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03> 성격이 변했다. 절약이 쉬워졌다.
완벽하지 않으면 죽는건 줄 알았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선 안 돼. 흠을 보이는건 창피한거야. 내가 덜 노력했다는 거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노력만큼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문제집 한 장 더 풀었지만, 딱 한 문제만 더 풀고 책을 덮었어요. 1시간 운동했지만, 딱 5분 더 걷다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성취의 목적은 등수가 '더' 높아지기 위해, 남자친구 주변의 여자들보다 '더' 예뻐지기 위해서였죠. 결국 남보다 특별해지기 위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 세계는 수직으로 쭉 뻗어있었습니다. 위와 아래가 존재했었죠. 위로 오르기 위해 마른 수건 쥐어짜듯 저력을 발휘했고, 자투리 노력이 모여 성취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육아가 세계를 바꿨습니다. 저희 큰 딸은 사부작대며 한 자리에서 그림을 좋아해서 사랑스럽고, 작은 딸은 모든 물건을 사방 돌아다니며 벽과 책장에 싸인펜 칠을 해서 귀엽습니다. 같은 부모가 비슷하게 키운 듯 해도, 두 아이는 다르고 아이 사이에 어떤 우열과 서열이 없었습니다. 두 아이는 각자 남과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인거죠.
내 아이를 키워보니 '높이'만 존재하던 수직 세계에 '폭'이란 수평 세계가 생겼습니다. 더 잘난 아이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그랬던 겁니다. 더 잘난 사람이 되고자 했는데, 저도, 남들도 각자 독특한 존재였습니다.
<사진: 잘난 아이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남보다 잘 날 필요 없던 거였어요.>
취향을 찾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 <자유론> 중.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수직 세계에서 수평 세계로의 전환. 이제 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라는 식으로 삽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말이죠. 웬만해서 남이 이상하지 않고, 웬만해서 스스로가 못나 보이지 않습니다. 남들도, 저도, 모두가 아름다웠습니다.
우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니, 신혼여행 때 산 명품 가방을 구석에 박아두고, 에코백만 들고 다녀도 전 제가 멋스럽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조언'이 예쁘게 인쇄된 남색 에코백을 이탈리아 하늘색 소가죽 가방만큼이나 아낍니다. 가죽 가방만 들어야 폼 나는 줄 알았던 세상에서 폴짝 벗어나, 이제 취향을 찾게 된거죠.
<사진: 유발 하라리의 글귀가 적힌 에코백. 제가 아끼는 가방입니다.>
가방 뿐일까요. 모든 씀씀이가 줄었습니다. 그간 얼마나 더 '우월'해지기 위해, 혹은 더 밑져보이지 않기 위해 지갑을 열었는지 드러났습니다.
"저 이제 외식 잘 안해요. 집에서 먹는거 어때요?"
"카페 말고, 집에서 모임을 해요!"
"올해는 옷 더 안 사려고요. 입던 옷 있는데요 뭐."
"미용실에 꼭 자주 가야해요? 난 오히려 그게 귀찮던걸요."
"새 집에 안 살아도 괜찮아요. 집 넓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저는 걸어서 모든게 있는 곳이 더 편해요."
"차 1대로도 충분해요. 아직은 집 근처에 직장도, 애들 원도 있거든요."
라는 말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덜 쓰는 제 취향이 도대체 뭐라고 부끄럽게 여겼는지 모릅니다. 예전의 전 소비를 덜 할 수록, 소유물이 적을수록, 완벽하지 못 하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그래서 취향 외의 온갖 물건과 서비스가 '필수품'이 되어 갔고, 지출도 커졌습니다.
'완벽'과 '최선'의 기준이 조금씩 허물어지니, 지갑도 한결 넉넉해졌습니다. 그러면 뭐 어떤가요. 전 제가 충분히 아름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 뿐만 아니라 누구나 말이죠. 각자가 구축한 수평의 세계에서, 취향의 삶을 사시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소유하고 경험하는 삶이야 말로, 행복과 여유를 가져다 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