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생의 체육잡설] 무책임한 체육수업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 (2)
이번 글은 우리가 잘 아는 우화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발바닥 두둑히 굳은 살이 박혀 어느 곳이든 다니며 먹을 것 모으기로 숲속 제일이라는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원숭이는 오소리에게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았던 꽃신을 선물받았습니다. 원숭이는 꽃신을 오래도록 신자 발바닥 가죽이 얇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꽃신 없이는 걷는 것 조차 힘들어진 원숭이는 결국 오소리에게 꽃신을 구하고자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화 '원숭이 꽃신'의 줄거리입니다. 지금의 초등학교 체육의 모습과 겹쳐보이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들이 초등학교에서 일을 한지 8년이 되었습니다. MB정부에서 추진했던 체육계열 청년층의 일자리 만들기 정책으로 시작된 사업이었습니다. 침체된 초등학교 체육을 활성화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명분상의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작 그 정도의 숫자의 스포츠강사들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지요. 어찌되었든, 그들은 처음에 체육‘보조’강사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조’라는 이름에 불만이었는지 명칭을 바꿔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덕분에 지금의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라는 이름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명칭 변경 요구-초등체육교사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른 이름을 요구하는 이유는 규정 상의 업무 범위와 실제 업무 수행 내용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17년 현재 스포츠강사들의 업무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초등학교 담임교사의 체육수업 보조
②학생 안전관리, 체육교구 및 시설관리
③학생건강체력평가제(PAPS) 업무 지원
④체육대회 등 체육관련 행사지원
⑤정규수업 외 학교스포츠클럽 지도
⑥여름·겨울방학 프로그램 운영
⑦기타 학교체육 관련 업무
업무는 학교마다 조정 가능하지만 기본급여가 월 150만원 내외인 것을 보자면 많은 편에 속합니다. 물론 방과후 체육수업이나 토요스포츠활동을 통해 수당을 받는다면 그보다는 많지만 박봉에 비해 요구하는게 많죠. 그래서 일부 학교에서는 많은 업무를 주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업무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첫 번째로 제시된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체육수업 보조입니다. 체육수업 보조는 교구 준비와 시범 등을 뜻하고 있지만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이 스포츠강사들을 활용하여 체육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 자체를 떠넘기고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지난 8년간 현장에서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행해졌던 뼈아픈 사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 대해 스포츠 강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볼까요?
스포츠강사들은 초등교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빈틈에 대해 잘 알기에 거기에 정조준하여 행동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시된 화면 이상으로 많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무기직화, 장기적으로는 단독 수업권과 명칭 변경, 교사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초등체육에 대한 독자적인 임용시스템을 도입하여 중등교사들이 초등체육임용고사를 볼 수 있게 하자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수업이 귀찮다고 어렵다고 넘기는 것이 과연 교사로서 옳은 행동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체육수업, 물론 어렵고 번잡해서 스포츠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체육 전공자가 가르치는 것도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로, 체육을, 음악을, 미술을...그러면 초등교사는 무얼 가르치나요? 그래서 저는 이 스포츠강사의 문제가 체육교과 뿐만아니라 각종 예술강사들과 엮여 있는 다른 교과에서도 나타나는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스포츠강사 없이도 체육수업을 해 왔습니다. 체육업무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스포츠강사가 들어오고부터는 체육수업을 기피하고 그들에게 떠넘겨 왔습니다. 수업 시수가 줄어들어 숨도 돌리고 다른 일에 전념할 수 있으니 좋았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어느샌가부터 체육수업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이 되었습니다. 수업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스포츠강사가 했던 것을 그대로 반복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모든 초등학교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모습은 아니지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우리 초등학교의 단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원숭이 꽃신'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들에게 수업을 잠식당한 우리의 일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는 보조로 들어온 그들에게 잠시의 편의를 위해 수업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스포츠강사들은 초등학교의 체육수업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 그들은 점차 많은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강사들이 종국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단독 수업권, 그리고 초등체육교사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어쩌면 우리 초등교사들은 체육수업을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체육이 귀찮고 번거로운 과목으로 남는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