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살림]#8. 우리 같이 노래할까요?(2)
갑자기 꼭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가 떠오르는 순간
10월이었습니다. 추석과 대체휴일이 이어져 열흘 만에 학교에 오니 가을방학을 보내고 온 기분으로 2학기가 새롭게 시작한 느낌이 들어 다시 적응을 하듯 바삐 시간을 보냈었지요.
문득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은 날. 이슬이 맺히고 낮엔 살짝 땀이 날테지만 반팔을 입고 나서기엔 오소소 소름이 돋는 아침. 고개를 들면 하늘이 높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할랑할랑 눈 앞으로 떨어지고, 떨어져 쌓인 낙엽을 밟으면 바스락 거리는 날. 머릿속에서 갑자기 노래가 떠오르고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날.
아이들과 이 가을에 함께 노래를 들어야겠다.
아니, 같이 노래를 불러 보는 건 어떨까?
10월이 가기 전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함께 부르고, 가을이 되면 이번 가을에 불렀던 노래를 떠올릴 수 있다면 또 멋진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월의 어느 날 아침,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요즘에 들으면 참 좋은 노래예요. 어떤 노래일 것 같아요?" "가을 들판(음악책에 나온 곡)이요!" "워너원 노래요!" "제목과 관련이 있어요. 바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입니다. 솔로곡이지만,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어요. 일단 들어 보세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노래였지만,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곡이 아니라 낯설었지만 아이들은 같이 노래를 듣는 것 자체를 신선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쟁반~노래방! 다섯 번 안에 성공하기
아이들과 그냥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지만, 다같이 한 번 불러보는 것은 더 좋지만, 자연스럽게 여러 번 부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소절을 나누어 모두가 1절을 부르면 성공하는 <쟁반 노래방> 형식을 가져오기로 합니다.
아침 시간 10분, 우리 반이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마법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첫 날 아침은 아이들에게 가사를 나누어 주고, 알림장에 붙입니다.
가사가 나오는 영상을 1~2번 보며 함께 부르고, 클래스팅에도 공유하여 집에서 듣고 싶은 아이들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월요일에 노래를 처음 접하고, 매일 1번씩 노래를 부른 뒤, 금요일에 쟁반노래방을 합니다.
쟁반~ 노래방!! 저는 추억의 이름이지만 쟁반이 없죠. 손가락 노래방? 모둠 이어부르기? 정도의 형식이 되겠네요.
쟁반 노래방처럼 몰입할 수 있도록 뿅망치를 준비해야 하나 싶었는데 불필요할 것 같더라구요.
모둠이 한 목소리로 부르고, 손가락이 향하는 다음 모둠이 이어서 불러야 합니다.
틀리거나 우물쭈물하면 실패! 1절을(짧은 노래는 전체를) 다섯 번 안에 성공해야 합니다.
칠판에 12345를 적고, 한 번 틀릴 때마다 지우지요.
다음 기회에는 틀린 모둠부터 시작합니다.
힌트는 다섯 개 중 세 번을 뽑아 사용할 수 있는데요, [10초 상의하기], [가사 10초 보기], [한 소절 알려주기], [전곡 다시 부르기], [꽝]입니다.
쟁반노래방 룰에서는 한 번 다시 들은 다음에는 상의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이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상의하고 알려주고 불러 보고 흥분해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힘을 합치는데 굳이 제지할 필요는 없겠지요.
성공하면 와~~!!!! 하는 박수와 함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달콤이를 주는데 그 맛이 참 좋다네요. 사실은 몇 번이고 불러 보고,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렸다가 내 책임을 다하고, 모두 성공하는 기쁨의 맛이겠죠.
실패!를 외칠 때 선생님이 악당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왠만하면 넘어가다가도 달콤이가 부족해서 새 노래 찾을 여유가 없어서 대충 하는 아이들이 늘어날까봐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악역을 자처합니다. 2, 3일차가 되면 재량껏 넘어가 주고요. 연습을 안 하거나 타이밍을 놓친 친구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다음 기회가 있는 걸~ 하고 선생님이 실패를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아이들도 조금씩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선택한 이 노래
함께 부르면 좋을 노래들은 참 많죠. 이왕이면 가사를 곱씹으며 불러볼 수 있는 노래들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 착한 사람들이 지구를 지켜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쟁반 노래방이 성황리에 끝나고, 이어진 노래는 김지원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착한 사람들이 지구를 지켜요> 였습니다. 이 노래는 재미있는 리듬과 입에 촥 붙는 가사로 2011 서덕출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했지만, 4학년 2학기 도덕 교과서에 환경 수업과 관련지어 함께 부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빈 그릇 운동을 실천하며 제게 다 먹은 급식판을 보여주면서 "선생님~ 저 오늘 지구를 지켰어요!"라고 아이들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지구를 지켜요 뮤직비디오(온양동신초 4-2)
♬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세요
정말 좋은 가사의 노래지요. 11월에 우리 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동요부르기 특별 수업이 있었는데 그 때 악보를 받아서 같이 불렀습니다. 검색해 보니 2005 KBS 창작동요대회 대상 및 노랫말 최우수상을 수상한 곡이었네요. 이미 불러 본 학생들도 많이 있어서 다음 날 바로 불렀는데 성공했습니다.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세요(22회 초록동요제)
♬ 가을 아침
가을이라기엔 이제 아침에 입김이 나오는 늦가을에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잔잔한 일상을 담은 가사도 가을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었고, 아이유의 신곡이라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원곡을 부른 양희은씨의 곡도 함께 들었는데, 3도가 낮아서 훨씬 부르기 편안합니다. 부모님들도 알고 계시는 노래라 집에서 가족과 대화를 했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곡을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함께 걸어 좋은 길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곡으로, 교과서에서 수업하지 않고 넘어갔던 곡들을 빚 청산 부르게 되었습니다. 12월이 되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친구 관계가 어긋나거나 갈등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어 친구 사이가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노래를 부르고 멀어졌던 친구에게 다시 잘 지내자는 마음을 담아 쪽지 편지를 전하고, 친구의 용기있는 마음에 응답하는 답장을 받아 함께 붙이는 활동과 함께 수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ㅅㅎ이와 ㅎㅂ이의 갈등이 폭발해 버리는 참극이 일어났죠ㅠㅠ
우리 반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문득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을 때, 참 뿌듯했습니다.
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흥미를 높이고, 일반적으로 음악 시간에만 배우게 되는 음악 지능을 자극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환경, 우정 등 노래 주제와 수업 장면을 연결지어 간단한 대화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평균대 활동을 할 때 배운 노래에 맞추어 동작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요.
노래를 외우며 서로 자연스럽게 알려 주며 서로 말을 붙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ㅅㅎ이는 공부 시간이 줄어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더군요.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고, 모든 아이들이 같은 방식으로 즐거워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노래를 소개하고 의미를 느껴볼 수 있도록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까지는 교사인 제가 할 수 있는 교육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중간놀이 시간에 우유 마시면서 노래를 들으라고 백창우 선생님과 굴렁쇠 아이들의 노래를 틀어주었는데, 며칠 지나서 <말로 해도 되는데>를 정말 재미있어 하면서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삶을 담은 노래라면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에 가닿는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다른 노래를 준비해 가야 하는데요, 어떤 노래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