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 보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불편한 말들이 선을 넘지 않도록 :: 환불원정대
말로 상처받기가 참 쉬워서, 날벼락 같던 순간을 되씹는 시간이 싫다.
말로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곱씹어 본 다음 말을 꺼낸다.
솔직하지만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소통 감수성, 그의 진솔함이 다시 보인다.
말도 안되는 옷을 입어보라고 가져왔을 때, 그녀들은 이렇게 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놀면 뭐하니의 가을은 <환불원정대>의 활동으로 채워졌다. 포스 있는 '쎈 언니들'이 모이면 언감생심, 그 어렵다는 환불도 받아낼 수 있다는 컨셉.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다리게 되었던 이유는, 처음에는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언니들과 천연덕스러운 지미유, 매니저들을 보는 재미였고, 둘째는 top 100귀가 접수한 음악 <Don't touch me>를 제작하는 과정 - 멤버 모으기, 캐릭터, 이미지메이킹, 작곡, 작사, 녹음, 의상, 안무, 스타일링, 뮤직비디오, 화보촬영, 방송, 홍보, 공연 - 을 지켜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이번 주말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 환불원정대.
매력적인 장면들, 회자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유독 내 마음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스쳐 지나간 장면이지만, "불편한 말을 해야 할 때" 멤버들, 특히 천옥의 반응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2020. 10. 17. 방송 놀면 뭐하니? 64회 환불원정대 중 13:20~15:40이 재생됩니다.)
"자꾸 건드릴 때" 참지 않고, "어디서 싸구려를 팔아" 하고 할 말을 하고, "나도 평화가 편하지만" 할 말은 하는 이미지를 잡은 이상,
차갑고, 독하고, 만만치 않아 보이는 스타일링을 통해 "기를 누르는" 의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져온 옷은 샤랄라, 청순 파스텔 의상.
귀엽다~ 이쁘잖아~ 어려 보인다~ 인형 같다~라는 말을 하는데.
계절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노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룹이 구축하려는 이미지에 정면 배치된다.
말 그대로, 정말 아니다.
일단 질색하면서 손사래를 치고 아~~~~ 아니아니~~
그 다음 곧바로 소위 '센 컨셉'을 드러내며 말을 할테지.
난 "뭐하는 거야", "우릴 뭘로 보고", "어디서 이딴 걸 가져와", "너는 감각이 있니 없니"를 상상했었다.
정색을 하고, 화난 척, 때리는 척 위협하는 몸짓도 섞으면서.
위악적으로, 비꼬거나 냉소적인 반응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급하게) 옷이 이상한 건 아닌데!! 우리랑 안 맞아!
희미한 웃음을 띈 난감한 표정으로. 톤은 차분하게.
다른 걸그룹(에이핑크)이 입던 무대의상이야~ 라는 말이 나왔는데.
무심하게 별로라고 말했다가 여차하면, 타 팬덤은 불쾌해할 수도 있다.
자막에 "다급"이라고 나와 있지만, "옷이 이상한 것은 아닌데"라고 굳이 짚는 저 장면을 본방송으로 지켜 볼 때,
리더인 천옥이 순간적으로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메시지의 방향을 정리했다고 느꼈다.
한 번 해 봐~ 예뻐예뻐~ 괜찮은데? 너무 잘 어울리는데?
어쨌든 결국은 준비해 온 옷을 입는 분위기.
내 선입견일 수도 있으니, 준비한 것을 보아 일단 한 번은 입는다.
빈말은 싫다. 입고 난 후에도 '싫다'는 말은 안 했지만, 이건 아니라는 표현은 한다.
옷의 문제나 당신의 감각이 부족해서가 아닌, 내가 어색하다, 우리와 안 어울린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과연 우리 노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묻는 말은, 동료인 당신의 의견을 물음으로써 충분히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나의 입장을 전달한다.
타고난 배려심이 있거나, 전략적인 미디어 소통 방법을 잘 훈련했거나, 경험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익힌, 깊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저 사람은 진심이다, 누구도 상처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바로 이 타이밍에, 천옥과 팀에 대한 호감이 확확 상승했다.
소통 감수성, 선택이 아니라 필수
유현재 교수는 세바시 강연에서 '소통 감수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미디어의 시대, 인생을 바꾸는 소통 전략 | 유현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 세바시1251회
소통 감수성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즉 '상대가 명쾌하고, 건전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략적 사고와 진정성 있는 실행력을 활용하는 역량의 정도'로 정의한다.
유 교수에 따르면 "누군가 상처받고, 슬프고, 차별받는다고 경험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되고, 원활하지 않은 소통이다."
우리는 소통을 통해 장기적으로 호감을 높이게 되고,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능동적인 관계맺음, 상호작용을 기대하며 소통을 시도한다.
자극적, 선정적인 컨텐츠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상대를 무시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선의를 믿어요. 나 역시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답니다. 하지만.
진솔한 사람이라면 상대방도 존중받기를 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진심을 나누기를 바랄 것이라고 전제할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과거에 말로 상처받았던 기억을 되새겨 남에게 정돈된 말로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것이다.
나의 경우, 내 선의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거나 미처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꺼냈던 말에 진땀을 흘렸던 기억에 자주 멈칫거리는 편이다.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거나, 갑작스럽게 날아든 메시지 하나에 바로 답하려다 보면,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정보가 부족해 실수를 하거나, 좋게 풀어나가겠다는 생각에 상대에게 맞추어 주다 상대의 제안을 덥석 수락하고 마는 경우가 있었다. 후에 되짚어 생각해 보면 찜찜함은 나의 몫. 특히 아직 경륜은 일천하고, 열정이 냉정보다 먼저 나오는 나는 업무에 관련된 부분이라면 예예, 예? 예에?? 예... 하다가 어느덧 호구의 추억 한 장을 추가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할 시간을 갖고 나서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다른 사람을 지켜볼 때는 '저러면 안되는데... 무리하고 있는데...'가 확 느껴지는데, 왜 난 바로 알아채지 못할까ㅠ)
비교적 동등한 동료 사이거나, 학생들과 대화를 할 때는 빅재미를 주고 싶거나, 순발력 있게 받아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급할 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섣불리 이야기하면 핵심을 벗어나는 경우가 왕왕 생겨 떨떠름한 순간이 오기도 한다. 빠른 대처보다는 진중함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잠시 침묵을 지키는 것이, 한 수 뒤를 떠올려 보고 대화를 이어 갈 필요가 있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 내 의도가 전해졌는지 확인하고, 아차 싶을 때 즉시 수습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난 사랑을 원하고, 평화가 편하기 때문에.
잘 말하고 싶다.
꿀리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상대를 억누르지도 않으면서 잘 대화하고 싶다.
환불은 못 받아도 좋지만, 진솔하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소통하고 싶다.
환불원정대, 안녕.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음 토요일엔 또 뭘할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