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보다] '선수'들의 나이와 서열 #뭉쳐야찬다
내로라하던 각 분야의 운동선수들,
이름만 들어도 전성기 시절이 딱 그려지는 레전드들이 모여 축구팀을 만들었다.
과연 그들이 만나면 어떨까.
올 여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뭉쳐야 찬다>.
JTBC에서 방송되고 있는데, 빵빵 터지는 장면은 보고 또 봐도 재미있고, 어린 시절 대스타가 나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모습에 공감이 가기도 해서 기다려지는 방송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멤버들 간의 관계 다지기, 특히 서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뭉쳐야 찬다>프로그램의 재미 포인트는 두 가지. 의욕만 앞서는 스포츠 영웅들이 낯선 영역인 축구의 기본을 익히는 과정, 그리고 서로 티격태격하며 팀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들은 미션을 앞에 두고 투덜대다가, 떨어진 체력에 변명해 보다가, 자존심을 세우다가, 서로 잡아먹을 듯이 놀리다가, 핀잔을 듣거나 웃음으로 마무리짓는다. 세계적인-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최정상급 위치를 경험해 본 이상, 이들의 자존심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경기에 몰입하다가 영 안 풀릴 때는 서로 얼굴이 붉어지도록 화를 내기도 한다. 다만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고 성질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감독 안정환이 아니었다. 한참 떠들고 까불고 투덜대다가도 지긋한 나이의 출연자가 한 마디 하면, 상황이 정리된다. 이어서 톤을 조절하다가, 마지막은 '형님'이 허술함을 드러내거나 풀어진 모습으로 다시 만만해진 다음에야 끝이 난다.
최수종과 이만기가 만났던 8월 15일 방송은 '서열'을 날것 그대로 보여 준다.
동생들의 플레이에 성을 내고 때로 감독처럼 지시해서 선을 넘는 것처럼 보이던 맏형 이만기는 최수종이 나오자 깍듯하게 대한다.
알고보니 이들은 이전에 서로 민증을 깐 사이로, 최수종이 이만기보다 1살 많다.
☞ 1살 많은 최수종을 깍듯하게 형님으로 대하는 이만기
얘기가 한참 이어지는 가운데 "만기, 팔짱 풀어." 하면 즉시 팔짱을 푸는 모습. 손을 앞으로 얌전히 모으고, 말수가 많이 줄었다.
그 모습을 보는 동생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제작진은 빵빵 터진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내겐 참 재미 없던 장면이었다.
한 살 많은 것이 권력이 아니지 않은가. 억울하면 하루라도 빨리 들어오라는 말이 유행하는 조직이 소통하고 발전하는 조직은 아니지 않은가.
빠른 년생이 어쩌고저쩌고, 내가 오빠라는 둥, 언니라고 부르니 마니, 족보가 꼬인다느니 하는 말이 오가는 사이는 나이를 질서로 삼음으로써 본질적인 만남을 가로막는다.
팀을 이루기 위해서 구심이 필요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규율이 필요할 수 있다.
효율적인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줄세우기, 무리짓기가 관리하는데 쉬우므로 산업화 과정에서 기꺼이 선택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나이"로 너무 빨리 친구가 되고, 너무 쉽게 위아래를 정한다.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수직적 서열을 통해 권위주의가 작동하도록 두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우리 반 키번호 1, 2번 아이는 "선생님~ 오늘도 1학년 같아 보이는 애가 저보고 야! 하고 반말을 했어요." 하고 아침에 보고를 한다. 꽤나 괘씸한 모양이다. 마음이 약해서 쏘아붙이지는 못하고 "나 3학년인데."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니, 물었더니 그냥 갔어요, 하고 씩씩거렸다.
오늘 아침은 "선생님 있잖아요, **가 갑자기 뒤에서 "귀여워~ 하면서 어깨를 꽉 잡았어요." 라고 말했다. 키가 작은 것도 서러운데, 어리게 보는 것, 그래서 함부로 대하는 것이 ㅈㅇ는 참 섭섭하다. 열살 아이의 마음도 그런데,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다음에는 "반가운 건 알겠는데 그렇게는 하지 마." 라고 말해주라고 했다. "내가 어리지 않은데 왜 날 함부로 대해"가 아니라 "누구에게든 존중하면서 대해야 하는 거잖아" 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사이.
나이와 권위에서 한 걸음 벗어나 먼저 자신을 개방하고 열어두는 모습에서 자연스러운 호감이 생겨나고,
그렇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 팀이 되어 가는 것이다.
한 쪽을 누르면서 일으켜 세우는 권위보다
곁에 앉아서 북돋우는 관계에서, 나이는 숫자 그 자체일뿐일 것이다.
PS. 같은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캠핑클럽>에서 멤버들의 관계는 사뭇 달랐다.
어릴 때 만나 함께 경험을 쌓으며, 오랜만에 만나도 함께 나누는 팀.
"너 그때부터도 언니라고 안했잖아!" 했지만 나이를 내려놓음으로써 더 가깝게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이상 함께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더 함께 있고 싶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서로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 격려와 인정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