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들 2] #3. 루틴, 그리고 선택
우리 반을 점검해 본다.
내가 매일 하고 또 하는 말과
내가 말할 때에야 시작되는 일,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일들.
야심차게 시작했던 새 학기, 날이 풀리면서 우리 반도 느슨히 풀리는 기분이다. 첫 단추를 잘 꿰고 좋은 첫인상을 보이려는 마음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에게나 있는 법.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기 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세워 둔 계획들은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된 후 현실에 부딪쳐 굴절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허나 예상한 시나리오가 이리도 들어맞지 않고, 학급 운영 방식의 효과는 영 눈에 띄지 않고, 저항하는 아이들도 생겨 달래고 어르고 설득하고 눈감아 주다 폭발하고, 왠지 우리 반은 산으로 가는 것만 같다. 우리 반만.
해리 & 로즈메리 왕의 『좋은 교사 되기 : 어떻게 유능한 교사가 될 것인가?』에서 저자는“유능한 교사는 탁월한 교실 관리자이며, 학생들의 학습 능률을 위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고, 학생들이 학습에 성공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 중 효과적인 수업 관리가 핵심이며, 학생들은 아침에 교실에 들어와서 ‘교사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가뿐하게 뼈때리기 있나요
수업 관리가 잘 된 교실에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집중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소란, 혼동이 거의 없는 채로 집중할 수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는 분위기가 된다. 글렀어. 이생망 아니 올해도 망 난 안되나봐
새로운 습관은 21일, 3주면 자리가 잡힌다고 하는데. 어째서 두 달이 지나도록 아침마다 나는 우유 드세요, 글쓰기 제출하세요, 교과서 꺼내세요, 할 말은 나가서 하고 들어오세요를 외쳐야 할까? 칠판에 써도, 붙여도, 말해도 안 되고 이름을 콕 짚어 부르면, 조금 시무룩해져서 뭘 꺼내거나 뭘 넣기 시작한다. 다른 반은 척척 하는 것 같은데 다른 반은 조용한데
나만 답답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습관 3주면 적응? 최소 2달 걸린다! 위로가 안됩니다 2달 지났는데
교사는 학기 초 골똘히 고민해 좋은 것 다 넣어서 학급 운영의 큰 틀을 제안한다. 우리 반과 어떤 학습 습관을 만들지, 최선의 방법을 의욕적으로 펼쳐 보인다. 완벽히 이루어지리라 쉽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잘 될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 보면서.
우리 반의 루틴을 잠깐 정리해 보면,
아침에는 글똥누기 쓰기, 알림장 검사 받기, 우유마시기, 교과서 챙기기, 가방 비워 넣기를 한다.
요일별 일정이 정해져 있는데, 월요일에는 주말 이야기, 화요일에는 시로 여는 아침, 수요일에는 리코더 연습, 목요일에는 함께 나누는 노래, 금요일에는 책읽는 동안 연산 문제집 검사를 한다.
월요일에는 남학생들 일기장을 걷고, 화요일에는 독서록, 목요일에는 여학생 일기를 검사한다.
월, 수요일에는 국어 받아쓰기를 하고, 화요일 체육 시간에는 짬을 내서 줄넘기를 한다.
금요일 마지막 시간에는 일주일을 돌아보는 학급회의를 하며 좋았던 것, 아쉬운 것, 바라는 것에 대해 의논한다.
알림장에는 나 칭찬, 칭고미(다른 이를 칭찬해요/고마워요/미안해요)를 쓴다.
단원이 끝나면 국어는 두 단원마다, 수학은 한 단원마다 단원평가를 보는군요.
정작 이걸 다 해내는 것은 아이들인데 하지 않는 저도 지치네요 숙제 내주는 선생님 젤시룸 스승의날 가장 기억에남는 선생님 쓰라니까 작년 선생님은 쉬는 시간 많이 주고 숙제도 없었다며 맨날 담임디스
이것만일까. 교사가 학급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가운데, 변수이자 상수들이 등장한다.
시기에 맞추어 계기교육을 하고, 매년 시행하는 교육활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역사교육, 통일교육, 장애 이해 교육, 안전교육 등은 교사 나름의 패턴과 활동이 있는 한편, 부지런하고 은혜로우신 다른 선생님들의 제안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행사가 많은 5월 초가 가장 부담이 된다.
생일에 맞춰 축하 노래 부르고 생일책 쓰고. 매달 자리 바꾸기, 모둠 세우기.
뿐만 아니라 학교, 학년 차원에서도 법적으로 정해진 교육, 교육과정 상 범교과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니, 하루 일정은 교과 수업 일정과 주어진 활동, 그리고 우리 반의 루틴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교사의 선택들로 채워지게 된다.
루틴의 장점은 예측가능한 일정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매일 수업을 새롭게 준비하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요즘 배우는 과학 주제에서, 계절이 바뀌어서, 학급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해서 어떤 시를 소개할까?, 어떤 노래를 들어 볼까? 우리 반 아침활동을 통해 닻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몰입하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
또 잘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규칙적으로 힘들다고 말은 하면서도 잘해 온다는 점이다.
벌써 생각공책을 두 권째 쓰고 있거나, 일기를 검사를 하든 안하든 숙제 내주는 선생님 젤시룸22 검사 안하는 선생님은 더시룸 꼬박꼬박 써오는 아이들은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 줄 수밖에 없다. 댓글과 좋아요를 강요하는 아이들 저보고 하라 해도 그렇게 못할텐데 여러분 리스펙
요즘 알림장을 쓸 때, “음...” 하면 벌써 아이들은 “여학생 일기 제출이요!”, “리코더요!”하고 말해주곤 한다. 물론 몇 아이들은 "아~~~ 왜 말해~~!!!" 탓하기도 하지만 선생님 깜빡깜빡하는 거 딱 알아채는 그대들도 리스펙;; "고마워요~ 덕분에 우리 반 친구들이 잘 준비할 수 있겠네요." 하고 얼른 말해 준다. 알아 주지 않으면 다음에 안 가르쳐 주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하지만 매번 멋진 아이디어는 덧붙이면 몰라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교과 수업 진도가 다른 반 보다 늦어지면 마음은 급한데, 했다 안했다 하면 원칙이 무너질까봐 눈물 머금고 지속하게 된다. 주말에 뭐했는지 계속 얘기하고 싶어하는구나 그래요 해 보세요 지금 9시 20분인데...
잘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끝내 저항하고 눙치려드는 학생들도 있는 탓에 루틴을 변경하는 것은 마치 실패를 인정하는 것 같다. 이것은 자존심 질 수 없어
늘어나기만 하는 루틴, 늘어지는 루틴.
포기할 수도 없지만, 지속하기는 더 어렵지 않은가.
수요일에는 비주얼 씽킹을 하려고 연습장도 준비했는데, 두 번 해보고는 리코더 시간으로 바꾸었다. 우리 반은 미술을 참 좋아한다는 아이들이 많아 그들이 기대를 많이 했는데.3학년에서 리코더를 처음 접한 친구들이라 꾸준한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1학기에는 리코더에 힘을 주기로 했다. 리코더 운지법, 기초곡 연습을 하고 음악 시간을 이어서 수업을 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노래는 한 번 듣는 것으로는 아쉽고, 두 번 듣는다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일기, 독서록은 당일 검사하려고 교과 시간이 있는 날 잡아 두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상담, 늘 쫓기는 업무 처리 등을 하고 나면 어느새 40분의 교과 시간은 훌쩍 지나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차 하면 아이들 하교할 시간. 다음 날, 다다음 날이 되어서야 돌려주기도 하고.
5월은 잔혹한 시기이다. 야심차게 세운 계획이 느슨해지거나 동력이 떨어져가는 것이 보인다.
교사가 앞장서야만 겨우 시작되는 활동은 과연 흔들리지 않게 다잡으며 지속해야 할까, 효과가 적다면 언제, 어떻게 놓아야 할까. 고민하고 주춤주춤 밀고 당기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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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다음 편에 '지속의 어려움과 습관의 형성, 액션 스터디'에 대한 글을 이어서 작성하려고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