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다] #1. 여행자와 아이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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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23:58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한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본다면.
1.
여행을 갔는데 로밍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전원이 꺼져있다면.
궁금한 것을 바로 스마트폰에서 찾아봐야 하는데
찾아 보고 다른 정보를 클릭하고 연관된 말과 뉴스와 역사와 인물과 교통상황을 또 눌러 보고 또 찾고 새로고침하고
직성이 풀릴 때까지
빨리, 넓게, 관심 가는 것들에 답을 얻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면.
답답하다.
대신 한 번 찾아보고 일단 갈증이 풀린 정보들은 그만큼 다른 정보들 뒤로 스쳐 지나간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랬던가? 분명 찾아봤는데.
예전에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경험자에게 묻고
책을 읽고
곱씹고 되뇌고 써 보고 외우며 새기게 되었다.
느렸던 만큼
정보 하나의 무게가 훨씬 컸었다.
2.
외국에 가면 내가 못 알아 듣는 언어들이 가득 쏟아진다.
외국이 아니더라도 타지에서 익숙하지 않은 억양, 낯선 낱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저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을 뿐일 주변 사람들도
왠지 내가 어수룩한 방문객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벽을 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혼자 낯선 곳에 간다면
배가 고픈데 뭐가 맛있는지 어디에 먹을 만한 식당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찌어찌 찾아 들어가 남들 하는 것을 보는데 어떻게 주문하는 줄도 모르고
남들처럼 해보고 손짓 발짓 그림그리고 사진 찍어서 주문을 하는 데도 진땀이 나고
음식이 나왔는데 막상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궁금하면서도 묻기가 그래서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식당 사람은 바쁘고)(옆에 와보지도 않고)
휘휘 눈치를 보다 따라 하고.
먹긴 먹었는데 영 어색한 향과 맛에 편히 즐기지도 못하고 나와서 지갑 속 본전 생각을 하고
괜히 서운하고
우리 반에 있던
배움이 느린 아이, 전학왔던 아이, 여러 사정으로 이 세상에 익숙하게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가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왜 나만 이렇게 어렵지, 왜 나는 이렇게 계속 안 되지 생각하면서
자기 안으로 가라앉다
별안간 어색한 행동을 해서 주의를 끌거나 주의를 끌까봐 걱정하지 않았을까.
3.
여행을 할 때 가이드나 현지에 먼저 간 친구가 있다면
그렇게 반갑고 기쁘고 계속 듣고 싶고 그이에게 들은 대로 하니 새로운 것이 보이고 이해가 되고 편안해지고.
기꺼이 나 다음에 온 사람에게, 나보다 늦게 들은 사람에게 신이 나서 알려 준다.
헤매고 어설펐던 (그러다 지금은 제법 능숙해진) 내 경험까지 살을 보태서.
초행길은 어렵고 겁나고 무지 오래 걸리다가
돌아오는 길은 참 짧고 쉬운 것처럼.
뭐가 되었든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비교해 가면서 내 나름의 통찰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홍콩에 가봤는데 중국에 가보니 이 부분은 비슷하다 다르다 다 그렇지는 않더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내가 피구할 때 그랬었는데 축구를 해보니까 이랬었어! 라고 말하게 되는 과정에서
반성적으로 사고를 하여 분류하고 범주를 만든다.
나의 경험, 특히 나의 성공과 만족의 기억,
그렇게 되기까지 혼자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유능한 코치가 필요하다.
4.
여행 자체가 개인에게 수월하지만은 않은 일.
같이 여행해서 좋았어요, 반가웠어요 자꾸 말할수록 여행을 지속해 나가는 데 동력이 된다.
우리의 여행을 위해 맞춰주기도 하고, 충돌하거나 다른 길을 가기도 하는 여행의 동반자에게
이번에는 아쉬웠지만 우리 언젠가 다음에는 꼭 함께 다시 도전해 봐요.
늘 잘 풀린 것은 아니지만 작은 행운이 있어 기뻤어요. 우리가 액땜한 건가 봐요.
당신과 합이 썩 잘 맞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모험을 한 그 시간을 함께 겪은 것 자체로 기억날 거예요. 고마웠어요.
자주 말하며 위로하고 기쁨을 나눔으로써 내일의 여행을 기다리게 한다.
사람의 기억은 순차적으로 회상되지 않아서
어떤 사건을 기억할 때 몇 년도, 언제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때 나의 소속, 내가 머물던 공간, 내 옆에 있던 사람을 단서로 삼아 기억한다고 한다.
가령 교사의 생애사를 연구할 때 교사들에게 물으면
몇 년도, 몇 살, 교직경력 몇 해로 말을 시작하거나 특정 시기가 먼저 나오는 대신
'내가 어느 학교에 근무한지 몇 년이 되었을 때, 어느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던 때에, 우리 반에 누가 누가 있을 때'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아볼 때, 혹은 초기 배움의 시절을 회상한다면
누구와 같은 반이었을 때, 내가 누구와 짝을 할 때, 누구 선생님에게 수업 들을 때~ 이렇게 책갈피를 꽂아 두는 것이라고나 할까.
나와 함께 배우는 옆 사람에 대해 알아 보고 가까워지고 감사를 표현하는 기회를 통해
초기 배움의 과정의 상을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 본다.
***
앞으로 내가 만날 아이들을 낯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로 대해 보아야겠다.
"여러분은 여행을 하고 있어요.
어디로 갈지 무엇을 익히게 될지 여러분에게 무엇이 남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울게요. 여러분도 서로를 도와 보세요." 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수업이, 우리들에게, 자신에게 좀 더 애착이 피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