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안합니다] 제안 게시판이 터졌다!
제안 게시판이 터졌다.
등교 수업이 진행되자마자 한 일은 교실에 제안 게시판을 만든 것이다. 여러 방역 상황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하나씩 지우개 마카를 제공하고 제안도 허니컴 보드에 써서 붙이라고 했다.
가장 처음 나온 제안은 ‘급식 시간에 밥 먹는 순서’였다.
제안하는 교실을 만든 이후로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인내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 (절대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 아니다.) 아이들 입으로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계속 번호 순서로만 먹으니 불편했던 아이들이 이야기했다.
“선생님 우리 여자 남자 번갈아 가면서 밥 먹으면 안되요?”
“선생님 우리 번호 바꿔가면서 밥 먹으면 안되요?”
그렇게 아이들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내가 하는 말
“제안게시판에 올려.”
제안 게시판에 급식 관련 제안들이 올라왔고 자연스레 학급 회의를 했다.
그 다음 나온 제안은 ‘우리 반 이름을 만들자!’
옳다쿠나! 내가 하고 싶었던 제안들이 나왔다. 온갖 이름이 쏟아졌다. ‘오삼 불고기’, ‘오징어 꼴뚜기’, ‘제주 앞바다에 사이다가 빠져도’, ‘고구마 밭 아이들’, ‘삼삼오오’, ‘예쁜이 멋쟁이’ 등등 정말 아이들이 온갖 이름들을 가득 써 놓아서 제안 게시판에 보드판을 붙일 자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그걸 보느라 즐거웠고.
그리고 회의.
이렇게 아이들이 흥미 위주로 갈 때 약간 불안해진다. 이걸 다 수용해 주어야 하는 걸까 싶고 그렇다고 수용해주지 않으면 제안하는 교실이 죽을 것 같아서 두렵고. 그래서 나는 이 때, 학년 초에 세운 우리 반 미덕의 울타리를 사용한다.
“우리 반 미덕의 울타리가 예의, 배려, 협동, 감사야. 그러면 우리 반의 이름은 이 미덕이 드러나는 것으로 정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나 제안의 수용 기준은 미덕의 울타리가 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아이들이 한다. 이 날 우리반 이름은 ‘삼삼 오오’로 정해졌다. (5학년 3반인데 대체 왜 삼삼오오여야 하나 싶었지만, 아이들이 울타리를 생각하면서 정한 것이니 그대로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