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 교감선생님
교무실 가장 큰 책상에 앉아 바삐 업무를 보시던 교감선생님이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너른 미소를 머금고 재잘거리는 나의 말에 끄덕여주시는 교감선생님의 모습이 좋았다.
학년 연구실이 따로 없어 컬러프린터든, 차를 마실때든 교무실을 들락거려야 했는데 교무실에 갈 때마다 자꾸만 교감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교감선생님 일하시는데 귀찮진 않으셨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엔 변비를 앓았다. 그날도 교감선생님께 투정을 부렸다.
-교감선생님, 저 변비에요. 변 볼때마다 힘들어요.
-나도 20대 때는 변비로 고생 좀 했었어요. 왜 그때는 고민거리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항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인지 변비가 오더라고.
근데 나이 먹고 아줌마되고 나니까 걱정 붙들고 살게 없어선지 변비도 없어졌어요. 이젠 잘~봐. 호호
교감선생님의 변비 철학이었다.
변비도, 내가 안은 투박한 20대의 고민들도 교감선생님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거구나, 그런거구나 싶었다.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할 때였다.
25살 나에겐 버겁기만 한 하루하루였다.
하루는 한 아이가 친구가 놀아주지 않는 다며 1시간 내내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아무리 달래고 얼래도 그럴 수록 울음소리는 더 커지기만 했다.
수업은 해야 하고 다른 아이들도 난리인데 목놓아 우는 소리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그냥 주저 앉아 울고 싶었다.
그때 교감 선생님께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우리 교실에 오셨다.
교감 선생님은 나에게 미소 한 번 찡긋 보내시더니 아이를 교무실로 데려 가셨다. 아이는 1시간이 지나고서야 사탕을 쪽쪽대며 교실로 돌아왔다.
나중에 교무실무사님께 들으니 교무실에서도 울다가 잠잠해져 말을 걸면 다시 울고 그렇게 한참을 울다 말다를 반복하다 1시간이 지나고서야 진정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달래지 못한 나, 엉망이 된 교실 그걸 다 보신 교감 선생님께 부끄러웠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여느때처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다음번에 애기 또 울면 걱정하지 말고 교무실로 보내세요, 김선생님. 애기가 시원하게 잘 울던데요." 하셨다.
1학년을 데리고 맞이한 조회 시간은 또 얼마나 엉망이었던지,
10분 그걸 버티지 못하고 다리 아프다며 칭얼거리는 아이들이 원망스러웠다.
나도 옆 반 선생님처럼 애들 딱 잘 세워놓고 싶었다.
아이들의 칭얼과 씨름하고 있는 나를 교감 선생님은 그저 미소로 바라보셨다.
1학기가 다 지나 7월,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게 서있는 걸 보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 마음 챙기면서 드디어 만들었네요. 김선생님."
교감선생님은 나를,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을 기다려주셨나보다. 그게 얼마나 포근하고 감사하던지.
얼마 전에 이젠 교장선생님이 되신 교감선생님을 다시 뵈었다.
한적하고 고즈막한, 노을이 잘 보이는 식당에서 깔끔한 연잎밥을 함께 먹었다.
이번에도 교감 선생님께서 사주셨다. 자꾸만 신세를 지게 된다.
그때에 비해 호봉도 오르고 돈도 좀 더 벌게 되서 내가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내 호봉이 오른만큼 교감선생님도 함께 올라 따라잡을수가 없다.
그래도 다음번엔. 꼭.
교감선생님은 그러니까 어떤 분이셨냐하면,
꽃내음이 나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향기롭기도 하다.
내겐 교감선생님이 그런 사람이었다.
서툴기만 한 나를 기다려주시고 안아주시고 감싸주셨다.
가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까 생각할때면 교감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꽃내음나는 사람으로.'라고 생각한다.
인간화분, 이제는 교장선생님이 되신 교감선생님. 다음 번엔 제가 차를 꼭 사서 편안하게 모실게요.
쑥쓰럽지만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