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회, 이런 것도 해봤다. 무식하면 고생한다. -학예회 이야기 2
dumog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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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1 00:56
이제야 겨우 학예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ㅠㅠ
오늘은 저에게 피와 살이 된 좋게(?) 된 사연들입니다.
#1 연극은 배경이 생명이라지.
첫 발령을 받고 간 곳은 7학급짜리 작은 학교. 난 2학기 발령이라 첫 학예회를 위에서 시키는대로 3학년을 데리고 연극을 한다고 어영부영 보내버리고 2년차에 접어들었다. 2년차에도 역시나 학예회 작품은 연극. 그런데 폼나게 하자는 헛된 욕심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고생의 시작.
애들에게 발성연습 시키고, 자세는 어떻게 잡아야하는지 연습시키고, 동선도 잡아주고, 소품도 하나하나 완성해가던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대 배경이었다. 당시는 배경을 대여한다거나 업체에서 만든다거나 하는 일은 꿈도 못 꾸던 시절.(아! 10년 전인데 자꾸 옛날얘기처럼 느껴지는지 ㅜㅜ) 과감히 행정실에 광목천과 페인트를 사달라고 하고는 애들과 더불어 뭔 영화를 보겠다고 무대 배경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작업은 며칠이 걸렸다. 체육시간에도 그리고, 미술시간에도 그리고, 실과시간에도 그리고, 방과후에도 그렸다. 주말에도 나와서 확인하고. 그렇게 완성한 무대 배경은 나름 볼만하기는 했다.(이것도 나만 그랬던 것 같다. --;) 문제는 수업을 쫄닥 날려먹었다는 것과 한번 쓰고 나니 어떻게 보관할 수도 없어서 바로 안녕을 외쳐야 했다는 것 뿐.
- 교훈: 시간외 근무는 꼭 달자. 한 10만원 돈은 날린 거 같다. 그리고, 한번 쓰고 버릴 건 좀 심사숙고 해야겠다.
#2 배틀은 댄스배틀이지.
다음으로 옮긴 학교에서는 몇 년동안 학예회에서 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춤극. 춤을 주제로 하여 연극처럼 여러개의 춤이 나오게 하는 거였는데 줄거리는 이랬다. 두 팀이 피아노를 치다가 시비가 붙고 일이 커져서 댄스 배틀을 하다가 엄마가 와서 정리하고 다 함께 춤을 추며 화해한다는 다소 허무한 내용.(그 때는 이걸 짜고 무지 뿌듯했다.)
첫 문제는 피아노! 피아노 잘치는 아이 4명을 선발하여 곡을 지정해주고 쉬는 시간마다 연습. 그 때 쳤던 곡이 아마 ‘학교가는 길’하고 ‘젓가락 행진곡(재즈버전)’이었던 것 같다. 난 피아노도 못 치는데 동영상 봐가면서 애들을 닥달했던 기억이...
두 번째 문제는 댄스 배틀. 여러 가지 춤이 나와야하는 상황이라 일을 벌인 나도 맘 속으로는 당황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댄스(‘테크토닉’이라고 들어는 봤나?)를 무지 열심히 가르쳤다. 물론 나도 동영상보면서 연습하면서 가르쳤고, 한달쯤 후 얼추 익힌 것같아 보이자 아이들에게 안무를 짜라고 해서 겨우 넘어갔다. 그래도 6학년 애들이 하는 거라 지들이 소품도 준비하고 해서 좀 그럴듯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누굴 엄마로 할 것인가? 였다. 이 부분이 웃음 포인트가 될 것 같아서 좀 고심을 해야했다. 결론은 남학생의 여장! 고무 장갑, 머릿 수건, 몸빼바지의 3단 콤보로 엄마 분장 대성공! 너무나도 열성적으로 이 남학생을 분장시키던 여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이게 전통이 되어 몇 년간 내 학예회 구상에서 여장은 빠지지않고 등장했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보니 확실히 웃음을 주기는 했다.)
- 교훈: 일을 벌일 때는 어떻게 진행할 건지도 생각 좀 해야겠다. 아이디어를 계속 붙이다 보니 일이 끝도 없이 늘어났다. 이때는 수습해서 작품으로 올린 게 신기했을 정도였다. 수업시간도 너무 많이 날려먹었다.
#3 집단의 위력 카드섹션
세 번째 학교로 옮긴 후에는 춤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그 때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카드섹션(평양에서 하던 그거. 제주도 고등학교들도 좀 유명하다.) 그것도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도전!
혼자서 6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노라조의 ‘슈퍼맨’을 가지고 했던 것 같다. 근데 이게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노래 가사에 맞춰서 도안을 짜고 도안을 학생들에게 숙지시키고 연습을 시켜야했다. 그리고, 카드섹션이다보니 색지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아예 책을 만들어야 했다. 이 정도면 할만 했는데 문제는 여기저기서 틀리는 분들. 이걸 잡느라 두 달을 꼬박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연습해야 했다. 그리고, 정작 학예회가 끝나고나니 구경한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데 정작 공연한 당사자들은 자기 모습이 안보이니까 별 감흥이 없었고 나는 대규모 인원을 운영하다보니 욕만 늘었다.
이걸 다음해에도 한번 더 했다. 전년도에 봤던 애들이 새로 올라와서는 상당히 기대했던 것도 한번 더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하여간 이번에는 노라조의 ‘고등어’. 인원은 더 늘어서 거의 80명. 확실히 요령도 생기고 참가 인원이 늘어나니까 그림도 예쁘게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학예회 후 욕만 늘어난 내 모습을 보고 과감하게 접었다.
- 교훈: 일은 나눠서 천천히 하는 거다. 너무 나만 아는 걸 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기도 힘들고 나만 이상해진다. 차라리 규모라도 줄이던가.
#4 퐌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하면서~
연극, 춤, 카드섹션에 이어 도전한 종목은 패션쇼.
패션쇼라고 하면 다들 ‘집에서 옷을 가져와서 하나보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달랐다.(왜 달라서 난리야 ㅠㅠ) 실과와 연계하여 진짜로 옷을 꾸며서 하는 패션쇼를 하기로 한 것.
처음은 좋았다. 아이들 모집하고(한 50명은 됐다.) 팀을 나누고 자기가 입을 옷을 스케치해서 검사할 때까지만해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였다.
그런데 실제 제작단계에 들어가니 이건 뭐 자비란 없었다. 옷이라고 만든 걸 보면 이게 무대에 올릴 수는 있는 건지, 입기는 할 수 있는 건지. 이런 애가 한둘이 아니었고 아예 제작할 엄두를 못내는 애들도 있었다. 결국 내가 구상해서 재료를 지정해주고(천, 종이, 박스 등등) 계속 수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워킹연습과 포즈 연습도 무지하게 했다. 제작을 못하는 남학생 무리(한 6명 정도)는 아예 내가 만들어서 입혔다. 이른바 카드병정(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그것).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할 한 쌍의 커플도 지정해서 하얀 옷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앙선생님까지.
학예회 당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몰랐지만 학부모들은 앙선생님의 피날레를 워낙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패션쇼는 그 이후로 내 학예회 구상에서는 살짝 빠지게 된다.
(이것이 앙 선생님 쇼의 피날레 포즈. 이걸 거의 비슷하게 했다. 여학생이 훨씬 컸기에 학부모들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하늘에 계신 김봉남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 교훈: 이 때도 애들의 수준을 너무 높게 봤던 게 화근이었다. 좀 된다 싶은 애들은 다른 종목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안되는 애들을 끌고 가느라 내 머리에선 언제나 상승기류를 타고 구름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