다들 해야 하는 일이니까. 지금은 다 컸잖아. 이제 너, 아니 김선생이 첫째 돌보느라 고생하겠어." 하고 선선하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후배 교사가 된 제자에게 건네는 말씀 안에 당시의 고단함과 함께, 선생님이 펼치시던 교육의 열정, 그리고 사랑이 섞여 있었다.
*
학창시절 내가 만난 임산부 선생님은 대부분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셨다. 고등학교 때는 안 계셨다.
남성 선생님들은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던 날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 계셨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내분이 아파하는데 뭘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고. 기다리는 동안 담배를 피우고. 가서 잠깐 밥 먹고 오다가 불려 오고. 태어났을 때 얼굴을 보니 너무 놀랬다는 그런 이야기. 입담도 좋으셔서 들을 때마다 참 재미있었다.
대학에 가서 뵙게 된 여성 교수님 중에서도 임신과 출산, 육아의 시기를 보내시는 분도 계셨다.
물론 대학에서는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오가지 않았지만, 고등교육에서 교원을 맡으시는 소수의 여성들 중, 출산과 육아를 하고 계신 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뭐랄까, 멋져 보였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토요일에도 강의가 있었다. 교양필수가 어쩌다 보니 주6일로 짜여져 나온 불운한 우리 반.
1학년 1학기, 토요일 아침 9시 1~3교시 미적분학과 행렬 강의를 맡으신 수학 교수님은 여성분이셨다. 교재에 대한 강의 외에는 사적인 말씀은 한 마디도 안하셨는데, 편안한 핏의 옷을 입고 계셨다.
1학기를 잠시 듣다 휴학을 하고, 계절학기에 재수강을 하게 되었는데, 그 교수님의 수업을 또 듣게 되었다. 4주 동안 매일 만나서 그러셨는지, 새내기도 아니고 소수 인원이 듣는 재수강 강의여서 그런지 교수님은 그 때보다 아주 약간 여유있게 수업을 하셨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잠깐 하셨다. 공대에서 여성 교수를 뵙는 것도 낯설었지만, 중 1시절, '선생님이 임신을?' 하고 낯설었을 때만큼이나 '교수님이 임신을?' 하고 어색했던 것 같다.
*
교대에 와서는 여성 교수님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우리 전공 교수님도 육아휴직을 마치시고 돌아오셨고, 국어과 교수님도 육아휴직 후 복직하시면서 우리 과 수업을 맡아 주셨다. 교대에서의 수업은 예비교사로서 우리를 대해 주셔서 그런지, 교직과 출산, 육아와 그림책, 육아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조금 더 있었던 것 같다.
일하는 엄마로서, 교사 혹은 교수로서 엄마가 되고, 커리어를 유지하는 모습을 뵙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 계신 것만으로도 모델이 되어 주셨던 것 같다. 더욱 다양한 모델이 되어 주시고, 더욱 오래 전문성을 펼쳐 주시고, 더 많은 학생들과 임신, 출산, 육아와 삶, 그리고 일에 대한 대화를 풀어가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 한 조각 기억 속에서도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임신하고서도 열심히 일하던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