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물들다]교실 속 선생님과 털뭉치 학생
우리 반은 요즘 세이브 더 칠드런의 신생아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여중이라 뜨개질에 심취해있다. 장난꾸러기 남학생들도 곱게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작품을 보여주자 한 아이가 뛰어나와 책을 볼에 대고 비벼본다. 깜짝 놀랄일이다. 왜 그러냐고 하니 "진짜 털실처럼 느낌이 날 것 같아서 "라고 했다. 그러자 여럿이 우르르 나와서 표지를 손으로 문질러본다. 그냥 맨질맨질한 표지인데도 따뜻한 털실 느낌이 나는 것 같다며 신기해 했다.
숲 속 재봉사는 자벌레, 거위벌레, 거미와 같이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커다랗고 더러운 괴물이 찾아와서 옷을 만들어 달라고 소리를 친다. 지독하게 냄새가 나는 괴물을 위해 먼저 동물 친구들과 힘을 합쳐서 깨끗하게 씻기고 털뭉치들을 갉아서 털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속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하얗고 작은 강아지 한마리가 있다. 한때는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 아이는 버려져서 그 위로 털뭉치와 온 갖 풀들, 더러운 것들이 달라붙어 '괴물'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아무 걱정 마. 우리와 함께 있자. 쿵쿵아, 나는 네가 필요해."
재봉사는 버려진 강아지를 꼭 안아주며 '쿵쿵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이제 이름이 없는 유기견에서 쿵쿵이라는 소중한 존재로 탄생한다. 재봉사는 쿵쿵이에게도 뜨개질을 가르쳐 주었고 너무 행복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쿵쿵이는 모두 자는 동안 뜨개질을 하고 또 한다. 뜨개질을 한다는 건,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는 따뜻한 행위로 보인다. 털뭉치 괴물이 재봉사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 도움을 다시 나누어 주는 모든 과정에 뜨개질이 있다.
같이 읽고 난 후, 아이들에게 털뭉치 괴물이 누구처럼 보이는지 물어보았다.
몇 주 동안 계속 '난민'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난민이 생각난다는 대답이 제일 먼저 나왔다. 또, 얼마전 본 영화 언더독 처럼 유기견, 유기묘라는 의견도 나왔다. 또, 사회적 약자 ,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 상처 받은 아이, 환경 미화원, 사업에 실패한 사람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우리가 말한 타이틀이 붙기 전 한 인간으로서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편견 때문에 그들이 괴물이 되었다고 했다.
털뭉치를 벗긴다는 건, 편견을 버리는 것이라며 한 목소리를 냈다.
그림책은 자신의 삶과 연결짓는 것이지 않는가. 나는 이 작품에서 털뭉치 괴물의 존재보다는 '재봉사'에게 계속 마음이 갔다. 아이들이 내놓은 위와 같은 훌륭한 해석력에 감탄하면서도 내 마음은 털뭉치 괴물이 우리 반에 있는 한 아이와 오버랩 되었다. 재봉사는 저 털뭉치 괴물의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 들었으며, 같이 괴물같은 털뭉치를 씻기고 갉을 동료들을 구했을까. 학교 속에서도 '괴물'이 되어 버린 아이들이 많은데, 그럼 재봉사는 선생님이 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며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졌다.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털을 벗겨내고 그 속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를 구출하고 "이제 아무 걱정마. 우리와 함께 있자."라고 말하기에는 핑계 같지만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것도 핑계인데 내게는 같이 해 줄 동물 친구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학교의 쿵쿵이를 구하기 위해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관리자도 교육구조도 힘을 합쳐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한 개인 '재봉사'에게만 이 책임을 떠 넘기고 있지는 않을까?
처음부터 능숙한 재봉사는 없다. 재봉사에게는 레이스 뜨는 거미, 옷 크기 재는 자벌레, 가위질하는 거위벌레가 있듯이 우리 선생님들에게도 함께 격려하는 동료교사, 선생님을 믿는 학부모, 선생님들이 힘 낼 수 있게 지원하는 교육체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여러사람이 힘을 모으면 털뭉치 학생도 뜨개질을 하며 행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