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 줍는 교실살이-7] 밤편지(3)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엉뚱한 너희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건 참 재미난 일이야.
내 안에도 너희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내는 꼬마가 있을 텐데, 개구리 올챙이 적은 정말 기억이 안 나나봐.그래도 작은 것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유치한 것에도 감탄하며 울고 웃게 되는 요즘, 이게 너희 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물론 늘 즐겁기만 한 건 아니란 거 알지? 너희도 내 하소연을 자주 들어 알다시피, 인내심의 끝이 어디인지 시험 당하는 것처럼 속에 천불이 날 때도 있지. 그래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 순간조차 다 재미난 일로 기억나다니, 즐거운 것 많고 생명력이 넘치는 너희에게 옮은 덕인가.
그 우스운 상황에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과 말을 하면서 몰래 빵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 선생 노릇을 하는 게 참 간질간질 괴로울 지경이지.너희도 스스로 웃긴지 콧구멍을 벌름벌름하면서 참는 걸 보며 속으로는 이런 괴상한 역할극이 어디 있나 싶다니까. 하지만 만날 내가 너희랑 같이 바닥을 디굴디굴 구르며 미친 듯이 웃을 수도 없는 걸 어떡해?이렇게 반쯤은 진지한 척 하며 넘기는 수밖에.
너희는 시도때도 없이 재미난 상황을 만들지만, 특히 강렬했던 장면이 있어.
지진대피 훈련을 할 때 말이야.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방을 머리 위에 대고 나오는 걸 배우고 미리 가방 지퍼까지는 잘 닫아서 머리에 썼지. 그런데 가방을 들고 있는 게 불편했는지 한 녀석이 아예 가방을 머리에 쓴 채로 가방 끈을 팔에 끼웠잖아. 그러니 가방에 이마가 눌려 눈이 게슴츠레 해지고 팔은 위로 대롱대롱 들려 올라가는데, 자기 꼴이 무척 우스웠는가봐.
다른 친구들에게 다 자기를 따라해 보라며 함박웃음을 짓고 큰 소리로 눈길을 끌며 떠들어 댄 거. 그 애는 기억하겠지? 한 명이 하니까 줄줄이 따라하기 시작했고! 마치 이상한 쭈꾸미같이 움찔대는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는 것도 모르고 야외까지 너희를 인솔하던 내가 뒤를 돌아보니 어땠겠어.
세상에, 줄서서 따라오던 너희가 불에 구워지는 해산물들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서 웃으며 팔을 파닥거리고 난리가 난 꼴을 보고 말을 잃었지 뭐. 너희 얼굴을 보고는 솔직히 너무 웃겼어. 대피 훈련을 무슨 재미난 에피소드나 소풍 쯤으로 여기는 듯한 너희!
그런데 대체 우리 반만 왜 이러나, 내가 평소에 질서 지키는 걸 철저히 덜 가르친 탓인가 싶어서, 교실에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에 잔소리를 거듭했잖아. 너희는 이게 무슨 봉변인가 했겠지.
쭈꾸미 사건(?)은 1학기 때 일인데, 너희 블과 며칠 전에도 화재대피 훈련하면서 숙이고 걸어가라고 하니까 뒤쪽에 오던 몇 명이서 “그럼 아래로 가면 좋다고 했으니까 아예 기어가자!” “쪼그려 앉아서 걸어갈래!” 하고 자기들끼리 개구리 점프하고 신이 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 어이구, 꾸중 한 번 듣고 바로 쪼그라들어 시무룩해질 거면 처음부터 잘 하지! 싶다가도, 처음부터 시킨 대로 잘 하면 너희겠어.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뛰는 게 본성인 걸. 네모난 학교와 교실에 본성을 억지로 맞추려 애쓰는 중일 뿐.
등교할 때 감정출석부를 하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아침에 항상 거짓말처럼 ‘신나요, 행복해요, 기뻐요’에 자석을 붙이고 맑게 웃는 너희가 신기했어. 참, 그 웃음이 오래 가면 좋겠다, 사춘기일 나이가 되더라도 감정출석부의 너무 어두운 감정을 고르게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몰래 생각해.
얼마 전에도 그래. 배드민턴을 치다가 잠깐 경기를 보며 앉아 있는 그 순간에도 너희는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내고는 하지. 배드민턴 채를 입술에 꾹 눌러서 네모나게 튀어나온 살을 만져보고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수업 시간인 것도 잊고 큰 소리로 자신의 발견을 알리는 너희, 오리처럼 쭉 내민 입술을 채에 뭉개고 있는 그 모습이 만화의 한 장면 같아서 그려 봤어.
내가 잔소리하는 역할 대신, 하루만 현덕의 ‘고양이’에서 노는 아이들처럼 하루 종일 너희 뒤를 따라다니며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재미난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면 재밌을 것 같아.
너희는 글쓰기가 어렵고 싫다고 하지만, 너희가 하는 재미난 말을 다 받아적으면 수많은 시가 될 텐데.그렇게 해 주는 분들이 존경스럽고, 아직까진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내 역량을 탓할 뿐.
선생님은 사실 1,2학년처럼 어릴 때 어떻게 생활했는지 몇 장면 외에는 거의 기억이 나질 않아. 지금은 선생님이 내년에도 담임하면 안 되냐고 말하는 너희도 역시, 어쩌면 기억이 희미한 그림자 정도로 남을지도 몰라. 잊혀진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프지만, 너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가끔 힘든 것보다 재밌고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서 고마워.
서로 쏘아보고 잡아먹을 듯이 소리치다 엉엉 울 때도 있지만 평소엔 서로에게 “틀려도 괜찮아, 도와줄게” 말할 줄 알고, 토라질 땐 절대 잘못해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지만, 찬찬히 이야기하며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나서는 서툰 진심으로 “미아네..” 하고 “갠차나..” 하는 너희가 참 예뻐.
어느 새 일 년이 이렇게 마지막 즈음까지 와 버렸네.
남은 날들 동안 함께 더 미소 지을 일 많도록, 살짝 지쳐 있는 나를 다잡아야겠어.
월요일에 또 만나자. ^^
너희에게 보내지 못한 밤 편지는, 여기까지, 이만 줄일게.