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는데?
#0. 착한 C선생님의 딜레마
C선생님은 착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에게 왠만한 것은 다 허용하려고 노력하고, 항상 웃는 표정으로 학생들을 대합니다.
다른 선생님이 '이런 것도 허락을 해 준단 말이야?'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많은 면을 학생들에게 양보하면서 즐거운 학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C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C선생님은 한 가지 고민이 계속 생겼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은 다른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학생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인데
학생들이 그것을 당연한 듯 느낀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당거래에서 류승범 배우가 아래처럼 한 말과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학생들에게 허용하고 허용하다보면
교사가 아니라 '호구'가 되면서 만만한 선생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앞으로는 조금 학생들에게 허용하지 않는 선생님이 될까 고민을 하다가도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싫어하게 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학생들에게 기쁘게 양보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1.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안다는데
'세번 참으면 호구된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나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이용하려 든다는 말을
우리는 다양한 경로로 접하게 되고 이런말들이 많은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착하다는 말은 더이상 칭찬이 되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서 '좋은 오빠'라는 말은 매력없는 사람을 지칭하고,
누가 'BK어때?'라고 물어보았을 때 '착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칭찬할 건덕지가 정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말로 들립니다.
내가 호구인걸까? 내 호의를 이용하는 상대방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걸까요?
#2. 서희와 레오리오의 상관관계
1) 때는 지금으로부터 1000여년전인 993년
거란은 송나라의 기를 한방에 누를 정도로 강대국이었고
이 강대국의 힘으로 소손녕을 앞세워서 고려에게 고구려의 옛땅을 돌려달라며 쳐들어옵니다.
우리나라와의 국력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에 맞서 싸우면 무조건 질 이 상황에서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으로 거란이 오히려 우리에게 강동 6주를 선물로 주게 됩니다.
그래서 서희는 우리나라 구국의 영웅 중 1명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2) 헌터 X 헌터라는 만화의 주인공 중 레오리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레오리오의 큰 활약 중 한 컷으로 유명한 신으로 가격흥정신이 있습니다.
시장에 가면 이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인들에게 가격흥정을 하곤 합니다.
아예 흥정할 것을 생각하고 가격을 올려서 시작하는 상인들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입니다.
어떤 상황이었든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원하는 물건을 얻는 상황에서
흥정이 끝나면 물건을 획득한 사람은 상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보다는
'승리자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서희'와 '레오리오'는 말을 통해 상대방의 호의(상대방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상황을 정리하면 조금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서희와 레오리오가 이익을 보았고, 소손녕과 상인은 결과적으로
서희와 레오리오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소손녕과 상인이 착한일을 한 것인데, 칭찬은 서희와 레오리오가 받았습니다.
여기서 서희를 학생으로, 소손녕을 선생님으로 바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누가 칭찬을 더 많이 받을까요?
<상황 1> 수업시간
선생님 : 오늘 수업시간에 수학책 135쪽을 펴도록 할게요.
학생A : 네 알겠습니다.
학생B : 선생님! 오늘 날씨가 참 좋은데 우리 밖에서 놀면 안될까요?
학생C,D,E... : 정말 좋아요. 선생님 우리 그렇게 하면 안될까요?
선생님 : (곤란해 하며) 그럴....까?
여기서 가장 칭찬을 많이 받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B입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을 놀이시간으로 바꾸면서 생기는 여러 부작용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B가 교실 친구들의 영웅이 되어버리는 것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간의 협상에서 선생님이 '패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호의와 협상을 분리하기
예전 글에서 저는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는 착한 선생님 컴플렉스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https://www.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KimBaekkyun&wr_id=173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상황의 소용돌이로 나자신을 끌고 들어갑니다.
이정도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므로
적당한 호의를 서로에게 베풀고는 합니다.
여기서 내 행동이 진정한 호의가 되기 위해서는
호의를 베푸는 것과 협상을 완전히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호의를 베품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어야 합니다.
- 청소를 잘 하는 친구들에게 사탕을 준다는 상황에서 사탕은 선생님의 선물이 아닌
청소를 함으로써 얻는 보상입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내듯
이 경우는 학생들의 노동과 물건을 치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은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닌, 물물교환의 상황과 같습니다.
2) 상대방의 요구나 사전 약속이 없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오늘 점심때 남자 아이들과 축구를 하겠어요.'라고 말하면
그러면 선생님은 학생들이 좋아하고 고마워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상대방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50%는 줄어들게 됩니다.
3) 내가 이 베품을 통해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 합니다.
- 호의는 내가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로 100% 베풀때 진정한 호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언가를 베품으로써 내가 만약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면
나는 좋은 일을 했지만 행복을 느끼기 어렵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티가 나는 경우
상대방은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4. 좋은 선생님에 대한 딜레마를 겪는 C선생님에게
100원을 가진 사람이 100원을 기부하는 것과
100000원을 가진 사람이 1000원을 기부하는 것은 여러모로 다릅니다.
호의를 베푸는 것 또한 내가 갖고 있는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준다는 점에서
기부와 공통점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분좋게 학생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교실에서 나의 자존감과 행복을 높이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곳간에 많은 것을 채워놓으면
다른 누군가에든 어떤 호의를 베풀어도 내게는 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교사가 행복하면 학생들이 행복해집니다.
오늘 하루 더 행복한 선생님의 하루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