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수업] 2. 포커페이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음악 수업들을 돌이켜 보면 아쉬웠던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저를 반성하고 고민하게 했던 가창 수업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신규로 첫 학교에 발령받던 해, 저는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이 음악 수업에서 배우는 것 중 많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목소리로 화음을 쌓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른들도 어려워 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그 날의 음악 수업은 부분 2부 합창 노래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 학습 목표 : 성부의 어울림을 느끼며 부분 2부 합창하기
각 성부를 따로 연습한 후, 화음을 맞춰보며 부르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화음은 쉽게 완성될 리 없었습니다.
음감이 타고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특히 난이도가 높은 활동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노래를 듣던 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었는지
‘지금 화음 맞지 않는 거.. 너네도 알고 있지?’ 의 의미를 담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대충 이런 표정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린 아이들의 얼굴에는 순간 웃음기가 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수업 분위기가 유쾌해졌다고 느꼈고, 그 이후로도 계속 화음이 맞지 않을 때마다 그 표정들을 지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하였습니다. 스스로 정확한 음을 소리 내고 있는지, 화음이 제대로 쌓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행동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도 했고, 아이들이 웃으며 노래를 부르니 괜히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수업 분위기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몇 몇 아이들은 화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저의 표정에 더욱 집중하였습니다. 시선을 악보에 고정하지 못한 채 노래를 부르느라 음을 제대로 내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표정을 짓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일부러 맞지 않는 음을 더욱 크게 내는 아이도 있었고,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갈수록 커졌고, 화음은 불협에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당시 아이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그 음악 수업에 배운 부분 2부 합창곡의 화음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아이들의 표정은 연신 밝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다 같이 웃으며 즐겁게 참여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자.’라고 생각하며 쉬는 시간을 맞이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종종 이 날의 수업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화음의 어울림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이들의 음감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지 더욱 깊게 고민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제가 간과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수업을 하면서 '표정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언제나 웃음을 지닌, 평온한 얼굴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아닙니다.
선생님의 표정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업의 분위기는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학습목표 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이것은 가창수업 뿐 아니라 기악, 감상, 창작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더 나아가 다른 과목의 수업에서도 똑같이 실천해야 할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단지 '표정'만으로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태도나 결과물을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는 경우에는 표정에도 신경써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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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화상회의를 통해 실시간으로 합창 수업을 진행하셨던 한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위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목표에 완벽히 도달하지 못했다 할 지라도,
아이들이 그 수업을 즐거워 했다면 그것은 성공한 수업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성공한 수업인지 혹은 실패한 수업인지 그것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와 함께 제시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뜻 대답을 명확히 할 수 없는 걸 보니 아직 더 많이 공부해야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