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 걸까? - 교내 공개 수업 -
학교의 큰일도 대충 정리되었고, 산적한 자질구레한 일들을 즈려밟다보니 어느새 공개수업 시즌에 돌입했다. 큰 고민 없이 3학년 긴줄넘기 활동을 선택! (나는야 3, 5학년 체육전담) 수업 전 협의 과정에서 3학년 전체반을 대상으로 똑같은 수업을 할 거니까 와서 구경하시라는 말을 한게 모든 일의 시초였다. 일단 수업 개요는 이렇다.
1. 긴 줄넘기 활동 규칙 정리(화내기, 싸움, 비난, 놀리기 금지, 서로 돕기 등)
2. 각 반별 긴 줄넘기 단계에 맞게 활동
- 1단계: 돌아가는 줄에 안 걸리게 그냥 지나가기
- 2단계: 한 바퀴 돌 때 한 명씩 안 걸리게 연속으로 지나가기
- 3단계: 줄을 한 번 넘고 지나가기
- 4단계: 한 바퀴 돌 때 한 명씩 줄을 한 번 넘고 지나가기 등등
3. 잘 안되는 경우 원으로 둘러앉아 회의해서 해결방법 합의하기
4. 성공 할 때까지 반복
※ 교사는 심판 겸 게임 진행자로 회의를 할 때 의견을 내지 않고 도와주지 않음.
예전에 인디스쿨 여름 연수(당시에는 MT라고도 불림)때 배운 건데 학부모 공개 수업 때도 공개해서 반응이 괜찮았고, 의사소통과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라 한 번 보여주고 싶었기에 욕심을 냈다. 물론 내 몸도 편한 수업인지라...ㅋ (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이런 긴 줄넘기를 상상하시면 안된다는 사실.)
수업 당일. 전날 회식을 한 여파로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각 반별로 단계가 틀리다보니 조금씩 수정하여 각 반에 맞는 수업안을 만들고, 다른 학년 선생님들도 시간나면 오라고 쪽지도 날리고, 준비는 생각보다 가볍게 끝났다.
첫 수업. 담임 선생님도 참관을 오셨고, 흐름도 좋았다. 이 반은 3단계에 도전하는 반이라 이전 단계를 도전해서 성공한 영상도 볼 수 있었다. 활동과 회의도 원만하게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어디선가 날아든 새. 체육관 환기를 하겠다고 잠깐 열어둔 창문 사이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고, 그 때부터 새와 나의 신경전. 아이들은 새를 보느라 정신없고 난 그걸 진정시키면서 활동을 해야 했다.
두 번째 수업. 새는 아직 나가지 못했다.(체육관 천장이 높아서 잡기도 힘들었고...) 그래도, 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 시작. 성공 영상을 보고 활동을 시작하려는데 눈에 띄는 빨간 물체. 핏자국이었다. 그것도 군데군데. 얼른 살펴보니 여자애 하나가 사라졌다. 어디 갔냐고 물어봐도 애들도 모르는 상황. 핏자국은 여기저기 계속 보이고 아이들도 이내 발견하고 난리였다. 금방 진정시키고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 위주의 활동이라 핏자국 제거는 수월했는데, 도대체 여자애는 어디갔는지... 복도에서 그 아이와 비슷한 애가 보이는 것 같아서 조용히 다른 아이 몇 명을 화장실과 보건실로 급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는데요.” 난감했다. 그렇게 한 10분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이 복도에서 오는게 보이길래 일처리를 한게 아닌가 싶어 물어보니 역시나 “여자애가 코피가 많이나고 옷에도 묻어서 집에서 옷 갈아입고 오게 했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게 추리 소설을 마음 속으로 한 번 쓰고 있자니 수업 종료.
(핏자국과 홀연히 사라진 어린 소녀라니... 이 순간은 셜록이 되고 싶었다. 다음 시즌 좀 나왔으면.)
세 번째 수업. 이 반은 1단계에서 헤매는 중이었는데 이 날도 역시나 성공할 것 같으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실수하는게 세 번이나 계속되었다. 역시 집중 못하는 분들이 많으니 답이 없다. 보기 좋게 실패~! 참관자가 없었던게 다행...
마지막 수업. 이 반도 역시나 1단계에서 헤메고 있었다. 그런데 참관자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니고 같은 전담팀의 꾹쌤(일명 안경선배). 들어와도 되냐고 해서 봐도 된다고 했더니 진짜 들어왔다. 뭐 보는 건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하필 제일 못하는 반에 들어오다니. 그런데 웬일. 얘네들이 어찌어찌 1단계를 성공해버렸다. 자신들도 예상 못했는지 환호성 소리가 엄청났고, 그렇게 네 번의 수업 중 가장 성공한 수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새는 어디로 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