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게임'으로 배우는 재판활동
6학년 2학기 사회 1단원에서는 정부, 국회, 법원이 하는 일에 대해서 배운다. 민주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이 등장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자칫 잘못 하다가는 이론 위주의 암기식 수업으로 흐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치’다. 여기서는 ‘법원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실제 수업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콩지 살인사건”의 계획>
법원과 재판활동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소개하고 경험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추리게임’이었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을 즐겨보는 요즘 아이들이라면 꽤 좋아할만한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콩지 살인사건”이다.
처음엔 살인이라는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고민을 많이 하였다. 고민 끝에 아이들 모두 최대한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데 우선 중점을 두기로 했다. 대신 학부모들에게 수업의 흐름 및 교육 목표와 기대 효과를 학급 SNS 등을 통해 설명하여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추후 가정에서 아이들과 수업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협조를 구하였다. 다행히 학부모들 모두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콩지 살인사건”의 준비>
우선 “콩지 살인사건”의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을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 고등학교 3학년 ‘전교 1등’ 김콩지가 교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망 추정시각은 저녁 8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던 찰나,
범인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간에 학교에 남아있던 사람은 단 6명 뿐.
이 외에, 학교에 들어오거나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용의자 6명은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평소 역할극 등에 몰입을 잘하는 아이들을 일부러 넣었는데, 향후 재판활동이 진행될 때 피의자 및 증인으로 활약할 친구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후, 각 용의자들의 증언과 증거품(카톡기록, 콩지의 다잉메시지) 등을 구성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QR 코드를 만들었다. 이 QR 코드를 토대로 아이들이 추리게임을 이어나가도록 하였다. (어떤 증언들과 증거품을 사용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QR 코드를 찍어보시면 됩니다^^)
<범인을 찾아라!>
사회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콩지 살인사건” 이라는 큰 타이틀을 TV에 띄워 보여주었다.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금세 초롱초롱해진다. “선생님, 뭐예요?” “이거 진짜 있었던 일이예요?”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관심을 한 방에 ‘확’ 끌어당기는데 성공한 것 같아 일단 마음이 놓였다.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콩지 살인사건”의 스토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이름이 들어간 여섯 명의 용의자들을 소개하자 교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졸지에 여섯 명의 용의자 중 한 명이 된 아이들은 “혹시 내가 범인 아니야?” 하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사건 개요와 용의자 설명을 마친 뒤,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범인을 찾는 탐정사무소의 탐정들이 됩니다. 지금 교실 배치도를 나눠주겠어요.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용의자들의 증언과 증거품들이 담긴 9개의 QR 코드가 붙어 있을 겁니다. QR 코드를 찍어 증언과 증거품들을 확보하고, 친구들과 함께 잘 살펴보세요. 알리바이가 확실치 않거나, 증언이 이상한 사람이 바로 범인입니다. 범인이 도망치기 전에 서둘러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범인을 검거하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각 모둠별로 증언과 증거품 확보를 위해 학교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수준에서 가능한 추리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만들긴 했지만, 아이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정말 탐정이 된 것처럼 굉장한 몰입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20~25분 사이에 모든 모둠이 QR 코드 속 증언과 증거품을 확보하였고, 이를 토대로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는데 성공하였다.
추리가 끝난 뒤에는 모둠별로 누가 범인인지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때, 최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나름의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네 모둠 모두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용의자 4 : 이○○’이었다.
<형사재판 체험활동>
추리게임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여러분이 힘을 합쳐 범인을 검거했지만 이 사람이 정말 벌을 받아야 하는지는 재판을 통해 가려야 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판사, 변호사, 검사, 증인, 배심원으로 나뉘어 재판 활동을 준비할 겁니다. 준비 시간은 하루를 주겠어요. 재판은 내일 진행하도록 하지요.” 라고 안내하였다.
먼저 범인으로 지목된 이○○가 자기가 믿을만한 친구들을 중심으로 ‘변호사팀’을 구성하였다. 범인 검거에 가장 열의를 보인 아이들은 ‘검사팀’을 꾸렸다. 이○○을 제외한 다섯 명의 용의자들은 각각 변호사팀 증인과 검사팀 증인으로 갈라져 증언을 준비하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판사와 배심원을 맡았다.
이 후, 대략의 재판 흐름이 담긴 시나리오를 각 팀에 나눠 주었다.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할 수 있도록 대사를 넣어주긴 했지만 각 팀의 증인 신문 등은 아이들 스스로 준비하도록 하였다. 준비하는데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교사가 써 준 대본을 줄줄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콩지 살인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을 열었다. 서로 마주보고 앉은 각 팀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준비에 열심이었다. 드디어 판사의 입장과 함께 격렬한 재판이 진행됐다. 각 팀은 신문 활동을 통해 보다 유리한 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각자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서로를 압박했다. 정말 법원에 있는 것처럼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재판을 하다가 막힐 때에는 ‘선생님 찬스’를 활용하기도 했다. 교사가 직접 재판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검사 또는 변호사 역할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사의 신문 활동을 유심히 지켜본 아이들은 더욱 상황에 몰입하여 각자의 역할을 소화했다. 범인으로 지목 되어 졸지에 피고인이 된 이○○는 특히나 발군의 연기력으로 실제 재판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재판을 마무리하고 배심원들이 각 팀의 신문을 바탕으로 유무죄를 결정하였다. 이 후, 판사는 배심원들의 의견을 받아 선고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과는 시종일관 검사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한 변호사팀의 승리였다. 검사팀을 맡은 아이들은 매우 아쉬워하였고, 변호사팀은 재판 결과가 나오자마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하였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아이들의 모습에 교사로서 깜짝 놀란 순간이었다.
<활동의 마무리>
재판 활동을 마무리 짓고, 아이들과 소감을 나눠보았다.
- 권○○ : 이 활동을 통해 재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았다. 다시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 김○○ : 검사 역할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 너무 떨려서 선생님 찬스를 썼다. 선생님께서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정말 법원에서 신문 활동을 하는 것 같아서 다들 그 상황에 숨죽이고 몰입했던 것 같다. 나도 준비를 더 완벽하게 해서 재판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 이○○ : 검사 측에서 피고인인 나를 신문할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재판에 익숙해졌다. 신문을 받을 때 무섭기도 했지만 이번 활동으로 법원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이○○ :나는 배심원이었다. 검사와 변호사의 의견과 증인들의 진술까지 들어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음에 한 번 더 한다면 검사 쪽을 하고 싶다. 법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이제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 조○○ :변호사를 하면서 꼭 피고인을 무죄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무죄로 끝이 났을 때는 정말 뿌듯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긴장감이 돌고 제일 재밌었던 활동이었다. 그리고 오늘 한 번 해보니까 장래희망을 변호사로 바꾸고 싶다.
이 후, 사회책과 학습지를 통해 ‘법원이 하는 일’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 공부이기에 아이들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학습에 임하였다.
활동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은 이때의 ‘재판’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나 또한 교사로서 ‘기억에 남는 수업’ 하나를 만들어 냈다는 것에 굉장한 보람을 느꼈다. 이 수업은 다른 반과 지역 다른 학교에도 소개하여 학교 상황에 맞춰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 다양하게 적용되었다. 다행히 수업을 해 본 선생님들 모두 “아이들의 몰입이 정말 최고였다”고 만족해 하셨다.
"끝까지 고민하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길"
법원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교사의 고민은 교사와 학생 모두를 성장하게 만든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작은 도전과 실천이 대한민국 교육을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선생님들, 화이팅!
ps. 에듀콜라에 쓰는 첫 글이라 미숙한 점이 많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점점 더 나아지겠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