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물들다]선생님에게 조랑말은 무엇인가요?
지난 12월 7일 , 경북에서 교사들을 위한 '수업 나눔 축제'가 열렸다. '수업나눔, 교실을 잇다! 미래를 만나다!' 라는 주제로 경상북도교육청연수원에서 진행되었다. 이 곳에서 나는 '온작품 읽기' 수업나눔부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나눔부스는 두 번 35분씩 40분의 선생님과 만나는 자리였다. 무언가 나누기에 시간은 매우 짧아서, 6학년과 그림책 읽기 한 사례를 짧게 이야기 하고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그림책을 읽어드리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한 해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어요."라는 위로를 그림책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읽어드리면, 위로가 될까 고민하다 홍그림 작가의 '조랑말과 나'를 선택하였다.
이 작품은 3월 4일 ,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읽어주었던 그림책이었고 10월에 다시 한번 읽었던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꺼냈을 때, 아이들이 표지 색감 때문인지 "에이~ 선생님 이 책 애기들이 읽는거 아니에요?"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읽어주고 나서 그런 소리는 쑥 들어갔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동안 내 뒤에 함께 하는 조랑말.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내 조랑말을 망가뜨리지만 그 때마다 나는 다시 조랑말을 꿰매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는 동안 곳곳에서 이상한 녀석은 매번 나타나게 되고 그 때마다 조랑말은 더욱 산산히 부서진다. 그러나 나는 조랑말을 보듬고 꿰매고 다듬어 다시 여행을 떠난다.
"너희에게 조랑말은 어떤 존재니?"라고 질문했을 때, 우리 반 서연이는 조랑말이 자기 마음이며 '상처'라고 했다. 내 마음에 난 상처는 아물긴 하지만 새 것처럼 될 수 없고, 그림에서 조랑말의 꿰맨 자국이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에 난 상처가 생각난다고 했다.
또, 채현이는 이 작품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그림책이라며 곁에 두고 매번 읽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글로 썼다.
처음 선생님꼐서 그림책을 읽어주셨을 때, 글을 쓰기 쉬울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만을 보고 그게 비유된 표현이라는 걸 생각하지도 못했다. 단지 조금 유치하고 짧은 책일 뿐이라는게 그림책에 대한 나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첫 그림책 '조랑말과 나'를 읽고 난 뒤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이 그림책을 4-7세가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이 그림안에 어떻게 이런 의미를 집어 넣어서 우리에게 전달 해 줄 수 있는 걸까? 이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 때 부터 그림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1학기와 2학기 동안 그림책을 통해 우리 반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가지 그림책 중에서 공감이 될 수도 있고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게 와 닿은 책은 항상 그렇듯 조랑말과 나이다. 조랑말은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이상한 녀석은 날 힘들게 하는 또 다른 나의 마음이라고 생각을 하니 조랑말과 나는 내 삶의 한 부분이고 내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나는 내 조랑말을 붙들고 하루를 버텨낸다.
사소한 이유인 숙제를 하기 싫은 마음도 이상한 녀석이다. 이런 이상한 녀석은 내 조랑말에 흠집을 내진 않는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날에는 내 조랑말이 으스러진다. 그걸 다시 조립하고 하루를 보내다보면 상처가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잊을만 하면 다시 떠오르는게 상처입은 조랑말과 나이다.
그림책은 읽는 연령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사람이 유치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는다면 숨겨진 의미를 못 찾을 것이다.
조랑말은 이상한 녀석들이 나타날 때 마다 조금씩 상처가 더 선명하고 커진다. 그러나 꿋꿋하게 나는 조랑말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4번째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고 난 뒤, 언제나 뒤따라 여행을 다니던 조랑말을 네 다리가 아닌, 두 다리고 우뚝 선다. 그리고 내 앞에 나를 이끌며 여행을 떠난다. 날 지탱하던 내 안의 존재가 잦은 풍파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오롯하게 성장하여 나를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맨 뒷 표지까지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한다.
나와 조랑말은 누가 앞에서 누가 뒤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손을 잡으며 나아간다.
선생님들께 이 책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조랑말이 나이기도 했고, 내 곁에 있는 선생님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읽
"선생님에게 조랑말은 무엇인가요?"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해주셨다.
"조랑말은 우리 선생님들 모습이 아닐까요? 때론 이상한 학부모가 나타나서 우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때로는 이상한 학생인, 때로는 이상한 관리자가 나타나 내 조랑말을 망가뜨리지만 계속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생각이 나요."
3월의 열정 가득한 몸과 마음(조랑말)들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많이 지쳤다.
학교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내 조랑말을 망가뜨려요' 를 반복하고 있다.
이상한 녀석은 진짜 이상한 녀석이기도 하고, 학부모이기도 하고, 관리자, 교육구조 등 다양하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조랑말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게 되었고 조금씩 꿰매고 다친 자국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그 다음 아이들을 맞게 된다.
2020년 3월의 선생님들은 다 갈기갈기 찢어진 조랑말을 주워 담아 수습하여 품고 또 시작하시겠지. 약간의 희망을 가지며 말이다.
올 한해 모든 선생님들, 고생하셨어요. 토닥토닥.
방학 동안 우리 안의 '조랑말'을 보듬고 꿰매고 고쳐주어요. 그리고, 또 여행을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