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1 – 송편을 만들 때는 면장갑이 필요하다
2학기 교육과정은 2개의 큰 주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옛날 옛적에>.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통합한 건데 소싯적에 봤던 만화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제목을 추천한 분들은 20대 중반이다. 이 분들은 이 만화를 언제 본 걸까?) 이번 글부터 몇 편은 전통문화를 찾아 떠나는 교사들의 고난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동료쌤들은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다. 1학기에도 그랬던 것 같은 다른 활동은 그냥 괜찮다고 하다가도 음식이라는 말이 나오면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먹이를 만난 하이에나처럼 흥분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이럴 땐 이 분들은 전생에 뭐 였을까란 궁금증마저...)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다가 세시풍속이라는 교과 내용과 추석 시점이 합쳐져서 송편을 만드는 것으로 낙찰을 봤다. 그리고, 재료 검색. 역시 비쌌다. 100인분의 재료와 포장용기를 포함하니 30만원 정도였다. 일단 비싸다는 것만 확인하고 일단 학기 초라 문서작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1달 후.
이제 주제통합수업을 개시할 시기가 다가오고 다시 인터넷 검색에 열을 올렸다. 요리조리 맞춰봐도 겨우 목표한 예산에 맞춰지는 정도였다. 4명이 한참 검색을 하다가 체념하려는 찰나에 난 무의식적으로 지역 떡집을 검색해 봤다. 정말 아무생각없이. 그리고, 왠지 이영애가 떠오르는 상호를 가진 떡집을 보고 P모쌤이 전화를 걸었다.
대박이었다. 자기들이 어린이집에서 떡만들기를 할 때 쓰는 재료를 댄다는 거다. 100인분 정도면 떡고물까지 종류별로 5~6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설명과 함께. 예상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송편 만들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에서도 먹으라고 냅다 200인분으로 예약을 해 버렸다. 사장님은 친절하기까지 하셔서 선생님들이 경험이 없는 것 같으니 가게에 오면 설명도 해주고 만들어보게도 해주겠단다. 이렇게 출장도 가게 되었다. 막상 해보니까 찐 떡을 따뜻한 상태에서 조금 떼어내서 잘 펴고 고물을 넣어서 송편 모양을 만드는 것이었다. OH~ 초 간단! 떡고물도 견과류, 초콜릿, 완두콩 등 다양하고 하나하나가 다 맛이 있었다. 이렇게 방법도 알았고, 떡이 식기 전에 만들어야 한다는 주의사항까지 완벽하게 접수했다.(여기서 난 우리 딸내미들이 어린이집에서 들고 오던 송편 만들기 체험의 비밀도 알았다. ^^;) 음료수에 집으로 담아 갈 포장용기도 사고도 예산이 많이~ 남았다.
체험활동 당일.
난관1. 제 시간에 사장님이 직접 배달해주신 스티로폼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색과 보라색 떡이 나를 반겼다. 흐뭇한 마음에 떡을 드는데 아뿔싸! 엄청 뜨겁다. 떡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깜짝 놀라서 손을 놓고 서둘러 비닐장갑 안에 면장갑 장착.(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뜨거움이 덜 느껴졌고 부랴부랴 떡을 모둠별로 배분하고 떡고물도 나눠줬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빠르게 읊어주고 만들기를 시작하는데 여기저기서 뜨겁다고 난리다. 속으로 웃으면서 그 정도는 괜찮다고 조금 천천히 해도 된다고 다독였다. (물론 덩어리였던 떡을 나줘주니 좀 식기는 했다.) 그럭저럭 송편을 만들더니 이제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해도 되냐고 묻는 수준이 되었다.
난관2. 가르쳐주긴 했지만 이 3학년 지구인들은 송편을 먹기만 했지 모양까지 떠오르지는 않았나보다. 고구마부터 돌덩어리까지 크기와 모양이 난리가 아니었다. 나도 이렇게 송편을 빚는 건 처음이다 보니 잘 안되는 건 마찬가지. (그래도 내 것은 모양은 송편 같았다.) 난감했지만 즐거워하는 지구인들에게 면박을 줄 수 없어서 농반진반 얘기를 하면서 하나하나 기념 촬영도 해줬다.
난관3. 다 만들고 신나게 먹는 아이들에게 음료수와 컵도 나눠주고 먹으면서 보라고 <장금이의 꿈>이라는 만화도 한 회 틀어줬다. 먹는 속도도 시원치 않다 싶더니 곧 이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 “배불러요.”, “남았는데 어떻게 해요?”등등. 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남은 건 다 집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많이 남긴 녀석들은 비닐봉투를 주고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사장님의 호의와 교사들의 욕심은 송편을 대량 생산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여러 난관을 뚫고 2시간에 걸친 송편 만들기 체험은 이렇게 끝났다.
후기1. 다른 반 쌤들은 그냥 떡을 들어서 옮겼단다. ‘뜨거웠을 텐데’, ‘젊어서 좋겠다’, ‘이것이 참 교사인가?’
후기2. 금요일에 한 활동이라 집에서 가져간 소감 그 다음 주에 들어보니 “맛있었다”, “웃으셨다”, “이걸 어떻게 먹냐?” 등등 다양했다. 주말여행 가느라 먹는 걸 까먹었다가 나중에 보니 곰팡이가 방문했다는 안타까운 녀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