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들] #1. 근황토크하기
_의도_
추석 연휴를 지나고, 새삼스럽게 서늘해진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으로 학교에 도착한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 등교 전날엔 늘어지게 늦잠도 잤겠지. 몇몇은 연휴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뒤척였을까. 저마다 필요했던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평소와는 다른 노동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소란스럽고 부산한 인사가 오가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아침 시간. 6학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한 친구들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서거나 서로에게 터치를 하며 대화에 열심이다. 한편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이리저리 둘러 볼 뿐 오늘도 입이 좀처럼 떼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와서 숙제나 일정을 묻거나, 선생님에게만 이야기를 하거나. 선생님을 스쳐 지나 자리에 앉으면 그렇게 시작되는 하루.
며칠 만에 학교에 온 날, 평소처럼 1교시 수업을 딱 시작하기는 왠지 좀 그렇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채로운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꽃핀다면 좋을텐데. 내게만 말해 준 경험이 참 흥미로웠는데 나만 듣기는 아깝고. 좋아. 5분 정도 경험을 나누어보아야겠어.
_실제와 실패감_
Teacher : 오랜만입니다. 표정들이 밝은데?^______^ 어떻게 지냈나요? 근황토크를 시작합시다.
Students : (...)
T : 잘 쉬고 왔지요? 명절에 어땠어요?^______^
S : (...)
A : 아니요. 학교 오니까 피곤해요. 학원숙제 더 많아요.
그렇구나.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추석 이야기가 있나요?^____^
S : (...)
T : 아까 재미있게 이야기하던데. 같이 나누면 좋겠네요.^___^
B : (손을 번쩍 들고) 저는 기차를 타고 친가와 외가에 다녀왔어요. 차가 밀리긴 했지만 맛있는 것도 먹고 용돈도 받아서 좋았어요.
T : 좋았겠다. 얼마나 걸렸나요?^________^
B : 그래도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더 걸렸어요.
T : 많이 안 막혔다니 다행이네. 또 추석 때 어땠었는지 나누어 줄 친구가 있나요?
S : (...)
B : TV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재미있었어요. 명절 음식은 먹을 때는 맛있었는데 살찔 것 같아요.
S : (...)
T : 오~ 맞아. 선생님도 그랬어요. 고마워요.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지냈나 정말 궁금한데.^_^;;
S : (...)
T : 선생님은 추석 때 윷놀이를 했었는데, 마지막에 역전을 당해서 너무 분했어요.
C : 윷놀이 재밌는데.
D : 나는 3년 전에 해보고 안 해봤어.
E : (몸을 C쪽으로 향하며) 훗 나는 쫌 하지.
C : (E에게 눈빛 고정)아 미친. 잘난 척은.
F : 선생님 저도 윷놀이 했었는데요. (손 들고) 3개를 엎어서 가다가 역전을 당했는데 다시 해서 결국 이겼어요. 그래서요...
G : 저요! 저요! 저는 송편을 만들었는데요. 콩송편이 걸려서 먹다가 뱉어서 엄마한테 혼났어요. 그래서요...
모두들 : (저마다 추석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함)
오 재미있었겠네. 흥미진진하다. 자자. 이제 그만 이야기해야겠어요. 즐거운 추석을 보낸 것 같군요. 나중에 더 이야기해 보죠. 이제 교과서를 폅시다.[너무 급히 끝냈나]
모두들 : (멈춰지지 않음)
자자, 생각공책과 책을 펼쳐 봅시다. 이제 그만.[10분도 더 넘었네...]
_나의 물음_
사실 이런 상황은 자주 만나게 된다.
주말, 휴업일, 현장체험학습, 흥미로운 사건을 만난 다음 날, 학교를 벗어난 즐거운 순간들을 나누면 좋겠는데.
과연 다른 교실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몇 분 정도,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긴 시간을 들이고 싶지는 않은데. 포기하지는 말고 깔끔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면 정작 깊어지지는 못하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짝이나 모둠 안에서 말하고 넘어가자면 서로 속도가 다르고, 경험이 한정되고.
인터뷰 놀이는 과할 것 같고.
학생들이 서로 관심 있게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이 경청하고 다시 질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학생들도 방법을 적용하게 될까?
초반에 너무 기다리고, 슬슬 달아오르자 거둬버리는 것처럼 마지막엔 너무 급하게 닫는 기분이다.
_그래서 이렇게_
전체에게 대화의 목적, 필요성, 시간을 간단히 설명한다.
짝이나 모둠끼리 이야기한다.(음악을 함께 틀어준다.)
시간이 되면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을 두더지발표[모둠순서대로 선착순말하기]로 1~2바퀴 한다.(내 느낌을 더하되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더 말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말한다.
어느 순간 노련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어 버리면, 왜 나는 예상하지 못했을까,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멘탈이 흔들리는 것이다.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교생실습 때처럼, 교과를 담당할 때처럼 디테일하게는 영 되지 않는다. 시간 배분도 어렵고. 모두가 미리 시뮬레이션을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부족한 교사는 아니야.
부딪쳐 보고서야, 그것도 여러 번 느껴야 더디게 깨닫고 나아가는 건지도 몰라. 어쩌면 나는 조금 늦게 답을 찾는 스타일인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