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감이 있는교실 - 5. 길게 보기 : 나는 무엇에 화를 냈던 것일까?
프롤로그
올해 길지 않은 교직생활이지만 처음으로 저학년군인 2학년 담임을 하고 있습니다.
2학년 아이들은 고학년 아이들과 여러모로 다릅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나한테 반항을 하기 위해서 저항을 한다면
2학년 아이들은 규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더군요.
그래서 몇년만에 처음으로 화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내었습니다.
그것도 진심을 담은 화였습니다.
1. 화를 내다.
‘화’ -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네이버 국어사전)
첫날 저는 분명히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아이들과 했던 많은 것들 중에서 좋았던 것만 추려서 첫날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일단 시간이라는 개념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쉬는 시간은 10분이지만 10분이 아닌 20분 이상을 기다려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더군요.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기 위해서 줄을 서는데 10분 이상을 기다려도
제대로 줄을 서는 아이가 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이 첫날부터 일주일정도 지속이 되자 참다가 참다가 못참아서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줄을 똑바로 안서는거야!” ,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들어야지!”
그런데 분명히 고학년 아이들은 눈치라는 것이 있어서, 조금만 세게 이야기해도
평소에 해 놓은 것이 있어서 바로바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2학년 아이들은 딱 10초간 정적을 내다가 내가 멈추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질서없음 상태로 돌아올 뿐아니라 나에게 바로 장난을 치러 오더군요.
마치 처음부터 내가 화를 내지 않았다는 듯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정말 멘탈이 나가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2. 나는 왜 화가 났었을까?
가장 먼저 나는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질서함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자유롭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내 생각 이상으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통제력이 학생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자
나는 아이들에게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더 크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화가 나서
더 큰 화를 내게 되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데
아이들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화를 낸 까닭은 결국은 나에게 있습니다.
1) 아이들에게 나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통제감이 떨어지게 되었다.
2) 내가 생각하는 교사상이 되지 못하여 불안해져서 그 마음이 표출되었다.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나서 처음 느낀 것은 자괴감입니다.
분명히 나는 좋은 선생님이어야 하는데 밖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과 현실과의 괴리가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떨어트리게 되더군요.
특히 요즘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통제감이 있는 교실인데
나 자신이 통제감이 떨어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이 글을 이어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마치 소피스트들의 거짓말같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나는 무엇에 화가 났었을까?
그래서 가장 먼저 에듀콜라 채팅창에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힘든점을 풀어놓았습니다.
나의 상황을 인정하고 나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은진선생님의 한마디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는 것을 학습목표로 놓아보세요.”
아이들은 아이들의 발달과정이 있고 2학년의 발달과정에서 6학년 수준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2학년 아이들에게 6학년 수준의 규칙 이해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학습목표로 두고 지금의 나 자신을 분석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교실에서 수업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가장 피해를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1) 수업시간을 지킨 학생
2) 수업시간을 못지킨 학생
3) 수업을 하고자 하는 선생님
정답은 3번입니다.
1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상외로 1번학생들 중 대부분은 수업시간에 시작하지 않는다고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도 연수를 받으러 가면 강사선생님이 조금 늦는다고 해서 배움이 부족하다고 화내기보다
조금 더 쉰다고 좋아하는 것을 보아도 그 점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너희들이 수업을 늦어서 피해를 받지 말라.”고 화를 내도
그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제대로 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사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2학년 아이들에게는 더 했겠죠.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맞춘다는 개념 자체가 부족한 아이들인데요.)
하지만 선생님은 다릅니다. 내가 준비한 수업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함에 대해서
무척이나 짜증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통제력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 심리적 원근감으로 보는 통제
원근감이란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는 거리감을 말합니다.
심리에도 원근감이 존재해서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심리적 원근감은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시멜로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마시멜로(유혹)를 참아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인데요.
이 이야기를 반대로 말하면 성공이라는 미래를 발로 찰만큼이나 지금의 유혹은 달콤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의 유혹은 심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서 먼곳의 성공보다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갓 벗어나는 과도기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나를 중심으로 가까이 있는 것을 더 크게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잠깐의 유혹을 견디면 보상이 온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 잠깐의 유혹은 아이들에게 너무 달콤한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내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를 들면 1분정도만 종례하면 집에 갈 수 있는데 선생님에게 집중해주지 않고 장난을 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5. 화내지 않는 내가 되기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면 그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의 뜻대로 아이들을 움직이도록 해야하는데
나의 뜻대로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나의 통제력을 아이들에게 행사하기 위해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를 한 것 처럼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
그것은 아이들의 통제감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좋은 결론으로 절대로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좋은 선생님은 쓸데없는 화를 내지 않는 선생님입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면
그것은 내가 아이들이 지금 당장 나의 뜻에 따르기 위한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아니겠지요.
어른들도 누군가의 뜻에 맞추어 움직이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발달이 덜된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의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의미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착하지 않되
아이들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6. 길게 보기 : 학습목표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마지막에만 도달하면 된다.
마라톤의 길이는 42.195km입니다.
그리고 마라톤의 결승점은 42.195km의 맨 끝자락에 있습니다.
그 결승점이 가운데 있다면 그건 마라톤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나의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닿지 않더라도
마치 등대처럼 올바른 목표점을 비추면서 안개속을 비추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아 줄 수 있을테고
그러면 저는 그 목표에 성공한 교사가 됩니다.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고 내가 해야할 책임을 다하는 것을 2학년의 학습목표라고 해 봅시다.
그러면 그것은 지금 당장 아이들이 군대에 있는 것처럼 각을 맞추고 행동하지 않아도
언젠가 2학년이 끝나기 전에 스스로 배려하고 질서를 지킨다면
저는 성공한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지금 당장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아이들의 지금의 마음을 내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등을 보며 성장하며
그 등 중 하나가 나의 것임을 믿습니다
전력질주가 아니라 걸어가더라도 42.195km를 달리다 포기만 하지 맙시다.
교실은 100m 단거리가 아니라 1년간의 마라톤 레이스입니다.
P.s :
지난주 금요일에 처음으로 4교시 수업을 완주했습니다.
그리고 리코더 비행기도 완곡을 했네요.
희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