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11. ......
“연아야, 안녕!”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스스럼없고 자신만만했던 시절의 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웃으며, 즐겁게 내 인사를 받는다. 몇몇은 수줍어하면서 좋아한다. 그런데 연아는 달랐다. 황급하게 내 손을 뿌리치더니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미세하게 떨리는 겁먹은 눈. 그리고 쭈뼛쭈뼛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왜 저러지?’
조용히 자리에 앉은 연아를 보며 생각했다. 그게 내 도전의 시작이었다.
연아는 말이 없었다. 내성적이라거나 수줍음이 많다는 뉘앙스의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말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지 않았고, 책을 소리 내어 읽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대화하는 법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 볼뿐이었다. 무슨 상처나 사연이 있나 짐작했지만 부모님이 연락조차 되지 않았기에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변하게 해야지!’
연아가 말을 하고, 친구들과 활기차게 어울리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뻔뻔하게 다가가기도 하고, 농담으로 웃기기도 했다.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환심을 사기도 하고, 그나마 하교 뒤에는 몇 마디 나눈다는 친구의 도움도 받았다.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샤이니의 광팬이라는 정보를 알고 팬 사인회에 가서 사인도 받아주었다.
“연아야, 샤이니 사인이야!”
“우와! 선생님 대박!”
“연아 좋겠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연아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성공인가?’
그러나 그뿐이었다. 연아는 꾸벅 인사만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아, 얘는 정말 안 되는 건가? 나는 이 녀석을 행복한 학생으로 바꿀 수 없나?’
교사로서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인기가 많다고, 학부모로부터 지지받는다고 자만했던 게 부끄러웠다. 문제아도 아닌, 그저 무언가 힘들어하는 학생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자신만만하고 성공에 빠져 있던 나에게 뼈아픈 시련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해 우리 반은 전교에서 알아주는 힘든 반이었고, 나의 에너지 소모도 무척 컸다. 그날도 전날 저녁까지 길어진 상담 때문에 진이 빠진 채로 출근했다. 시계는 8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밀린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문 근처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서...... 선생님, 아, 안녕하세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연아였다. 큰 눈에 동그란 안경, 부스스한 머리, 분명히 연아였다.
“연아 너 지금 나한테 인사한 거야?”
“네에......”
“우와 대박! 그래, 연아 안녕!”
나는 바보처럼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바로 앞에 있는 녀석에게 손까지 흔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아침 자습 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떠서 자랑했다.
“얘들아, 오늘 연아가 선생님한테 먼저 인사했다? 대박이지?”
“우와!”
학생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와 연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연아는 부끄러운 지 고개를 숙였다.
그날이 정확히 12월 11일이었다. 연아는 무려 10개월 만에 말을 한 것이었다. 10개월. 학생들을 만나는 일 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8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인생에서 일 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투철한 사명감 때문에, 그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을 올바른 모습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교사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연아가 얼마나 빨리 변한 것인지.
눈에 보이는 행동의 변화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리 어려도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 변화 또한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교사는 그저 옆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할 뿐, 변화의 여지와 가능성을 던질 뿐. 당시 나의 노력은 내 성취감과 만족을 위한 것이었지 진정으로 연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졸업을 시킨 후 한참 뒤에야 연아가 아빠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성인 남자가 무서웠고,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 상처의 굴레를 깨고 나를 믿어 준 연아가 더욱더 고마웠다.
그리고 6년 뒤, 나는 다시 말 없는 녀석을 만났다.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외국에서 지내다 재취학한 아이. 전학 온 첫날 복도에서 울며 버텼고, 교실에 발을 내딛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교우 관계도 없었고,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친해지려고 무언가를 물어보면 눈물부터 흘려 친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상처가 많은 녀석이구나. 내가 포기하지 않고 던질게.’
나의 조금 더 특별한 노력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6년 전과는 달랐다. 6년 전 나의 노력은 ‘연아가 말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급하고, 뜨겁고, 안달이 났다. 그러나 지금 나의 노력은 ‘윤지가 우리 반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을 향했다. 그래서 억지로 말을 시키거나 자극하지 않았다.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함께 한 고.인.돌(고마운 마음을 나누는 시간) 시간에도 윤지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말을 하지 않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얘들아, 윤지가 낯설고 당황스러워서 말을 하기 어려운가 봐. 사람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고 했지? 우리 기다리고 도와주자. 대신 윤지도 준비가 되었을 때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부탁해.”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던진다’
6년이 지나 내가 선택한 태도였다. 눈에 보이는 반응을, 변화를, 행동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말을, 눈빛을, 미소를, 고마움을 던. 질. 뿐.
그럼 윤지도 연아처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아쉽게도 나는 일 년을 마칠 때까지 윤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교육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던짐은 녀석에서 어떤 씨앗이 되고 울림이 되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녀석은 녀석이 원하는 순간, 주변에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그 징후는 이미 충분했다. 윤지는 학교에 웃으며 등교했고, 내 주변을 서성이며 무언가를 시켜주기를 바랐고, 내가 짓궂은 장난을 하면 좋아했다. 라온제나가 일 년을 마칠 때 가입하는 카페에 서툰 한국어로 끝까지 가입하려 연락한 것도 윤지였다.
앞으로도 또 다른 연아, 윤지를 만날 것이다. 그래서 괜찮다. 말이 없다고 교사를 배척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문 말고 마음을 두드릴 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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