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는 것
한 인간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가르치고 기르는 교사에게 있어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각자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획일화와 비교에 의해 아이들이 '재단'되고 그들의 '가능성을 평가받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합니다.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성격과 기질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는 좀더 포괄적이면서도 더욱 세심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성격과 기질 이외에 아이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느리게 수행하는 것과 빨리 수행하는 것, 두려움을 갖고 머뭇거리는 분야와 용기 있게 도전하는 분야 등'아이가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자기 자신의 수많은 모습들'을 평가 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 '도무지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라는 말 속에는 이미 너의 다름이 나에게는 불편하고 힘들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너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방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신규 1년차였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상담을 오신 많은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의 성격이나 교우관계를 걱정하셨습니다. 저 또한 이런 기우에 대해 아이의 성격이 이래저래하니 좀 바뀌어가면 좋겠다 내지는 변화하도록 돕겠다는 말씀으로 응대하곤 했습니다. 친구가 별로 없어 걱정하는 학부모님께는 아이에게 단짝 친구를 한 명 붙여서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내향적이고 마음이 여린 아이의 부모님께는 좀더 활발하고 강한 아이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땐 아이의 부족한 점은 채워서 넣어줘야 하고 연약한 부분은 강해지도록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향적인 아이가 꼭 활발한 성격의 아이로 바뀌어야 할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가 꼭 대범해져야 할까? 학습이 느린 아이를 계속 재촉해야만 할까? 글로 표현은 잘 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서툰 아이가 꼭 그림을 잘 그려야 할까? 어느 순간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아이를 그 자체로 인정해주자'는 결론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아이가 변화하고 싶다면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정은 포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을 인정한다는 것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둔다는 뜻이 아니라 학습 속도나 과제의 양을 아이에 맞게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들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아이에게 주면서 "너는 입을 수 있어. 잘 어울릴 거야. 입어봐!" 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차라리 아이가 스스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 입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이때 교사는 그런 아이를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고 바라봐주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름을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