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선생되다 13. 난 여전히 말괄량이
1. 6년을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선생이라니, 내가 선생이라니. '선생'. 먼저 삶을 살았다하여 선생이라 부르는 데 내가 정말 선생인가?
선생이라 하면 아이들보다 뭔가는 좀 나아야할터인데 내 인생은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열 받거나 웃기면 욕하고, 계획은 부수려고 세우는 것이라 나를 다독이고, 배달음식 먹고 티비 보다가 양치 안하고 자고 ,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보고는 괴물 악몽을 꾼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 열심히 해!"라고 하면서 아직 노력이 배신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해본 적이 없고("역시 배신하지 않는군!"이라고 깨달을 만큼 노력해본 적이 없음), "틀리더라도 정정당당하게 하자."라고 하면서 나는 왜 지금까지 제대로 약은 짓을 못해서 이렇게 잔잔한 삶을 살고 있는가 불만스럽기도 하며,"상대방이 어떤 마음인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이해하면 싸울 일이 없단다."라고 하면서 어제 남자친구랑 싸웠다.
선생이 되고나서 아빠랑 외출하면 자꾸 "얘가 교사라..."라고 밑밥을 까셨다(아무도 안 물어봄). 그럼 상대는 으레 "아, 정말요~? 선생님이시네."하면서 나를 주욱 스캔했다. 나는 너무 불편했는데 아빠는 무척 신나했다. 그 시간을 위해서인지 아빠는 내 옷차림새를 단속했다. "아니, 선생님이 이렇게 짧은 걸 입어." "아니, 선생님이 염색을 해." "아니, 선생님이 화장이 너무 진한 거 아녀." 근데 나는 가리기엔 아까운 몸매를 갖고 있어서 짧은 옷, 드러나는 옷 입는 게 좋았다. 퇴근하고까지 선생복을 입어야 하는 것 같아 짜증도 났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크롭티를 입고 학교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다. (나도 TPO라는 건 아니까 진짜 그럴 일은 없다.)
엄마는 나랑 싸우면 자꾸만 선생님이 그래서 애들은 어떻게 가르치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님도 잘못할 때가 있는거야. 어른이라고 다 맞는거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교직원 회의 때 나눠주는 종이에서 '퇴근 후 공무원 품위 유지'를 읽으면 이걸 쓴 당신의 퇴근 후를 V-log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퇴근후에도 정말 공무원 같은 삶을 살면 "뼈 속까지 공무원이시군요."라고 댓글을 달아드리고 싶다.
범법은 저지르지 않으니 퇴근하면 입고 싶은 거 맘껏 입고, 하고 싶은 말 맘껏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고민 하나가 생겼다. '선생'이라는 작업복은 퇴근하기 전에 벗어서 교탁 위에 고이 올려두고 교문 밖을 나서면서는 '그냥 김모리'이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종종 "넌 날 가르치려 해."라는 말을 듣는다. 가르치고 돈 받는 게 내 직업이라 돈 안주면 가르칠 맘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가르치는 말투가 베어가나보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 재수 없는데, 점점 재수 없어져가는 것 같아 고민이다.
2. 교사 신분이 드러나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반응한다. "여교사 최고의 직업이지." 그럼 나는 "그런가요?"라고 대답한다. "10억이 생기면 뭐할래?"라고 묻길래 "교사 관둘래요."라고 했더니 "10억으로는 택도 없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껴쓰면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요가하는 게 좋아서 요가강사로 빠지고 싶다고 했더니 "연금 나와?"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연금. 얼마 나올지, 나오기는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120살까지 살지도 모르니 놓칠 순 없지. 청년실업 기사를 읽는다. 3명 중 1명이 공시생이랜다. 아, 공무원이 정말 귀중한 자리구나. 여기 밖은 정말 힘들겠구나.
나는 요즘 교사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 올해 아이들이 예쁘고 말도 잘들어 정말 편하게 지나가는 편인데도 더 이상 아이들에게 쏟을 마음이 남지 않은 건지, 이전의 열정과 사랑이 돋아나질 않는다. 대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이 자꾸만 마음을 어지럽힌다.
공무원은 겸업도 안되고, 마땅한 휴직 방법도 없어서 바깥세상 맛보기를 할 기회가 없고 그만 두는 것 밖에 방법이 없나 싶다. 근데 그만둬버리기에는 나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자신이 없다. 마치 밖에 나가본 적 없는 애완견이 대문을 부수고 나가고 싶어졌는데, 주인에게 어깨 너머로 들은 세상이 너무 무섭고 이 집에 있으면 적어도 사료라도 계속 주어질 것을 아니까 박차지는 못하고 자꾸 대문만 쳐다보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쨌건 학교에 와서 정신없이 아이들 뒤치닥거리하면 하루가 가고 그렇게 한달이 가고 학기가 가니까. "어, 벌써 방학이야?"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뭐 금방 연금 받겠지.
그런데 자꾸만 소설에서 읽은 구절 하나가 생각난다.
"제가 살아보지 못한 삶은 어디로 가는 거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을 두 팔 벌려 맞이하세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