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도 있지
“태하야,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모둠 친구들 중에서 네게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한 친구가 있었니?”
“...아니요.”
“선생님은 태하가 지난주에 모둠 친구들과 정말 잘 지낸 걸 봤는데, 오늘은 뭐가 좀 달랐을까?”
아이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태하가 견디기 힘든 마음 상태였니?”
“...네”
아이의 눈동자는 바닥을 향했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럼 됐다. 집에 가자.”
2학기 들어서 태하가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급회의 시간에 태하의 칭찬이 매주 나올 정도로 친구들도 태하가 변한 모습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제 손이 닿지 않아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할 일을 마무리하는 아이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올바른 길에 서서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아이는 변한다는 사실을 태하를 보며 느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전 습관이 나왔습니다. 모둠 친구들이 자신의 의견을 먼저 들어주지 않았다고 화를 내며 수업 중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급식실에서 아이를 찾았습니다.
아이를 보자마자 실망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두려운 마음까지도 찾아왔습니다.
‘뭐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다른 사람들에겐 별일 아닌 듯 보일지 몰라도 제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시간이 허사가 되는 건 아닌지…….
점심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설마, 아닐 거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하교 무렵까지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집에 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 안도했습니다.
아이는 오늘 똑같은 상황을 견딜 마음의 힘이 조금 부족한 것뿐이었습니다. 스스로 그런 마음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구요. 다행이었습니다. 괜한 걱정과 불안으로 불행한 미래를 그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아이가 한 번 삐끗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보니 믿음이 아니라 완벽함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완벽하게 변화하길 바라고, 예전 습관을 절대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무리한 기대를 갖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런 날도 있지.’
내게도 유난히 감정이 회복되지 않은 날이 있듯이, 몸이 피곤하고 뻐근한 날이 있듯이 아이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시 고쳐먹은 믿음처럼 아이는 다음날 맑음이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날도 있어.’
아이를 믿는다는 건 마음 한편에 여유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